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예술의 전당에서는 피아노 협주곡 2번만 3곡을 연주하는 아주 독특한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한 곡을 협연해도 지쳐서 대개는 연주자가 앙콜을 받기도 힘든데
한 사람이 3곡을 협연한다니 도대체 어떤 에너지 넘치는 연주자일꼬 그것만으로도 관심이 가는
연주회였지요.
연주장에 들어가기 전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니 연주자라기보단 일을 아주 잘 하게 생긴 회사원같은
이미지라서 혼자 피식 웃었습니다.
생긴 것과 연주는 무관한 것이지만 우선 눈으로 보이는 인상이 너무 달라서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피아노의 건반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연주자가 협연을 쉬는 동안 갑자기 현을 뜯어서 바닥에 버리는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보통이라면 당황하여 연주가 흩어질법도 한데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연주를 이어서 합니다.
어라,대단하네 감탄하는 마음이 들면서 연주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쇼팽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협연을 매끄럽게 작곡하지 못한 것일까,아니면 이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제대로 못 내고 있는 것일까 갸우뚱하는 마음으로 연주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피아니스트에 매력을 느껴서 피아노에 집중해서 들은 시간이었지요.

한 곡이 끝나고 바로 조율하는 사람이 나와서 피아노를 손보고 시작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마치 오케스트라가 새로 태어나기라도 한듯 호흡을 잘 맞춘 폭풍같은 연주였습니다.
이 한곡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만큼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라는 피아니스트를 잊지 못하게 만들 그런 연주였고 지휘자와의 호흡도 정말
잘 맞는구나 싶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두 사람이 아주 절친한 친구사이이기도 하다고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여러 사람들의 협연을 들었는데 그 때마다 인상적인 연주를 들어서
제겐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다른 색깔의 연주자들을 만나서 그 곡이 같은 곡일까 하는 기분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요.
덕분에 어제 밤 집에 와서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연주하는 곡을 들으면서 즐거운 after를 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곡이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2번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곡인데 멜로디 곳곳에서 언젠가 들어본듯한 기분이 드는,피아노의 매력을 한껏 살린 곡이었습니다.
다른 피아노 협주곡과는 달리 4악장이라 상당히 긴 호흡의 곡이었는데 오케스트라는 조금 전 그렇게
멋진 연주를 보인 바로 그 악단인가 싶게 다시 기량이 떨어지고 있네요.
참 이상한 언벨런스상태의 연주를 들었지만 그래도 피아니스트의 폭풍같은 연주가 커버를 해주는
신기한 연주회였지요.

기량이 좋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연주회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2번이라는 새로운 레파토리를 가슴에 안고
돌아온 날이기도 했지요.
아침에 일어나 혹시나 하고 음반을 뒤적이다 보니 바로 그 곡이 있군요.
아하,그래서,그렇게 귀에 익었구나 그러고 보니 무슨 곡인지도 모르고 이제까지 들었던 곡이었네
웃어야 하는 상황인가?

부처님 오신 날 아침을 그래서 저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