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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체험.

ido 조회수 : 1,415
작성일 : 2004-03-01 20:44:07




먹던 분유를 다른 상표의 것으로 바꾸면. 하루나 이틀. 민주는 분유를 거부한다. 예민한 혀가 그 다름을 감지하는 거다. 먹던 분유가 새벽 2시를 마지막으로 똑 떨어졌다. 월요일 아침까지는 견디겠지....했던 나의 계산착오였다. 그 배경엔 나의 게으름과 부주의와 성의부족이 있었다. 분유 4스푼에 죽 2스푼씩을 섞어 6번 분량의 분유를 계랑해 놓았었다. 칼로리가 부족했나보다. 대여섯 시간을 버티던 민주는 220ml의 우유 한 병을 다 마시고도 4시간마다 울어 보챘다. 먹던 분유를 사려면 시내까지 일부러 나가야한다. 위가 어느정도 단련 된 민주는 이제 토하는 일이 거의 없다.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집 근처 슈퍼에 있는 분유로 바꿔 먹이기로 한 거다. 슈퍼가 문을 여는 8시 반. 남편이 내 결단에 동의하고 서둘러 다른 분유를 사러 나간 사이. 나는 민주에게 당근죽과 배죽을 섞어 먹였다. 아침 공복에 죽을 먹이기는 처음이다. 새 분유를 탔다. 색도 틀리고 맛도 아주 틀렸다. 혀에 달라붙는 분유입자에선 쓴맛이 돌았다. 배가 고파 산만하게 놀던 민주는, 우려대로 분유를 거부했다. 먹는가.....싶더니....이내 혀로 밀어내고는 입을 조개처럼 닫아버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내 겨드랑이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너 배고프잖아. 먹어야 돼! 이내 고개를 내밀고 나를 쳐다보는 민주에게 분유를 다시 먹였다. 민주는 또 혀로 밀어냈다. 불가항력을 감지한 민주는 울기 시작했다. 얼굴이 빨갰다. 배 안 고파? 그래 그럼 좀 있다 먹자! 우는 아이를 안고 집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걱정이 들었다. 우유에선 쓴 맛이 났다. 이 분유를 먹고 자라는 아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쓴맛에 익숙한 아가는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의 분유먹이기 시도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무력이 있었다. 저항하는 딸에게 나는 무력을 행사했다. 빨개진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던 민주는 젖병을 치우면 울음을 그치고 기침을 했다. 그리고 웃었다. 나를 용서라도 하듯. 미안하지만 엄마. 나는 이 분유가 싫어요. 그러니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하듯 웃었다. 민주는 지금 잠이 들었다. 배가 고플텐데.....지쳐 잠이 든 것이다. 민주는 무력한 존재다.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정말 무력한 존재다. 엄마인 내가 자신을 도와 줄 거라고 굳게 믿고.....민주는 세상으로 왔을 거다. 내가 잘못했다. 민주는. 이제 무력을 안다. 울음으로 저항하는 법도 배웠다. 울음보다 더 강한 저항이 무서운 침묵이라는 걸 배우기까지.....민주는 얼마를 더 자라야 할까........무력이 더이상 필요없는 시대가......민주가 침묵을 배우기 전에 먼저 와야 할텐데.......배가 고픈 민주는 오래 자지 못한다. 허기가 그를 깨우기 때문이다. 나는 또 한 번의 시도를 해야 한다. 민주는. 실망할 것이다.....엄마에게. 눈이 내린다. 시내에 나가야 하는데......어쩌자고 눈은 자꾸 내리는 걸까. 한국은 오늘 삼일절이다. 내가 있는 독일엔 봄이 언제 올까. 민주가 깼다.  

....

사진은. 지난 토요일의 해오름 풍경입니다. 해 뜰 시각. 현관문을 열고 서면 안개를 밀어 내며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볼 수 있습니다......흑백처리해버린 건. 그 붉음을 감추기 위해서였구요. 상상해 보세요....낮게 엎드려 이동하는 안개의 무리와 붉게 피어오르는 아침해의 장관을요.......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IP : 62.134.xxx.27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쭈니맘
    '04.3.1 11:32 PM (210.122.xxx.183)

    이도님의 글이 너무 반갑게 느껴집니다...
    귀여운 민주..아가들은 참 신기하죠..??
    울 쭈니도 분유 한번 바꿔볼려다가 실패했었거든요..
    그 미묘한 맛의 차이를 금방 알아차리니...
    미각의 달인이야 말로 아가들 아니겠어요..??
    빨리 시내 가셔서 민주 분유 돌려 놓으셔야겠네요..

  • 2. 키세스
    '04.3.1 11:34 PM (211.176.xxx.151)

    저 아이 키울 때는 분유를 바꿔 먹이려면 며칠동안 먹던 분유와 섞어 먹이다 괜찮으면 바꿔먹였던 것 같은 기억이 나는데...
    그냥 바꿔도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먹던 거 사놓아야 되지않을까요? ^^

  • 3. 깜찌기 펭
    '04.3.2 12:19 AM (220.89.xxx.6)

    민주 잘크죠?
    그새 얼마나 컸는지 보고싶네요.

  • 4. ido
    '04.3.2 2:45 AM (62.134.xxx.198)

    마지막 시도에 바나나맛 나는 죽가루를 많이 섞었더니. 다행히 잘 먹길래요. 시내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시도를 했죠. 역시 또 잘 먹는 것이예요. ㅎㅎ. 죽가루가 바닥이 나서. 산책겸 근처 슈퍼 나갔다 왔어요. 장도 좀 보고....눈이 많이 와요. 민주는 기분 좋은지 노랫조로 옹알이를 하구요. 남편 와이셔츠 다섯 장 다려 걸어 놓고. 청소하고. 들어 왔어요. 저도 쭈니맘님. 키세스님. 깜찌기 펭님 댓글이 너무 반가운 거 있죠? 모두 행복하세요.

  • 5. 아라레
    '04.3.2 3:58 AM (210.221.xxx.250)

    다시 글 뵈니 반가와요. ^^
    민주 엄마힘들게 하지 말고 아무거나 잘 먹어야 할텐데...
    우유나 이유식은 양반이에요. 나중에 밥 먹을 때 되면 물고 있다 죄 뱉어요...ㅠ.ㅠ

  • 6. 솜사탕
    '04.3.2 5:53 AM (68.163.xxx.27)

    사진이 저를 압도하는군요.
    반가운 이도님 이름을 보고... 얼른 달려왔습니다.
    아가들이 아무래도 단맛을 좋아한데요. 이론적(?)으로는 쓴맛이 나는 분유도 먹을수 있는 전천후 입맛을 가지면 좋겠지요. 물론.. 세상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데로만 돌아가는것이 아니지만요...

  • 7. 카푸치노
    '04.3.2 8:47 AM (211.192.xxx.201)

    사진 넘 멋있어요..
    한국은 꽃샘추위로 다시 바람이 차갑습니다..
    아이키우기 넘 힘드시죠??
    힘내시고, 화이팅 하시길..

  • 8. 이영희
    '04.3.2 9:30 AM (61.72.xxx.244)

    저 멋진 광경 목격하고 사는 이도님 은 정말 행복하신겁니다. 이도님의 철학으로 키운 아가 어찌 클지 지켜보고 싶네요. 언제나 엄마 가 되는건 공부보다 어려운듯....전 잘 못하는부분을 날마다 시마다 사랑한다는말로.....

  • 9. 이희숙
    '04.3.2 12:11 PM (211.202.xxx.34)

    아이 키우면서 거치는 과정입니다.
    민주보다 바라보는 이도님이 더 힘드실듯 싶네요.
    이런 감정을 남겨둔 순간, 언젠간 웃으며 민주랑 얘기할 날 있을겁니다.

  • 10. 박혜련
    '04.3.2 1:26 PM (218.50.xxx.180)

    이도님의 글을 읽으니 너무나도 반갑네요.
    저는 이도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 멋진 시를 한편 읽는 심정이랍니다.

  • 11. 토사자
    '04.3.3 12:24 PM (221.148.xxx.202)

    이도님 글을 읽을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왕팬이랍니다.
    아기같기만 하던 남동생이 저번 일요일 독일 뮌헨으로 훌쩍 어학연수를 떠났답니다.
    1년 예정이라는데 상황을 봐서 2년이 될지 안돌아 올지 모르겠다는 말과함께요.
    그래서 독일문화를 조금씩 느끼게 해주는 이도님이 더 고맙고 소중하네요.
    혹 동생이 힘들어지면 이도님께 도움청해도 될까요???? ^^
    라면, 고추장 이딴거 하나도 안가져간 동생이 힘들때 갈만한
    고향 생각 느낄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한국 음식점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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