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산토리 뮤지움을 첫 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월요일, 더구나 그 날은 천황 생일이라고
가게도 문을 닫은 곳이 많더군요. 그래서 대신 오사카 성에 갔었습니다. 돌아오는 날이 금요일이라서 그렇다면
산토리 뮤지움을 볼 수 있겠거니 했지만 무슨 사연인지 미술관은 문을 닫은 상태라고 합니다 . 그렇다면 마지막
날 동선을 어떻게 잡을까 상의하고는 시립 미술관에 가기로 정하고, 새벽부터 모두 준비하고 오사카로 가기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시에는 미술관이 개관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막상 역에 도착해서 물어보니
28일부터 신정 연휴기간까지 문을 닫는다고 하네요.
나중에 공항에 가기 편한 역에서 일단 락커에 짐을 넣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는 사이에 둘러본
맛있어 보이는 상점입니다.
역안에 다행히도 큰 가방을 넣을수 있는 곳이 있어서 부담을 덜 수 있었지요.
새벽에 너무 서둘렀던 탓일까요? 그동안 잘 다니던 필이가 배에 패스포트가 든 가방을 놓고 내린 바람에
그 곳까지 다시 가야 하는 상황, 박선생님과 경원쌤에 필이랑 함께 가주신 덕분에 길눈이 어두운 제가 필이랑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던 것이 해결되긴 했지만 고맙고 죄송한 마음을 다 표현하기어려웠습니다.
4시까지는 공항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어서 그렇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사천왕사에 가보자고 했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금강산이 식후경이라고 일단 백화점 안의 후드 코트에서
식사를 하자는 의견이 우세해서 먹을 곳을 찾아다녔지요.
내내 날씨가 좋다가 귀국하는 마지막 날 비가 내립니다. 더구나 고오베에서부터 계속 미술관이 유혹하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서 아아 소리가 절로 나는 상황이라서인지 먹고 싶은 기분도 덜 한 상태라고 할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음식점 간판을 보고 다니다보니 저절로 식욕이 생겼다는 것이지요.
또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아직까지 음식 사진에 손을 못 대고 있긴 하지만 음식점 주변이나 재미있어 보이는
상점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는 것, 이것은 밀라노에서 처음 느낀 즐거움중의 하나였습니다 . 아 그래서
사람들이 밀라노 밀라노 하는 모양이라고 느끼던 기분이 떠오릅니다 . 길거리에서 갈 길이 먼데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거나 상점의 장식에 눈이 가기도 하던 날, 이렇게 사람은 변하는 것일까 대상에 대한
관심이 여행에서 처음 바뀌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답니다.
나오시마에서 노렌의 묘미를 알게 된 이후에는 저절로 이런 사진도 찍게 된 것, 그러고 보면 미술관행이 틀어진
것이 아쉽긴 해도 그 나름대로 즐겁게 보낸 오사카에서의 짧은 시간은 생각의 전환에서 비롯된 것이네요.
언어에 대한 관심, 글씨에 대한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글씨를 그냥 지나치게 되지 않는 묘한 버릇이 있답니다.
그래서 어딜 가도 글씨가 보이면 일단 시선이 가게 되더라고요.
함께 한 사람들끼리 점심을 먹고 드디어 사천왕사에 도착을 했습니다.
어이가 없었던 것은 오래 전 이 곳에 와 본 적이 있다는 것, 그런데 도착하기 전까지는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억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 그것을 탓하고 있을 겨를이 없어서 일단 안으로 들어갔지요.
이 곳 일대는 병원, 약국을 비롯해서 많은 것들이 다 이 절과 관련된 것들이 있어서 신기해하던 기억이
비로서 떠오르네요.
이 곳은 쇼토쿠 태자와 관련된 절, 그러니 상당히 오래 된 절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의 절과는 달라서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그런 비교의 시각으로 보기 시작하면 이 곳을 이 곳 나름의 특색을 갖고 있는 곳으로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공간을 보기로 마음을 돌려먹었습니다.
일본에서 자주 보게 되는 색이지요. 절에서 이런 기둥을 보는 일이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곳에 오기 전에 계속 일본문화사를 공부한 것이 역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다녔지요.
사진의 경우도 다른 사람들이 그 공간을 어떤 식으로 프레임을 잡아서 찍은 것일까 그들의 시선을 생각하면서
보고 있으면 정말 도움이 되더군요. 창의적인 생각이 모자란 저로서는 아무래도 배워서 습득하는 것이 오래
가는 편이고, 거기서 한 번 더 나가보는 것, 그 과정에서 이상하게 새로운 생각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거든요.
사진 하니까 생각나는 에피쇼드 한 가지, 사진전이라곤 가본 적이 없던 시절, 우연히 광화문을 지나다가
사진전을 알리는 플래카드에 눈길이 가서 올라가 보았습니다 . 제주도를 사진에 담은 김영갑님의 사진전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처음으로 돈을 내고 사진전이란 곳을 가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날 강한 충격을 느꼈고, 책마저 사들고 왔습니다 .그리곤 언젠가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는마음을
품었습니다 . 올레길이 만들어진 사연을 듣고 그 해 제주도에 갔고 그 이후 사진전을 일부러 찾아서 가기도
하는 세월이 이어지고 있군요.
이 모든 변화가 제겐 40살 이후의 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40살이 넘었으니 새롭게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이제 시작이라고 마음을 담아서 격려할 수 있기도 하고요.
각자 자유롭게 다니다가 시간이 되면 절 앞에서 보기로 했는데 친구가 카메라에 절을 담는 모습을 만났습니다.
이 친구와는 앞으로 심리학 책 읽기 모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첫 모임에서 벌써 전공을 살려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더군요. 묘하게 무엇으로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것에 딱 답을 줄 때 아, 그렇구나 고개 끄덕이게
되는 그런 상황. 길게 함께 공부하게 되길!!
아무리해도 사천왕사의 보물을 모아놓은 곳까지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네요. 그래서 그 곳은 패스하고
절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찻집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제 정말 떠나야 할 시간, 짐을 맡겨놓은 곳으로 가서 가방을 찾고, 일본에 남는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갑니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지만 끝이 새로운 시작을 가져오기도 하지요. 어떤 시작이 될지는
아직 형태를 알 수 없지만요.
마지막 날 유난히 크고 작은 헤프닝이 많았지요. 아침의 필이 사건, 그리고 공항가는 길에 서로 길이 엇갈려
유진쌤이 혼자서 신간센에 탔다가 다행히 떠나기 전에 내려서 한 숨 돌린 사건, 그리고는 신칸센을 타고 공항에
도착해서 무사히 출발할 줄 알았습니다.
남은 시간 선물도 사고 공항안을 구경도 하면서 여유있게 보냈지요. 탑승하는 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혼자 돌아다니면서 재미있는 곳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이 곳에서는 선물을 고르느라 한참 있었던 곳이라 계산하는 동안 찍어도 되냐고 하니 상관없다고 하더라고요.
탑승 시간이 다가오도록 두 사람은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패스포트가 없어진 것을
눈치챈 그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비상입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혹시 못 찾으면 혼자 두고 떠나야'
하는 발걸음이 편치 않을 것 같네요. 순간 공항안의 경찰에게 이야기해야 하나, 아니면 하고 머리를 굴리게
되었지요. 급한 김에 수속을 진행하기 시작한 데스크와 공항 경찰에게 이야기했더니 연락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침 부모님에게 드리려고 술을 샀다는 사실을 기억한 그녀가 영수증을 갖고 있어서 그 곳으로 연락을
한 다음 그 가게에서 패스포트를 갖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기까지의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요!!
놀랐던 상황이 진정되고 나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4박 5일의 여행중 가장 짧은시간인 날이었지만 하루 동안 너무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나서 길게 느껴지던
날,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여서 그런지 비행기안에 들어오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옵니다 . 달콤한 피로.
그래도 셋이 나란히 앉은 친구들과의 수다는 이어지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떠날 여행에 대한
기대도 시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