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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지도 않았는데 사서 걱정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15년동안 중풍후유증으로 몸 반쪽을 쓰질 못하시는 할머니(시어머니) 병수발을 다 해내셨어요. 환자 병수발이 어떤건지는 곁에서 보면서 적나라하게 A부터 Z까지 다 알게 되었구요. 어머닌 똥오줌 받아내는 것은 물론 그게 잘 나오지 않을때는 수작업....도 해야했고, 직접 목욕시키고 때밀고 등등등 저희 키우면서 아버지 내조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같이 모시고 그렇게 20년을 살았어요. 고모나 삼촌, 심지어 아버지, 할아버지도 자긴 그런거 못한다면서 어머니더러 넌 타고났다보다 했대는데 저도 같이 들으니까 치가 떨릴 때도 있었구요. 타고난게 어딨습니까 아무도 안해서 내가 하는데, 심지어 내가 안하면 못배우고 막되먹은 며느리, 자기들이 안하는건 그냥 우린 못해서 못하는거. 이래버리는데.
그래서 엄마의 고충을 잘 이해해요. 근데 사실 적고보니 저도 한 행동은 시댁식구랑 진배없어요. 초, 중학생때야 어려서 그렇다지만 고등학생때도 덩치는 다 컸는데 엄마가 할머니 힘들게 옮기고 그럴때도 가끔 손만 대는 정도... 씻길 때 아무 도움도 안됐구요. 똥오줌 받을때는 도망가고 그랬어요. ....엄마야 자기 딸이 고생하는거 싫어서 일부러 더 안시키기도 했지만요. 그래서인지 집안일, 제사일도 일부러 안 시키고 그랬어요.
그리고 전 할머니 별로 안 좋아해서 15년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면서 이야기도 잘 안해봤고 대놓고 싫어하고 그랬거든요. 제가 애기때, 할머니 몸 멀쩡하셨을땐 많이 사랑받았다고도 들었고 그리고 할머니 몸 편찮으실때도 저 공부 잘하면 좋아하시고 그랬지만 저는 도통 정이 가질 않았어요. 쓰러지기 전 5년간 엄마 고생시킨 이야기도 하도 많이 들어서... 시집살이의 진수를 간접체험했달까요.; 물론 고부간 갈등만 시집살이는 아니죠. 더 미운 시누이들, 더더더더 밉살인 몇 년에 한 번꼴로 집에 놀러와서 금전적 요구만 해대면서, 놀러온 주제에 젤 만만한 우리엄마 까는 못된 먼친척 등등... 대학 오기 전엔 우리집만 이런줄 알았는데 또 생각보다 이런 집들도 많더라구요.
대학에 오고 남자들도 만나고(연애는 제대로 못해봤지만 ㅠ) 그러다보니 결혼에 대해 문득문득 생각할 때가 있었어요. 이제 나이도 20대 중반이니 연애 오래한 친구들은 진지하게 결혼 생각도 하기 시작하구요. 그런데 저는 요리 엄청 좋아하구요, 아이들도 좋아해서 좋은 가정을 만들고 싶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결혼은 남편과 나의 1:1관계가 아니라 1:다수(남편+시댁친인척)의 관계라는걸 알기 때문에 결혼은 너무 하기 싫어요. 20살 되기 전에는 요리는 커녕 방청소도 한 번도 내 손으로 해본 적 없었지만 대학 입학후부턴 쭉 자취를 해왔고, 엄마의 요리실력이라든가 가사실력을 쏙 빼닮아서 결혼 후에 아침차리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런건 정말 자신이 있는데, 시댁식구들이랑 작은 마찰만 있어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을 것 같아요.
사람 살면서 한 번도 부딪히지 않으면서 살 순 없는 거 잘 알아요. 그런데 어머니가 경험했던 시집살이를 생각해봐도 내가 나중에 누군가의 며느리가 된다는게 너무 싫구요, 요즘이야 좋은 시댁도 많다지만 인터넷 같은데 보면 아직도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며느리들 너무 많은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좋은 집이라고 하시는 분들의 글이나 댓글을 봐도 사소한거 하나하나(때마다 선물, 자기들끼리 여행갈 때에 부모님은 어떡하냐 등등) 신경써야 할 앞날들이 너무 훤히 보여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어요. 아니, 좋은 가정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커서 결혼하기가 싫은걸까요.ㅠㅠ 저는 가정=아빠, 엄마, 아이들 /이렇게 생각하는데 시댁 특히 남편/남자들은 가정=우리엄마아빠(시어머니시아버지), 아내, 아이들, 내 형제들(아이들 입장에서 고모, 삼촌)인거 같은데 전 이게 너무 싫구요. 물론 가정의 개념을 저랑 똑같이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테지만 또 저렇게만 살 수 없는 현실도 알고요... 이건 그냥 이상향이겠죠;
결혼을 딱히 하고 싶지 않으니 연애를 못해본 상황인데도 연애마저도 굳이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혼자 밥해먹고 정말 잘 놀거든요-_-; 싱글체질인가 싶기도 하고;
친구 많지만 언젠가 다들 결혼하면 저 혼자 남을 거도 알아요.
근데 저는 친구들이랑도 잘 놀지만 혼자서도 정말 잘 놀아요.-ㅁ-;
나중에 정 외로우면 반려동물 들여서 평생 함께 살고 싶기도 하구요..
아이는 입양이라도 해서 키우고 싶지만 아버지 없는 아이 소리 듣게하기 싫으니 그것도 패스..
연애를 해보면 달라질거라는 조언도 많이 들었구요..
이거 진짜 닥치지도 않았는데 사서 걱정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한 번씩 이렇게 생각이 들면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궁금키고 하고...
푸념글이나 올려봅니다.ㅠㅜ
덧.
결혼하기 싫다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그런 말 하면 부모님 탓 되버린다고. 그런 말 하는거 아니라면서 이야기하셔서 가슴 아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생각이 안 변하네요.ㅠㅠ
1. 그래도
'11.4.19 1:39 PM (168.131.xxx.200)다행히 세상은 사람이 많은만큼 사는방식도 다양하더라구요. 100인100색이란 말이 있듯이요. 저도 친정이 집성촌 종가라 결혼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는데 의외로 장남이지만 시댁은 막내라 제사도 없고 차례도 없고 무소식이 희소식이 모토이신 시부모님이시고 친적들도 그다지 복닥거리지도 않는 집안으로 시집갔네요. 전 명절에 차례 안지내는 집이 있다는걸 처음 알았어요.
미혼일때 나의 장래 남편감은 이러이러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목록(?)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의 그런남자랑 결혼했더라구요. 그러니까 일부러 그런남자를 찾은게 아니라 결혼해서 살아보니 그런 남자더라 이거지요.
원글님도 마음깊이 새겨놓으시면 그런 남자 만날거예요.
그리고 우리같이 이미 간접경험을 많이한 사람들은 의외로 시댁 스트레스 안 받고 무던하게 살더라구요. 전 지금 결혼 10년이 되가지만 오히려 차례도 없는 시댁이 재미없어서 일부러 명절이면 친정에 가서 지내기도해요. 애들한테 제사 문화도 보여준다는 핑게로..ㅋㅋ2. ㅜㅡ
'11.4.19 1:43 PM (218.146.xxx.177)저희도 종가는 아니지만 집성촌 출신이었어요.. 으휴 ㅜ
답글 감사드려요. 이런 고민 하는게 쓸데없거나 너무 부정적으로만 삶을 사는건 아닌가했는데 언젠가는 좋은 결과(?)도 가져다 줄 수 있는 거였군요...3. 님글
'11.4.19 1:53 PM (180.230.xxx.93)읽고 생각난게
고아출신 남편을 맞으면 해결될 것 같다는 .....
그러나 시댁이 없으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도 열복 없다고 아마 시댁대신 남편이 못 살게 굴지도 모르겠어요. 나이드니 여럿이 복작거리고 사는데 사람답게 사는 것 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