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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흰 엥겔지수가 높답니다.
쉐어그린 조회수 : 1,158
작성일 : 2004-05-10 12:46:42
비가 오고있는 지금,
커다란 거실 창을 통해서 보이는 풀들이
유난히 환한 연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마치 연두 빛을 뿜어내는 태양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거실 안은 어두운데, 밖은 환하여 진기한
세상을 연출하고 있답니다. 하느님의 연출 하에
모든 풀들이 초록빛을 품어내는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바야흐로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꽃들이 지고,
풀들의 세상이 오고 있다는 걸 그 빛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비가 약해진 틈을 타서 텃밭으로 가니,
쑥갓이 쑥 컸으며, 상추도 적색을 띄며 점점 잎이 넓어져갑니다.
며칠 전 텃밭에 심은 이런 저런 모종들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내리는 비를 달게 먹고 있습니다. 풋고추, 꽈리고추, 피망과 오이,
토마토, 가지와 호박들. 참, 한참 전에 싹이 올라 온 들깨와 방앗잎들도
이제 텃밭을 푸르게 장식할 겁니다.
3월 중순에 심었던 감자는 대부분 싹이 20cm이상 컸는데,
어떤 구덩이에서는 이제야 싹이 올라와 겨우 손톱 만한 것도 있습니다.
한 이주일 전, 왜 싹이 안 올라오는지 안타까움에 그 싹이 안 올라오는
구덩이를 파헤쳐 보았답니다. 대부분 싹이 트고 있다는 증세를
확인하고 흙을 다시 덮어주고, 썩어서 싹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곳에는
새 씨감자를 묻었답니다. 그런데 땅 밖으로 싹을 내밀지 못하고 있던
씨감자들도 땅 속에서는 작은 감자 알갱이를 달고서 키우고 있었답니다.
자신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데, 괜한 노파심에 땅 속을 파헤치며 간섭을
한 것이 아닌가 싶어 부랴부랴 흙을 덮었습니다.
엊그제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첫 시험을 치렀습니다. 첫 시험이기에
걱정이 되어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한다는 것이 그만 간섭이 된 것 같아
'조금만 말할 걸'이런 후회가 들기도 했지요. 밭농사와 자식 농사!
둘 다 조금은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시골살이를 하다보니, 관심의 영역이 자연과 자식에게로
한정됩니다. 그 밑바탕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깔려있지요. 문화 생활이다 여가다 하는 문제는 관심거리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은 엥겔 지수가
무척 높은 편입니다. 아시다시피 엥겔 지수가 높다는 말은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 중, 식의 비중이 높다는 말입니다.
옷(의) 문제는 대충 해결합니다. 아이들의 옷은 사촌들에게서 물려받아
입히고, 저희 부부의 옷은 도시 생활하면서 있었던 옷으로 충분합니다.
집(주)문제는 가급적 후에 손이 가지 않아 경제적 손해가
생기지 않는 종류로 선택한 것이 목조주택입니다.
나머지 먹는(식) 문제인데, 이것이 시골에서는 만만치 않은 문제입니다.
물론 싱싱하고 건강한 자연식을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정말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식생활에 필요한 모든 걸
자체 생산할 수 없기에, 기본적인 식 생활비는 드는 거죠.
도시에 사는 아이들의 이모들, 즉 저의 언니들은 한참 크고 있는
조카들이 단백질이 모자라 덜 자랄까봐 좀 걱정스러워 하는 눈치입니다.
그래서 전화할 때마다 언니들은 한마디씩 합니다. "한참 크는 애들,
잘 먹여야돼! 고기 자주 먹여! 푸성귀만 먹이지 말고!"
이런 엥겔 지수가 높은 시골살림은 어찌 생각하면
갑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산과 들에는 자연 건강식이랄 수 있는
식품들이 널려있고, 무엇보다 그런 살아있는 푸른 자연 속에
늘 존재할 수 있는 반대 급부가 주어지기에 행복합니다.
텃밭을 돌보다, 어느새 빨갛게 익고 있는 딸기를 보았습니다.
별다른 손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빨간 열매를 달고있는 밭딸기!
이 딸기처럼 푸른빛 속에서는 다양한 열매들이 숨어서 그
존재를 키우고 있답니다. 복숭아 나무, 앵두나무 뽕나무 등등등...
모두 새끼손톱 만한 열매를 달고서 의연히 비바람을 맞고있지요.
보고있자니 미소가 절로 번지고 눈이 밝아옵니다.
그런 존재 옆에 서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아이들도 이렇게 커갈 수 있었으면 바라고 그러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문화생활을 못해도, 엥겔 지수가 높아도, 자식 농사와 짓고 있는
작은 밭농사만 잘 되면 행복한 것이 '시골살이'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텃밭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니, 비가 거세어 집니다.
집으로 들어와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습니다.
시노다 고코의 '요리와 인생이야기'. 이 책은 각 국을 돌아다니며
맛 본 요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요즘 저는 이런 여행 책들을
통해 세상 구경을 하는 문화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의 유일한 문화생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읽기'입니다.
책을 읽는 중에도 거실 창 밖의 연 초록빛 연출은 계속됩니다.
IP : 61.83.xxx.154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aang
'04.5.10 1:12 PM (211.35.xxx.100)저의 궁극적인 목표도 60세 이후에는 '시골에 내려가 살기' 라서...
사진이며, 내용이 머리속에 확~ 들어오는군요.
일단은 많이 부럽습니다.
계속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어디 사세요?2. polaroid
'04.5.10 2:04 PM (218.152.xxx.193)강쥐이야기 잼나게 봤습니다....업뎃됬나 해서 가보면 아직이더라구요....^^;;
넘넘 부러워요....집도 그렇고......강쥐들도 그렇고........앞으로도 얘기 많이 들려주셔요~3. aang
'04.5.10 2:37 PM (211.35.xxx.100)아아~
지리산에 사시는군요!4. 쉐어그린
'04.5.10 5:27 PM (211.35.xxx.27)강쥐얘기요~~~~ 남편과 제가 가끔씩 올리는데, 요즘은 소재가 좀 궁해지네요.
울 강쥐들 자연 속에서 벌이는 해프닝 놓치지 않고 얘기거리에 올릴려고 합니다.
aang님 60세에 시골에서 살기를 위한 목표 변함없기를 바랍니다.
나이 들수록 자연이 정말 좋은 벗이라는 걸 시골 살면서 새록새록 깨닫습니다.5. 김혜경
'04.5.10 8:49 PM (211.178.xxx.7)쉐어그린님, 부럽습니다...
6. 쉐어그린
'04.5.11 10:00 PM (61.83.xxx.83)샌님! 열심히 사시는 모습! 저도 정말 부럽습니다. 언제 한번 얼굴 뵙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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