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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에 다녀왔어요.

유지니 조회수 : 910
작성일 : 2003-11-10 14:52:30
저희 시댁은 경상북도 안동이랍니다.
올해 여든 둘이신 시어머님과 8남매(아들 다섯, 딸 셋) 중 둘째, 세째 아들과 큰 시누이가 고향에 살고 계시지요.
서울 근교에 사는 큰 형님과 막내인 저희 부부가 토요일 연가를 내어 함께 다녀왔지요. 새벽 여섯시 형님 내외분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차를 주차해 놓고 저희 차로 함께 움직였는데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가을 풍경을 느끼기에는 좀 아쉬웠어요.
사실 안동의 시제는 꼭 음력 10월 15일 에만 지내기에 저는 거의 가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토요일이라, 그리고 혼자 가기 싫어하시는 형님 모셔갈려고 결혼 19년 만에 같이 가게 되었답니다.
아무튼 안동에 도착하니 9시 남자 분들은 음식을  챙겨서 산으로 가시고 형님과 저는 아침 설겆이로 시작해서 청국장 만들기, 늙은 호박 속 긁어내어 잘라놓기, 텃밭의 나물 솎아서 다듬기, 은행 담아놓기, 이모든 것은 8남매를 위한 것이지요. 형님하고 둘이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일하고난 뒤 어머님과 자리에 누워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며 낮잠 한 숨 자려는 순간 큰시누이께서 오셨어요. 학교에서 퇴근하고 곧바로 왔다시며 안동 하회 탈놀이를 보러가제요.
그래서 또 급하게 상 차려서 점심먹고 구경 갔죠. 어머님과 무대 주변에 앉아서 딸과 며느리 둘이 같이 보니까 어머님께서 어린아이처럼 너무 좋아하셨어요. 사실 그동안 큰형님께서 안동에 잘 안 가셨거든요. 맏며느리에게 너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원하시니까 서로 불편했던거죠. 어머님이나 형님이나 다 좋은 분들인네 주변의 인물들 끼이고 하니까 항상 불편했거든요. 이 번에 서로 불편한 마음도 좀 풀고 올라오니 아주버님께서 너무 고마워하시고 어머님도 저한테 고맙다고 하시데요. 하여튼 마음이 따뜻해지는 주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날 아들 기숙사에 가보니 빨래가 한 뭉치 나오고 입을 옷이 없다고 짜증내는 걸 간신히 달래놓고 기숙사 청소하고 빨래 해놓고 옷 몇 가지 사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 왈 자식 노릇 하랴 부모 노릇 하랴 참 힘들구나. 집에 와서 밀린 일 하고 오늘은 토요일 빼먹은 수업까지 하고 삭신이 부셔질 듯 합니다. 그래도 행복해요.
IP : 211.252.xxx.1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으니
    '03.11.10 4:01 PM (220.81.xxx.148)

    저도 어제 시댁 시사 다녀왔지여. (울 대전...시댁 옥천....고속도로타면 30분 걸립니다.)
    전날 울남편 10시~11시 사이에 지낸다하셨다며 일어나자마자 가야한다고 하더라구여.
    7시 30분..... 놀러갈 때 말곤 이렇게 일찍 안 일어납니다. 평소의 일요일엔....
    준비하고 꼭 먹어야 하는 아침도 거르고 갔지여.
    같은 동네에 있는 큰댁에 가서 얼굴 철판 깔고 거른 아침부터 챙겨먹고,
    전날 준비해 놓으신 것들 차리고, 깜빡 한 것들 부랴부랴 준비하고.....
    저흰 산에 안 가고 그냥 큰댁에서 지내는지라...그리고 워낙 여자들이 많았던지라
    금방금방 차리고... 치우고....별로 힘들이지 않았답니다.
    오가는 길에 가을이 많이 깊어진 것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덕분에 코에 바람 좀 넣고 왔다지여^^
    에궁....막내라지만 가까이 사는 지라 자식노릇 좀 하려니 만만하지 않습니다.

  • 2. 김혜경
    '03.11.10 8:10 PM (219.241.xxx.250)

    보람찬 주말을 보내셨네요...

  • 3. 김경연
    '03.11.10 9:03 PM (61.96.xxx.130)

    엇, 저도 안동에 시제 다녀왔는데..(애들 말로 방가방가 군요.)
    저희는 10월 마지막 일요일날 지내시거든요...
    토요일날 남편이 당직이어서, 할 수 없이 일요일날 아침 첫 우등고속(6시) 타고, 8시 30분에 도착하여 아침 먹고 한 9시부터 산으로...저희도 원래 여자들은 안간다는데, 저는 시집가고 첫 시제여서 다 인사드렸고요, 덩달아 작은 할머님만 빼고 온 가족이 산으로...산을 세개정도 올라간 것 같아요...그리고 다들 흩어져서 계시더라고요...(고조부님과 고조모님은 각기 다른 산...^^;)
    고조부님, 고조모님, 증조부님, 증조모님, 작은 증조모님, 조부님, 조모님...제가 한 일곱군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저희 남편 말로는 더 갔다네요.
    재미있는 건 그 산을 다 구두를 신고 치마를 입고 올라갔다는 거죠...첫날이니 어른들꼐 절할 일이 많다고 울 시어머님께서 코치를 해주셨는데, 아뿔싸, 산으로 갈 줄이야...^^
    그래도 참 좋았네요...유지니님, 안동 며느리(엄밀히 말해서 저희 시집은 대구지만..) 친구해요.^^

  • 4. 유지니
    '03.11.10 10:12 PM (211.226.xxx.29)

    김경연님 반가와요. 저는 고향이 부산이구요, 처음 시집가서 남편없이 혼자 한동안 시집살이 했거든요. 그 때 안동과 문화의 차이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참 많습니다, 오이를 썰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이게 가지냐? 그러셔서, 어머님! 이건 오인데요 하고 말씀드렸죠. 가지란, 안동 말로 이것이 전부다냐 란 뜻을 나중에 알게 되었구요. 결혼식을 부산에서 했는데 폐백드릴 때 꼭 신부는 절을 네번 해야되고 그것도 개인 개인에게 해야 하니 나중에 폐백실 아줌마가 시간 없다고 한번만 하자고 하니 상놈이라고 벌컥 화내시던 친척 할아버지. 신혼 여행 돌아와서 시댁에 갈 때 친정의 가족들이 따라가셨는데 손님상에 떡국이 스덴 밥그릇 가득 나와 친정 가족들 안동은 양반이라더니 사돈에게 밥은 대접안하고 떡국을 내냐?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한 그릇 씩 뚝딱 했는데 그다음 상이 나가고 다시 또 상이 들어와서 보니 그야 말로 밥상이었던 것. 이미 배는 불렀지만 안 먹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에 또 뚝딱 나중에 알고 보니 옛날 부터 아래 사람을 위해 음식을 조금씩 남기며 드셨다나. 그래서 시댁 식구들은 계속 그릇을 뚝딱 비우는 사돈을 몹시 시장하셨구나 생각했답니다. 그리고 불쌍한 저희 친정 식구들 배탈났지요.
    또 한 번은 시댁 큰어머님께서 저보고 새댁이 어딨노? 하셔서 저 여기 있는데요 하니 자꾸 새댁이 어딨노 하셔서 의아해 했더니 어머님께서 저 여깄니더, 찾았니껴? 하시는거 있죠.(참고로 큰어머니 아흔 다섯이십니다. 안동은 손아래 동서는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새댁이라네요.) ㅋㅋㅋ
    여러모로 제가 자란 곳하고는 다른 점이 많구요. 처음에는 너무 형식을 중요시 하고 윗 사람 들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게 답답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다 보니 형식 속에 들어 있는 지혜나 질서도 알게 되었구요. 또 속정 깊은 것도 알게 되었답니다.
    앞으로 82COOK에 안동 토속 음식도 좀 소개해 봐요 우리

  • 5. 김경연
    '03.11.11 7:43 PM (61.96.xxx.130)

    이야~ 저는 고향은 서울이예요. 그리고 시집살이도 아직 안하고 있구요...
    ..니껴..하는 어미를 들으니, 너무 친근하고, 재미있네요. 저는 시댁에서 "새사람"이라고 부르시는데, 지난 시제 때 내려가서 깨달았죠...저 말고 60대 "새사람", "새댁"이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렇게 안헷갈리고 사람이 찾아지는지도 신기.)

    저도 폐백 때 맏아버님이 조금 역정을 내셨댔어요...바로 뒷 결혼식 때문에 서둘러서 폐백을 하느라, 그리고 또 요즘 폐백은 도우미 아주머니의 역량에 따라서 러브샷도 하고, 뭐 그렇잖아요...그런 거 법도에 하나도 안맞는다고 계속 한마디씩 하시더라고요...^^;;
    제일 먼저 이야기할 것은 안동식혜! 어른들은 제가 그걸 잘 못먹을까봐 걱정하시던데, 사실 저는 처음 먹어보았지만, 너무 맛있더라고요, 그쵸? ^^
    나중에 천천히 안동 토속 음식글을 올려보아요.......그런데요, 저는 솔직히 아직 제대로된 안동 며느리 아녜요(완전 깡패 나이롱임)....유지니님이 훨씬 더 잘아실것 같아서, 쪼매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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