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mezzo Sinfonico(Opera 'Cavalleria Rusticana')

[성난 황소 - Raging Bull]
감독 마틴 스콜세지 / 출연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캐시 모라이어티 / 흑백 1980년작
우리 나라의 비디오 출시제목은 "분노의 주먹"입니다.
어쩌면 이리도 촌스러운 제목을 잘도 갖다 붙였을까...;;;;
(요즘에 나오는 DVD 제목은 원래대로 "성난 황소" 입니다...;;;)
평론가들 마다 1980년대 헐리웃에서 제작된 영화중에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요, 1970년대 이후 흑백 필름으로 제작된 몇 안되는 작품중의 하나요, 일부 영화광들과 비디오 수집가들 사이에서 그들의 라이브러리 일순위에 자주 오르내리는 등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이 영화를 두고 뭔가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감마저 따릅니다.
내용은 널리 알려지다시피 전설적인 백인 미들급 세계 챔피언 제이크 라모타의 불같은 성격이 자세히 묘사된 일상과 링 위에서의 그의 야수같은 감각을 화면에 옮겨 손에 땀을 쥐게하는 동시대의 또 한 사람의 전설적인 복서, 슈가 레이 로빈슨과의 치열한 접전과 은퇴 후의 구차한 삶 속에서 챔피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는 기이한 행적까지 담아놓고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특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먼저 링에서의 실감나는 시합장면입니다.
어떤 평론가는 스네이크 아이즈에서의 맥없고 어설픈 시합장면을 말하며 이 작품을 소급하기도 했는데 권투에 전혀 취미 없는 저같은 사람 마저도 그 매력에 푹 빠져들게 만듭니다.
다른 선수들이 이 제이크를 두려워 해 다들 시합을 기피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두려움을 안겨줄 정도로 흑백의 단순한 빛감으로 만들어 낸 분혈의 화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동감의 두려움을 충분히 불러 일으킬만 하고 효과적인 패닝과 턴-온오프, 업 클로즈 앤 퍼스널 등의 카메라워킹으로 빚어낸 선수들의 주먹과 얼굴들을 따라 시선을 집중시키노라면 후반부에 나오는 제이크의 말처럼 분노한 황소가 그 열정을 태우며 터뜨리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는 무엇을 향해 그리 분노했던 것일까요?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들의 가드로서, 도시속의 작은 왕국을 섭정하는 대신처럼 뒷골목 패밀리의 대부격인 토미같은 인물의 비열한 쇼비지니스를 향해...?
아니면 서러운 이민자가 미국이라는 자유의 땅에서 차별의 감시속에 주어진 숨막히는 자유의 한을 삭히다가 마침내 그 울분을 토해낼 광장을 찾아냈던 것일까요...?
정답은 없지만, 때로 그 답은 모호하지만 그는 분명 링 위에서 그의 분노를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이 성난 황소가 무패를 기록하는 것은 오직 KO 밖에 없었으며 내용상 이긴 경기도 판정까지 가면 흑인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성난 감정은 자기 집, 좁은 울타리 안에서도 때로 분을 삭히지 못해 일상의 경계마저 무너뜨리기까지 합니다.
어린 비키에게 마음을 빼앗겨 조강지처를 버리고 그녀를 선택한 그의 인생은 어쩌면 완전히 바뀌었을 기회가 적어도 서너번쯤은 있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성난 황소는 토미에게 손을 내밀고 무패의 행진을 기록하며 마침내 챔피언 밸트마저 거머쥐었지만 어린 아내를 향한 애정은 증오의 의심까지 가득차고 급기야 피를 나눈 친동생마저 내쳐버리다가 은퇴 후의 자신의 꿈인 클럽을 개장하자마자 아내도 동생도 모두 떠나버리고 미성년 매춘 혐의로 기소되어 그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오점까지 남기고 맙니다.
또 하나 제 감정을 잡아 끌었던 장면은...,
어두운 독방, 한 줄기 서러운 빛만이 왕년의 챔피언을 비추고 기세꺾인 분노를 표출하는 황소.
"왜 그랬을까? 왜..왜...왜!!"
주먹이 으스러지도록 감방 벽을 향해 연타를 날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픔이었고 외로움이었고 실패한 인생의 자책과 후회 뿐이었습니다. 굳건한 벽은 그의 분노를 철저히 차단한 채 그를 삼류 클럽의 뚱뚱한 농담꾼으로 이끌었을 뿐입니다.
라스트 씬,
이제 곧 내 시간이 된다. 나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한시름 잊을 수 있는 재담을 풀어내 그들의 고단한 삶에 활력을 찾도록 카운터 펀치를 날려줘야 한다.
"시간 다 되었습니다, 챔프..."
"오케이, ...가자... 실력을 보이는 거야 챔프... 나는 최고다, 최고다, 최고다, 최고다,...."
얼굴 아래 상반신만 비추는 거울에 그의 뚱뚱한 몸매가 비치고 앞으로 돌진하는 배를 보이며 양 주먹을 흔들어 섀도우 복싱하는 장면이 지나가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옵니다.
이 작품에서 당대 최고의 복서다운 몸매에서 은퇴 후, 비계살이 겹겹이 둘러싼 뚱보까지 혼자 소화해 내느라고 주연 로버트 드니로가 수십킬로 그램쯤 찌웠다가 뺐다가 했던 일은 이제 유명한 일화를 넘어서 어느 나라든 배우는 자기가 연기할 캐릭터를 위해 살을 찌웠다가 뺐다가 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지만 이 작품에서의 로버트 드니로를 보자면 아직까지는 누구도 당하지 못할 위대한 배우임이 증명되기도 합니다.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그리고 이탈리안 어메리칸의 삶과 마피아...
이 모든 적절한 콤비 세트가 아우러져 만들어낸 작품이었고 영화사 100년을 통털어 걸작의 반열에 들고도 남을 작품이 되었습니다.
헐리웃에서 만들어진 작품치고는 가족과 우정과 사랑의 메세지가 뻔한 답습으로 귀결되어지는 여타의 영화와는 다르게 기묘한 해피 엔딩으로 색다른 감동을 주고 있으며 진정한 인간의 드라마로써의 품격도 잃지 않고 있으며 격렬한 권투시합 씬들은 허리케인처럼 시들한 장면들과 앞서 언급한 스네이크 아이즈같은 어설픈 장면들을 갖고 있는 영화와 비교해 교과서적인 텍스트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
마스카니의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 "Intermezzo sinfonico"가 흐르는 가운데 느린 화면으로 텅 빈 링의 사각을 모두 선점하며 마치 춤 추듯 섀도우 복싱을 하는 가운 차림의 성난 황소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리는 명장면입니다.
이탈리아의 베리즈모 오페라 중의 한 편인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정작 오페라 자체보다는 중간에 나오는 이 간주곡 때문에 특히 우리 나라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아마도, 저역시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오페라를 직접 보기는 고사하고 내용조차 잘 모르고 이 간주곡만을 열심히 들어온 편인데요...(베리즈모 오페라는 특별히 이탈리아 사람들 외엔 잘 즐기지 않는 쟝르다 보니 본고장이 아니면 구경하기조차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에선 요즘들어, 특히 작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MBC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아주 인상적인 역할을 했었습니다.
신임 석란시장과 고즈넉한 저녁에 한 레스토랑에 마주앉은 강마에가 그 신임 석란시장에게 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질문을 던집니다.
"이 음악을 듣고 생각나는 것들을 말씀해 보십시오..."
그러자, 당황한 신임 석란시장이 어쩔줄 몰라하며 더듬더듬 억지로 답변을 합니다.
"일단... 좋구요...;;;;;"
이 페이지에 링크된 버전은,
H.V. 카라얀의 지휘와 Alla Schalla Opera의 연주입니다.
아직 동이 트기전, 신새벽에 듣다보니 특별한 감흥에 휩싸입니다.
성난 황소가 그의 분노를 표출하는 곳,
그 분노의 링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