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죽은 시계가 벽에 붙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 굽은 부엌문 안에서
시커멓게 다리를 벌리고 쏘아보는 아궁이에게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던가
뒤란 마타리꽃 얼굴이 눈에 부실 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얼룩 뱀이 등을 빛내며 장독 그늘로 스며들어갔다
마음이 먼지처럼 줄어
빈 손바닥으로 마루를 쓸어 주었다
시작되기 전에 넘치고 멈추지 못해 지나친 기다림이었다
속이 비치는 여름옷 위로
칠점박이 무당벌레들이 날아앉아 살을 더듬어 왔다
등燈 같은 어린 것들이
얼굴 깨어진 사진틀을 지나
목구멍까지 늘어진 거미줄을 타고 가물가물
주저앉은 방구들 틈
없는 무릉을 메고 떠도는 쥐며느리 떼를 비추어 주었다
개가죽나무처럼 어두워져서
나는 기우뚱 저승으로 몸을 기울인 채였다
-- 조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