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혼자서 생각하던 것과 너무나 다른 결과를 빚는 일들이 있습니다.
여행 첫 날, 사실 6시 집합에 음식점을 차타고 이동해서 밥을 먹고, 그 곳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다면
저녁시간을 제대로 쓸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더구나 오사카성에서 호텔까지 찾아가는 일이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시간은 촉박하고 땀이 바질바질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지요.
그 때마다 모르는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제가 보여주는 주소를 지도로 검색해서 알려주고, 혹시 모르니 조금
가다가 다시 물어보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렇게 물어물어 호텔로 도착하니 약속 시간 1분전, 한숨 돌리고
마중 나오신 유영수님을 따라 샘터라는 이름의 식당을 찾아갑니다 . 일제시대에 이곳에 오신 할아버지대부터
일본에 살게 되었다는 그분은 말하자면 한국사의 증인인 셈이더군요. 길담의 서원지기 박선생님과의 인연은
감옥에서 비롯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재일교포로서 한국에 유학온 경우, 당시의 살벌한 상황에서 투옥이 되었을 것이고 자본론을 손으로 써서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던 시절, 필사한 당사자로서 여러 권을 갖고 있어서 현장범이 된 박선생님의 경우는
빼도 박도 못하고 13년 세월을 감옥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지금 들으면 자본론을 갖고 있다는 것이 죄가 되는 시절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저도 길에서 남학생의 가방이 검문의 대상이 되는 시절을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 말의 무게가 확 와닿았습니다.
아, 이 밥이 그냥 후배가 경영하는 식당에서의 한 턱이 아니구나를 깨달은 순간, 저녁 시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고
불평하던 마음이 확 사라져버렸습니다.
샘터에는 한국어로 된 책이 진열되어 있었고,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더군요. 인상이 너무
선해서 다음에 다시 일부러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안주인 김영희씨도 잊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원하던 원치 않던 우리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부딪히는 날들이 있지요.
작년에는 뉴욕에서 여행하던 중 김근태씨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기사에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리던 시간이 생각나더군요.
2012년 크리스마스 전 날,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을 앞에 두고 사람들의 자기 소개가 이어집니다. 어떤 의미로
이 여행에 참석했는가 가끔은 마이크를 돌리면서 노래를 하기도 했지만 역시 노래가 쥐약인 저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권리도 있다 모두가 노래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하면서 패스를 했습니다.
샘터에서 맛본 생맥주의 맛은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아니 이렇게 맛있는 맥주맛이 하면서 놀랐지요.
처음에는 친구랑 둘이서 반 잔씩만 나누어마시겠다고 했지만 역시 맛에 반해서 조금은 더 마시게 되었고
약간 취한 기분으로 듣던 오사카에 사는 교포들의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역사가 되어 마음속에 떠다니던
시간이 기억납니다.
그 시간의 한 끼의 밥의 무게를 느낀 것은 물론 저만이 아니었겠지요?
선거가 있기 전 선거가 무사히 끝나고 즐거운 기분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면 하고 바랬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요. 멘붕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회성의 호소로 끝날 일도 아니므로 자신이 선 자리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떠난 여행, 첫 날 그동안 잊고 있던 역사와 직면하는 말하자면 직구를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사카에서 여러 곳에 샘터를 운영하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명함을 한 장 받았지요.
보람이가 오사카에 갈 기회가 있다면 박선생님 이야기를 하고 개인적으로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하고요
아직은 그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이야기, 발 들여놓고 싶은 세계가 아닐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함께 샘터를 찾아가서
이야기나누고 함께 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안주인 김영희씨께서 우리들에게 오사카에 오면 언제라도
들러라, 개인적으로도 함께 여행할 수 있으니 이렇게 따뜻한 인사를 해주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은 그 말이 빈 인사가
아니었다는 점,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은 신뢰가 가는 말이었지요. 말의 무게를 느낀 날이기도 했고요.
식당 샘터에가던 길에 만난 나오키 서점, 밥먹고 틈을 내서 서점에 와서 책 구경을 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식당에서 무르익어가는 이야기에 서점 갈 계획은 날라가고 그 순간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책을 보지
않기로 지난 번에 구해온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때 다시 일본에 가면 되지 않을까? 그러니 이번에 준비한 개인적인
경비에 손을 대지 않고 그냥 들고 가서 다음 여행의 종자돈으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이번 여행에서는 만나는 사람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지역 사람들과의 대화, 그 곳에서 만나는 건축물과
자연, 그리고 음식을 즐겨보리라 그렇게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과연 그렇게 될까는 여행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평가하기
이르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그렇게 바꾸고 나니 서점에 가고 싶다는 욕망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