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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오바마 당선을 별로 반기지 않는 이유

리치코바 조회수 : 644
작성일 : 2008-11-11 17:13:59
[박노자칼럼] 오바마 당선을 별로 반기지 않는 이유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미국에서의 첫 흑인 대통령 당선은 전세계에서 잔치 분위기를 만들었다. 6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의 한국내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당시 필자의 기대가 이라크 파병과 비정규직 박해, 대추리의 눈물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망동으로 산산조각 부서져 원한의 응어리가 맺힌 탓인가? 상전 나라에서 ‘착해 보이는’ 정객이 최고 통치자로 뽑힌 이 순간, 필자는 처음부터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그래야 나중에 실망의 쓴맛을 볼 일도 없을 것이다.

노무현 당선 당시, 학벌이라곤 상고 졸업 정도였던 이가 대통령이 된 뒤에 학벌 차별이 약간이라도 수그러질 것이라는 것은 필자의 기대였다. 그러나 ‘무학벌 대통령’ 아래서도 장관급 이상 정무직 중에서는 서울대 학벌의 비율은 57.1%에 달해 오히려 김대중 정권(50%)에 비해서 더 나빠졌다. 최고 통치자가 표심 잡기에 좋은 ‘서민성’을 보유한다고 해서 지배집단 전체가 갑자기 ‘서민화’되는 것이 아니잖은가? 오히려 비주류 출신의 최고 통치자가 정통엘리트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처신함으로써 저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경우들을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상고 출신 대통령의 당선이 한때 반가웠던 만큼 오바마의 다른 부분은 몰라도 피부색만큼은 반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과연 명문고교-컬럼비아대 학부-하버드대 대학원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별 어려움 없이 거친 중산계층의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백인(7%)보다 거의 세 배 가까운 빈곤율(20%)을 보이는 흑인사회 전체의 비참한 상황이 약간이라도 개선될 수 있겠는가? 미국도 우리처럼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인데, 학력·경제력이 약한 부모를 둔 탓에 출발점부터 불리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출세할 수 없는 이들의 고충을 해결하자면 빈민가 공립학교의 수준 향상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는 등 복지주의 정책을 활발히 펴야 할 것이다. 오바마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제너럴 모터스(GM)나 포드 등 거대 재벌들이 공황의 파도에 떠밀려 정부 지원책이 있지 않고서는 파산으로 치달을 수 있는 오늘날과 같은 비상시에 말이다. 최고 통치자가 흑인이 돼도, 미국의 사회·정치 구조상으로 ‘기업 복지’와 ‘민중 복지’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할 때 늘 전자를 선택하게 돼 있다.

북한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전쟁광’ 매케인보다 오바마가 상대적으로 낫다는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성립된다. 이명박 정권의 비상식적인 대북 정책이 북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상황에서 북-미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북한의 개발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북한 집권자들에게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만한 ‘카드’를 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오바마가 선심을 쓴다 해도 ‘북한 위협’이 주일·주한 미군의 지속적 주둔 등 중국에 대한 포위 정책의 명분이 되는 현 상황에서는 대북 관계의 정상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자본주의가 공황을 맞이하는 오늘날에 과연 그들에게 획기적인 대북 투자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바마가 되든 매케인이 되든, 미국을 실제적으로 통치하는 힘인 대자본은 하나의 자구책으로서 인플레 정책을 취해 한국 기업의 수출 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런 측면에서는, 오바마의 등장을 반기는 것보다 복지 정책을 통해 내수를 확대시켜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과의 불가피한 무역 충돌에 대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출처: 한겨레신문

IP : 118.32.xxx.2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phua
    '08.11.11 5:22 PM (218.52.xxx.117)

    역시 예리하시네요,
    우리나라에 뭔가 유리할 것 같아서 부러워 햇던 것 아니었습니다,
    인종의 편견도 깰 수 있다는데 놀라웠을 뿐이랍니다,

  • 2. 3babymam
    '08.11.11 5:47 PM (221.147.xxx.198)

    박노자 칼럼 관심있게 읽고 있습니다..
    너무 큰기대는 더큰 실망으로 돌아 오겠지요..

    오바마로 인해 우리가 득 볼것 없겠지요...
    영화에서만 보던 흑인대통령이 나왔다는 점에서
    처음 스타워즈 보았을때에 설레임 정도...^^

  • 3. 음..
    '08.11.11 5:52 PM (221.149.xxx.7)

    박노자 선생님 존경합니다.
    이 분 책은 다 읽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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