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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홈메이드 [도토리묵]

| 조회수 : 8,158 | 추천수 : 316
작성일 : 2003-03-21 21:41:16
제 친정어머니는 아직도 절 잘 못믿으세요.
그래서 음식을 해다 드리는 것보다, 차라리 재료를 갖다드리는 걸 더 속편해하고,
제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것보다 외식이 더 낫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생각하셨어요, 팔 다치시기 전까지.
그런 속내를 모르지않는 지라, 저도 국을 제가 끓인 것보다는 엄마가 좋아하는 모래네설렁탕에 가서 양곰탕이랑 해장국이랑 도가니탕이랑 사다드리곤 했죠.
어차피 왼손으로 식사를 하셔야하니까 이런저런 반찬 드실 수 없고 해서 그정도로도 통했는데...

아버지 퇴원후 사정이 달라졌어요. 엄마는 그렇다 쳐도 아버진 뭔가 반찬을 드셔야 하잖아요.
그래서 샐러드거리랑 드레싱, 메추리알 장조림, 버섯 불고기, 뚝배기 불고기, 돼지고기완자 케첩조림,
제가 손수 쑨 묵, 버섯밥, 팥죽 등등 저희 집에서 해먹는대로 조금씩 가져다 드리게 됐는데...

처음엔 좀 탐탁치 않아하는 것 같더니, 요샌 좀 달라진 것 같아요.아버지가 아주 맛나게 드신대요.
특히나 제가 칭찬을 엄청 들은 게 도토리묵.


한 6년전인가, 제가 스포츠서울에서 음식담당기자를 할 땐데 평범한 주부들의 특별한 요리를 소개하는 그런 난을 맡아서 했거든요.
그때 취재한 아주 젊은, 맞벌이 주부, 도토리묵을 쒀 먹는다고 하더라구요.
저희 시어머니가 도토리묵을 엄청 좋아하셔서 그 주부가 가르쳐준대로 묵을 쒔는데 정말 맛있게 됐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묵이 잘 굳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몇년동안 묵을 쑤질 않았죠. 그러다가 지난번에 묵을 다시 쒀서 묵국수를 했더니 아주 맛나더라구요.
지난 주 도토리가루 딱 한컵으로 묵을 쒔더니 스텐도시락으로 딱 하나가 되길래 저희 집은 안먹고 엄마 가져다 드렸어요.
주말이면 으례 엄마네 들르는 오빠네 작은 아들(이쁜 내 조카)이랑 동생네 가족, 그 묵에 뿅 가버렸대요.너무 맛나고 야단들을 했다네요.
그래서 오늘 다시 쒔어요. 그렇다고 해서 맞벌이주부이거나, 가족이 적은 분들은 따라 하지마세요. 힘들어요.그냥 사다드세요.

전 이렇게 했어요. 어제 아침에 묵가루 1에 물 5을 붓고 잘 저은 다음 다용도실에 놔뒀어요.
어제밤에 윗물을 따라내고 그만큼 물을 다시 부었죠.
그리고 오늘 아침 다시 한번 같은 과정을 반복했어요.---이 과정은 도토리의 떫은 맛을 빼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아까  물과 아래 가라앉은 도토리가루 앙금을 잘 섞은 후 냄비에 담고 중불에서 계속 저었어요.
처음에는 베이지색 같은데 한 10분쯤 계속 저어주니 초코릿 색으로 변해 가면서 빡빡해지면 주걱이 잘 안돌아가죠.
이때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넣었어요.---기름은 도토리묵의 윤기를 더해줍니다.
약 5분 정도 더 저으면 뻑뻑했던 것이 조금 묽어지는 듯한 느낌이 나요.
이럴 때 가스렌지의 가장 약한 불에 올려놓고 5분 정도 더 저으면서 참기름을 넣었어요.---참기름은 맛과 향을 더해주죠.
그리곤 뚜껑을 덮고 약 5분쯤 불위에 올려놨어요.---뜸들이는 과정으로 이걸 건너뛰면 도토리묵이 굳질 않고 죽처럼 된데요.
다시 불을 끄고 5분쯤 놔뒀다가 스텐도시락에 담았어요---이래야 모양이 나죠.

조금전 나가보기 잘 굳었네요.

그런데 아직 풀지 못한게 있는데...왜 조그만 검은 덩어리같은 게 생기죠? 도토리 누룽진가? 지금보니까 딱 하나 그런게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네요.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lalala
    '03.3.22 9:20 AM

    안녕하세요 김혜경 선생님..
    맨날 눈팅만 하다가 글을 남기네요..모래내 설렁탕이라..거기 친정식구들이랑 잘 가던 곳인데..
    542 종점있는데 맞죠? 혹시 봉희 설렁탕도 아시나요? ^^
    결혼한지 1년인데 제대로 할줄 아는 요리도 없이 지내다 82cook을 알게 돼서 기뻐요..
    책도 사고 싶어서 몇군데 가봤는데 다 나갔다고 하네요...좋은 하루되세요..

  • 2. kaketz
    '03.3.22 10:11 AM

    우와 봉희 설렁탕 아시는 분 있네...유명하죠...김영삼 전대통령이 단골이라 매일 아침 봉희 설렁탕에서 사다 먹었다던 얘기가 있더군요..그 집은 김치가 아주 끝내주는게...내가 아는 집을 아는 분이 있다니 너무 반가운 거 있죠...
    홈메이드 도토리묵!!! 매일 엄마가 해 주시는 것만 먹었지 만들어 보질 않았는데...저도 한 번 해 봐야겠네요...엄마는 만들어 주는 거나 먹으라고 하시면서 안 가르쳐 주세요..일 잘하면 시집가서 일만 하다 치여 죽는다나 뭐라나...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아무튼 제가 좋아하는 도토리묵 이젠 엄마 없을 때는 제 손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겠네요 **^^** 감사합니다

  • 3. 나혜경
    '03.3.22 10:19 AM

    볼희 설렁탕이 그렇게 유명 하군요.
    차타고 가다가 지나가던 봉희 설렁탕 차에 적힌 홈페이지 까지 들어가 봤어요.
    우편 판매도 하던데 함 사먹어 볼까봐요.

    그리고 도토리 가루는 어디서 사는 건가요?
    시중에 파는 묵은 너무 맛이 없더라구요.

  • 4. 초짜주부
    '03.3.22 10:29 AM

    모래네 설렁탕....신랑이 그쪽에서 쭉 자라..8년 연애하면서 마니 들렀던 곳이네여..
    근데 어찌된일인지 지금 녹번역 근처서 살면서 결혼하고 못가봤는데.
    담주쯤 가자구 해봐야겠어요~^^
    집에서 묵을 쑤구 두부도 만들고...식구들이 환호하면 정말 행복할거같아여~

  • 5. 토요일
    '03.3.22 11:02 AM

    덩어리가 생긴건 눌어서 생긴걸거예요.
    저희 시어머닌 솥에 불을 넣자마자 무조건 첨부터 끝까지 저으시더라구요. 인내심 엄청필요~
    그러면 눌지도 않고 덩어리 없이 부드럽게 되요.
    참기름 넣는건 오늘 알았네요. 윤기돌라고 식용유만 조금 넣었었거든요.

  • 6. 김혜경
    '03.3.22 11:15 AM

    저희 집도 녹번역 근처예요, 대림아파트...
    우리 kimys는 봉희설렁탕 맛이 없다고...
    친정집 식구들도 봉희보다는 모래네설렁탕을 더 좋아하구요.

    도토리묵 가루는요, 농협 하나로클럽이나 아님 농협지점의 농산물코너에서 팔아요.

  • 7. 홍순옥
    '03.3.22 11:46 AM

    선배님. 안녕하세요.
    전 감기나 몸살로 아파 누워있게 될 때면, 꼭 이 도토리묵무침이 먹고 싶어져요.
    그래서 저희 엄만 제가 아프면 시장에 도토리묵을 사러 가시곤 했지요. 직접 만든 묵은 아니지만
    쑥갓이 척 얹힌 그 묵무침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물론 묵무침 한 접시에 병도 빨리 나았고요.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아이 오면 선배님 책에 나오는 김무전 할머님표 김치김밥을 해주려고 해요.
    선배님 책은 제 주방 옆 작은 자투리 공간에 제가 좋아하는 헬렌니어링 님 책들과 법정 스님 쓰신 신간이랑 같이 꽂혀 있어요. 제 손이 가장 자주 가는 곳이거든요.
    선배님을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제가 선배님께 느끼는 정감은 꼭 오랜 세월 가까이 지낸 이웃집 언니와 같네요.
    여긴 일산이거든요, 아이랑 김밥 싸들고 호수공원에라도 갈까봐요. 그냥 집에 있기엔 날씨가 너무 좋네요. 선배님께서도 이 따뜻한 봄햇살을 느낄 시간이 나시길...

  • 8. 후니맘
    '03.3.22 12:11 PM

    도토리하니까 생각나네요
    작년 가을에 시부모님께서 우면산에서 도토리를 엄청 따오셨어요
    틈만 나면 가셨죠... 5포대정도 따오셨을꺼예요
    10년에 한번 올까말까하는 도토리풍년이라면서...
    사람들이 하도 많이 따서 산에 글까지 써붙여있었데요...
    "다 따가시면 다람쥐가 겨울에 먹을것이 없답니다"라고요
    저희 시부모님들이 도토리가루를 낸 과정은..
    먼지 도토리를 까서 말리고 말린 도토리를 방앗간에 가져가서 가루낸다음
    양파자루2개를 겹쳐 도토리물을 만들었답니다.
    그러기를 서너번 나중엔 면보자기로 한번 더하구요
    고운 도토리물이 나오면 물과 함께 며칠을 놔두면 밑에 고운도토리액이 남습니다
    (혜경님께서 도토리가루 물과 함께 하룻밤 둔다고 하셨죠...)
    고운도토리액을 다시 말린답니다...
    이과정이 말로는 쉽지만... 저 죽는줄 알았거든요 옷도 버리고요
    도토리물이 쉽게 안빠지구요
    근데 너무 허무한게 5포대정도되는 도토리가 이런 과정이 된후에 정말 정말
    조금밖에 나오질 않더라구요
    시중에 가루를 판다고하는데 그값하는구나라는 생각들구요
    저희 어머님은 1:8정도 비유로 하시더라구요
    기름같은것 넣지 않구요.. 넣지 않았도 맛이 있답니다..
    적당히 쓴맛을 유지하면서요...
    어제도 먹었었는데... 또 먹고 싶다...

  • 9. 초짜주부
    '03.3.22 12:27 PM

    헤헤 일밥 첨에 나오자마자 사서보구 댁이 녹번역 근처신거 느끼구 굉장히 반가왔답니다.
    사진에 나오는 닭집이며 야채 상이 제가 가는 녹번시장쪽일까..딴쪽일까 막 가게모습 비교해보기도 하고요^^ 결혼하고 이사온 새동네라 이마트는 알아두 재래시장정보가 참 궁금했거든여..
    전 도원극장 맞은편 골목에 살아여..예전에 게시글중 도원극장 가셨단 글보구두 반가왔구여.
    일밥 정말 열번 넘게 정독한거같아여..
    친정어머님이 요리에 그닥 관심이 없으셔서 전 조갯살도 냉동해서 활용한다던지하는 기초적인 정보를 정말 책보고 첨 알았답니다.~
    정말 친정 엄마가 살짝 가르쳐주는 비법들 같아 따뜻하게 읽고 또 일고, 부엌에서 하도 잡았다 놨다해서 책이 좀 주글주글 해졌죠^^

  • 10. 김혜경
    '03.3.22 9:00 PM

    책에 나오는 재래시장은 홍은동 인왕시장이에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곳이죠. 아직도 시골의 정취가 풍기는 듯도 하고...

  • 11. 김소영
    '03.3.25 8:53 AM

    인왕시장..말씀하시니까 넘 반갑네여.. 저두 집이 홍제동이라 인왕시장에 가거던여.. 녹번동 대림 아파트도 제 친구가 살아서 몇 번 가봣구여.. ㅋㅋ 하여튼 넘 반가워서 글 올려여..

  • 12. 김혜경
    '03.3.25 5:45 PM

    대림아파트 오실 때 연락주세요.

  • 13. 잠비
    '06.6.7 8:21 PM

    결혼해서 처음 살던 곳이 문화촌입니다.
    그때 인왕시장에 다녔지요. 오랜만에 대하니 반갑습니다.

    이곳에는 도토리가루를 파는 분이 있어서 해마다 사놓고 묵을 쑤어 먹는 답니다.
    가루와 물을 1: 6의 비율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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