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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위선

위선 조회수 : 356
작성일 : 2008-10-15 00:25:13


로버트 라이시 미국 UC 버클리대 교수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경제학자입니다. 그가 작년에 쓴 ‘슈퍼 자본주의’(김영사)는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가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 민주주의가 점점 위축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발(發)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린 내막을 헤아릴 수 있는 통찰도 담겨있습니다. 경제학에 까막눈인 저도 공감하면서 읽을 만큼, 재미있습니다.

라이시 교수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 안의 도덕적 위선을 까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6개 장으로 이뤄진 이 책의 3장 ‘우리 안의 두 마음’에서 주로 이 문제를 다룹니다. 라이시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안에는 더 싼 가격으로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로서의 ‘나’와 주식과 펀드, 연금을 투자하는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리도록 압박하는 투자자로서 ‘나’가 있습니다. 이런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압력이 기업들에게 임금을 줄이도록 압박하고, 노동 환경을 악화시키고, 환경을 망가뜨리고, 때론 인도네시아의 열두 살 어린이가 1달러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노동에 시달리도록 만든다는 겁니다. 물론 시민으로서의 ‘나’는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환경을 보전하며, 노동자의 인권 탄압을 막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욕망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누른다는 거지요.

라이시는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를 예로 듭니다. 월마트는 미국에서 매출 기준으로 가장 큰 회사이면서 직원들에게 겨우 연 평균 1만7500달러의 급여를 주면서 의료, 연금 등 복지혜택은 거의 없답니다. 이 회사는 온갖 수단을 써서 임금과 복지 혜택을 낮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진보 단체들은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월마트를 공격하는 게 유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소비자인 우리는 월마트의 낮은 가격이 마음에 들어서 그곳에서 쇼핑을 한다는 겁니다. 또 연금이나 펀드를 통해 월마트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월마트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비난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공범이다.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우리는 세상이 날뛰도록 만든다. 시장은 우리의 욕구에 아주 잘 부응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더 잘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두 마음을 갖고 있다. 그 가운데서 더 약해진 것은 우리 안의 시민이다. 슈퍼 자본주의는 승리했지만,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는 그러지 못했다.”

라이시의 현실 자본주의 진단이자 고해성사입니다. 거대 기업의 탐욕이나 기업가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 문제가 아니라 보다 높은 효율성과 이윤을 추구하는 슈퍼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겁니다. 라이시는 이런 슈퍼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억제하기 위해 민주주의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라이시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왜 세상은 풍요로워졌고, 소득도 점점 늘어가는데 우리의  일상은 점점 더 팍팍해져 가는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良質의 상품과 서비스를 예전보다 더 싼 값에 공급하는 경쟁이 국경을 뛰어넘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로서의 나는 더 싼 비용으로 이런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투자자로서는(주로 펀드와 연금을 통한 간접투자입니다만) 좀 더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거대 금융 회사의 도움을 받아 세계 곳곳의 기업에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소비자와 투자자일 뿐 아니라 좀 더 낮은 가격으로 높은 수준의 상품과 재화를 생산하도록 요구 받는 기업의 종사자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슈퍼자본주의가 1970년대 후반부터 어떻게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게 됐는지, 왜 천문학적 단위의 연봉을 받는 CEO가 생겨났는지 아시려면 이 책을 찬찬히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종반부에서 라이시 교수가 제시한 슈퍼자본주의에 대한 해법은 공자님 말씀처럼 들립니다.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니요? 너무나 옳은 말씀이기에 더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책에서 한 사회의 문제를 특정 대상의 책임으로 돌리고, 그 대상을 비난함으로써 스스로의 문제에는 눈감는 도덕적 위선을 지적하는 대목에 공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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