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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나 고우나

꿀물 조회수 : 989
작성일 : 2003-12-10 11:14:55
어제아침부터 목이 살살 아프더니 좀 지나니 눈알이 빠질것같고 몸도 어찌나 떨리는지
조퇴를 하고 애를 데릴러 갔다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리집은 시 외곽이라 택시타면 기본 15000원에 어린이집까지
들릴려면 최소 2만원은 깨질것 같아 -무슨 청승일까? 아파죽겠는데 택시비까지 신경쓰는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애 데리고 집에 왔다
오다가 속이 너무 안좋아 먹은것 다 토하고 신호등불이 빨간색인지 파란색인지 구별도 안되고
하나님 부처님께 집에까지 무사히 가게만 해달라고 기도하며 왔다
신랑한테 전화하니 무척 놀란다
평소에 거의 안아픈데다가 -애낳을때외엔 병원간일이 없으니-업무시간에 외출만 하는것도
죽는줄 아는 마누라가 조퇴까지 하고 왔으니...
근데 미국에서 토민가 톰슨인가 사장이 와 브리핑때문에 5시 반이나 되야 올 수 있다나!
아! 정말 온몸이 쑤시고 머리도 아프고 물도 못삼키겠고...
아들이 배고프다고 밥달라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일어날 수가 없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어렴풋이 신랑이 온걸 느낀다.
도저히 차를 탈 수 없어 신랑이 날 업고 4살짜리 아들 손잡고 걸어서 20분이나 되는 병원을 갔다
링겔을 맞으며 누워있는데 간호사 왈 평소 잘 안아프시죠? 남편이 어쩔줄 모르네요...
가끔씩 분위기 낸다고 신혼때처럼 안아서 침대로 한번만 던져봐 그래도 무겁다고 절대 안하던
남편이 날 업고 그 먼곳까지 냅다 뛰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밤새도록 남편 뭐가 그리 바쁜지 내내 왔다갔다 이마 만지고 물떠주고 가습기 확인하고 난리다
죽어도 밥에 국은 먹고 가야 하는지라 (이럴때 빵이나 좀 먹으면 얼마나 좋아?) 아침에 억지로
일어났다. 겨우 찌개하나 끓여 김치하나 달랑!
식탁에 앉았는데 잠을 못잤는지 눈은 벌개가지고 천리만리나 들어갔다

나(경상도여자) : 얼굴이 엉망이네! 그나저나 반찬이 없어서 뭐하고 묵노?

신랑(충청도남자) : ...

나 : 완전히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네!!

신랑: 괜찮다 국만 있으면 된다

나 : 오늘저녁에 시장좀 다녀와야 겠다 (일밥도 있으니 뚝딱뚝딱 매운탕이나 하나 해야지)

신랑: 반찬안해도 되니 이제 아프지나 마라

나:...

신랑: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 가족이라고는 엄마 돌아가시고 나면 너랑 애들뿐인데
        엄마야 이젠 살날이 얼마 안남았으니 돌아가시면 내겐 너말고 아무도 없다
        아프지 마라 너 없으면 나 죽는다

나: ... (아이고 이사람이 갑자기 왜 안하던 말을 하고 난리야 눈물나게...)

순간 술먹고 외박해 미워죽겠던 마음도, 어머니때문에 힘들어 너 안만났으면 나 이렇게 안살아
하고 원망하던 마음도, 퇴근하면 꼼짝도 안하고 차려주는 밥상만 받아 내가 너네집 식모야
너 밥해주고 빨래해주러 시집왔어? 짜증나던 마음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렇게 말한마디에 그동안의 불만이 사그라드는 나도 참 우습다
'그래 내 평생 니 식모로 한번 살아보꾸마"



IP : 218.154.xxx.138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푸우
    '03.12.10 11:22 AM (218.52.xxx.64)

    남편분 너무 멋지세요,,
    서울말로 하는것보다 사투리로 들으니 더 정감있네요,,개인적으로,,ㅋㅋㅋ

    몸은 좀 괜찮으세요??

  • 2. TeruTeru
    '03.12.10 11:25 AM (128.134.xxx.68)

    이번 감기가 독하다고 하던데... 정말 인가봐요.
    저도 어제부터 콧물에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그래도 ^^
    무지 아프셨지만, 남편분때문에..
    좋으셨겠어요.....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에고..이맛에 결혼하는 걸까요....

    어쨌든.. 아프지 마시고 얼릉 기운차리세요! ^_____________^)

  • 3. 꿀물
    '03.12.10 11:27 AM (218.154.xxx.138)

    지금은 좀 괜찮아 졌어요 방금 링겔한번더 맞았어요 조금있다 출근하려구요
    푸우님 고마워요
    세척기 후기달려고 했는데 어제 너무 아파서...
    전 동양꺼 쓰고 있는데 2분의 1 기능만 있어 양이 작어도 반만 넣어 돌릴수 있어요
    단점써달랬는데 장점써서 미안해요

  • 4. cherokey
    '03.12.10 11:34 AM (211.35.xxx.1)

    남편분 말씀에 마음이 짠~~~하네여
    눈물납니다...근데 진짜로 많이 아프셨나봐요.
    전 평소에 골골하는 사람인지라.
    제가 아프다고 해도 반응이 영 시원치않네요
    얼른 나으세요...

  • 5. 부산댁
    '03.12.10 11:36 AM (218.154.xxx.109)

    이번 감기 정말 독한가봐여.. 독감때문에 죽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니...
    꿀물님 몸조리 잘하셔서 빨리 나으세요..

    " 아프지 마라 너 없으면 나 죽는다 " 헉... 감동적입니다.. 눈물이 글썽글썽..

  • 6. 호야맘
    '03.12.10 11:39 AM (203.224.xxx.2)

    아이 어린이집때문에 속상하시고..
    꿀물님 몸도 안좋으시고....
    많이 힘드시네요.. 정말..
    부부란게 정말 참 웃기죠?
    웬수라고 막 흉보고.. 치떨고... 난리 떨다가도
    가끔 감동스런 말 한마디면 눈물을 뚝뚝 떨구며 예전에 언제 그랬냐는듯... 호호호 낄낄낄...

  • 7. 꾸득꾸득
    '03.12.10 11:43 AM (220.94.xxx.39)

    갑자기 제가 눈물이 핑도는건 무슨 오바인지 ,,참.-,.-

  • 8. ky26
    '03.12.10 1:12 PM (211.219.xxx.35)

    져두요 눈물 날려구 해요
    지금 누가 말시키면 안돼는뎅...

    빨리 완쾌하세요

  • 9. 다린엄마
    '03.12.10 1:51 PM (210.107.xxx.88)

    맞아요. 여자를 행복하게 하는건, 그동안의 맺힌것들을 모두 용서하게 하는 것은, 그런 진심어린 말한마디이지요. 비싼 선물이 아니라...
    어서 회복하시길.

  • 10. 보리
    '03.12.10 1:55 PM (220.121.xxx.65)

    하하, 절로 미소짓게 만드는 글이네요.
    마지막의 평생 니 식모로 살아보꾸마란 다짐 너무 재미있네요.

  • 11. 가을맘
    '03.12.10 2:47 PM (211.172.xxx.110)

    아이구 배아프네요...
    완사에 차인표보다 더 멋진 남편이네요...
    아이때문에 신경쓰구 몸두 아프구 그래두 남편사랑때문에
    금방 일어나실꺼 같은데요...
    빨리 완쾌하셔서 신랑한테 사랑 듬뿍 주세요...(^^)

  • 12. 김새봄
    '03.12.10 4:16 PM (218.237.xxx.253)

    참~ 눈물이 나오면서 왜 이리 배도 아프죠?
    감기 얼른 뚝~ 떨구세요..

  • 13. 국진이마누라
    '03.12.10 4:54 PM (203.229.xxx.2)

    저두 읽고 울신랑 국진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어요. 울신랑도 제가 갑상선으로 약을 먹고 있다고 결혼하고 나서 고백하니 엉엉 울대요.. '암걸린 사람들도 있는데 이 정도 병은 감사해야지' 했더니 제가 넘 가엽다고 말이죠. 길게 살아보진 않았지만 역쉬 옆에 남편이 있다는게 넘 행복해요.
    아픈건 안좋지만 가끔 고난?을 겪는 것도 서로의 깊은 사랑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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