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80년대,
주변에 있는 각성한 친구들이
책 대신 돌맹이를 들고 거리로 나설 때
저는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조국을 위하는 길이 꼭 그것만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위안과 변명을 하면서
이후 살아가면서 내내 친구들에게 미안했고,
조국에 빚 지고 사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졸업 후 86년 민주화 항쟁 때에도 후배가 죽어가고
친구들이 아직도 거리의 투사로 치열한 삶을 살아갈 때
그때도 겨우 넥타이 잠시 고쳐 메고 뒤 줄에서
박수만 보내면서 또 위로 했습니다.
이것도 참여의 한 방법이라고
그러나 그것도 한 때
결혼 하고 아이들 생기고 녀석들이 세상의 경쟁에
내 몰리면서 점점 나는 조국에 대한 부채를 잊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학원 수업 마치는 늦은 시간에 맞추어
승용차 몰고 학원 앞에서 아이들 기다리면서
“그래 어차피 한국에서 살아 갈 거라면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지”
하며 또 내 자신을 위로 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뒤 줄에 서서
세상을 바라 보고만 있었습니다.
재작년 대선 때
오래간만에 옛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거리의 투사들도, 도서관의 범생들도
모두 중년의 아버지가 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의 주요 인사가 된 거리의 투사도
민노당의 열성 지지자가 된 범생도
노사모라고 수줍게 밝힌 대머리 아저씨도
모두 이렇게 위로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를 뿐이지
누구는 선이요, 누구는 악이 아니다”라고
그렇게 대한민국 중년 아버지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에게 눈 감아 주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86년 민주화 항쟁 때의 무용담도 우리의 안주 이었습니다.
역시 세상은 넥타이 부대가 떨치고 일어나야 바뀐다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앞줄에 서지 못하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머뭇거리며 서성이고
그래서 생각하면 미안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냥 잊어 버리는
대한민국의 80년대 넥타이 부대들 그들이 우리였습니다.
그러나 어제 3월 12일
한민당의 만행을 지켜 보았습니다.
이건 아닌데 최소한 이건 아닌데
이러면 우리 친구들 “같고 다름”이 아니
“옳고 그름”으로 다시 갈라져야 하는데
정말 이건 아닌데 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정말 깊게 반성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왜 저들은 다시 80년대로 되돌아 가고자 할까?
왜 저들의 눈높이는 우리와 다를까?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적어도 내가 뒤 줄에 남아 여전히 서성거리며
세상을 바라 보고 있는 이상
내가 우리 아이들 걱정을 핑계 꺼리로 세상과 타협하는 이상
내가 우리 직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 저들과 타협하는 이상
그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영원한 봉으로 간주 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사실은
이런 상황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영원히 이어 질 것 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해서
저 이제 그 동안 친구들과 조국에 빚 진 것 갚으려 합니다.
80년대 이후 줄 곧 내 가슴 한 모퉁이에 남아 나를 괴롭혔던
그 지긋지긋한 한 단어 “비겁자”
나는 오늘부터 그 놈의 비겁자 굴레에서 벗어 나고자 합니다.
비록 옛 친구들이 거리에서 흘린 피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 지 모르지만
나 이제 뒤 줄에 서서 서성거리면서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나 이제 40 중반이라는 세속적 핑계 대지 않겠습니다.
이제 넥타이 풀고 앞줄에 당당히 서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과 손에 손잡고 당당히 앞줄에 서겠습니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 갈 때
그때는 당당히 말하겠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이 아버지가 있었노라고
그때 그 자리에 너도 함께 있었노라고
그때 그 자리에 이 넥타이 풀고 새롭게 시작했노라고..
40대 중반의 넥타이 부대가 다시 거리에 나서며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넥타이를 풀면서(펌)
소 리 조회수 : 896
작성일 : 2004-03-13 12:26:24
IP : 221.165.xxx.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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