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러시아미술에 관한 책을 빌려갔던 바람님이
러시아미술에 관심이 생겼다고 새로 구입한 책이
러시아미술사입니다.그녀는 러시아미술을 접하곤
언젠가 가족들과 러시아 여행을 꿈꾸고 있다고 하네요.
그 책이 제게도 전해져 오늘 금요일,특별히 외출할 일이
없는 날이라 (이상하게 12월에는 금요일에 음악회가
적어서) 오전중에 마루에 자리잡고 앉아서 숄을 뒤집어쓰고
SCHUBERT FOR TWO라는 음반을 틀어놓았습니다.
바이올린과 기타의 어울림이 멋진 음반인데요,덕분에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두 악기의 어울린 음색으로 들으면서
러시아미술속으로 들어가서 오전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동파의 그림이 나오기 시작하자 한 번 숨을 쉬고
다시 글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서요.
숄,제 인생에 처음으로 산 그 숄은 터키 여행에서
시장구경하는 도중 충동적으로 한 번 사볼까 하고
구입한 것인데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숄이 그렇게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곤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쓰고 있고
어제는 우연히 잠자리에 들때 두르고 있던 채로 잠이
들었는데 의외로 어깨가 따뜻해서 기분이 아주 좋더군요.
새로운 용도의 개발인 셈인데요 아침에도 난방을 하지
않은 마루에서 숄을 두르고 앉아서 책을 읽는데
창으로 들어온 빛덕분인지 굳이 난방이 필요없는 그런
시간이어서 신기했습니다.

막상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을 찾아보려니 난감한 일입니다.
우선 책에서 화가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서 철자를
알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어서요.
그래서 머리를 짜서 궁리하다 보니 어떤 싸이트에
국적별로 화가를 정리해서 소개한 곳이 있었다는 생각을
해냈지요.
검색해보니 러시아 미술사에 들어있는 그림들이 다
있는 것은 아니나 반가운 이름을 하나 둘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예카테리나 여제때의 화가인데요
드미트리 레비츠키입니다.
이 여제때 미술아카데미가 세워졌다고 하네요.

예카테리나 여제는 독일 출신인데 남편 표트르 3세를
독살했다는 루머에 시달린 사람이지요,무능한 남편보다
훨씬 통치력을 발휘한 그녀는 계몽군주를 자처하고
볼테르과도 교류를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과격하게 변질하면서 군주가
처형당하는 상황이 오자 반동으로 돌아서 귀족의
특권을 더 강화하는 정책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그것은 물론 그녀 혼자만의 노선이 아니라 당시
귀족들의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그녀는 쉬는 시간에 혼자서 고전을 읽는 것이 취미였다고
하고 당시에 많은 그림들을 수집하여 혼자서 감상하는
시간을 즐겼다고 하는데 그런 그림들이 지금
러시아 미술관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림들의 초석이
되었다고 하니 역사에서는 무엇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측면들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네요.
위의 그림속의 남자는 여제의 애인이라고 하는데요
그의 초상 오른쪽 위에 있는 조각상이 바로 예카테리나
여제입니다.

그림속의 그녀는 러시아 사람같은 분위기라기보다는
어딘가 서구적인 느낌이 더 강합니다.
당시 아카데미 화가들이 서양으로 유학을 가서
그 곳에서 배운 것을 그들 그림속에 많이 반영한 결과로
마치 로코코 풍의 미소,로코코 풍의 분위기를 자아냈다고
하네요.
실제 당시의 귀족들은 궁정에서 프랑스어로 말하고
프랑스식의 교양을 익히려고 필사적이었다고요.

표됴르 로코토프가 그린 예카테리나 여제입니다.
사실 책에서 본 그의 여인 초상화가 더 인상적인데
사이버 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네요.
예카테리나 여제는 표트르 대제와 더불어 러시아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지요.
그들의 정치적인 이력과 개인 삶에서의 고민이나 무자비한
성품,혹은 그들의 모순점등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것이어서 러시아 그림들 보고 있자니 갑가지 러시아 역사를
조금 더 새롭게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언어를 배우고 나서 처음 외운다는 시인
푸쉬킨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오레스트 키프렌스키인데요
그가 그린 다른 한 점의 그림과 함께 책에 소개된 작품입니다.
푸쉬킨은 결투로 인해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지만
그의 시가 끼친 영향을 대단했다고 하더군요.
사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그의
시를 우리들도 어린 시절 노트에서 발견하곤 했던
시대를 살았으니까요.
앞으로 그런 시가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시대를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느낌이 서서히 조여드는 그런
시기를 맞아서 그럴까요? 그의 시를 다시 한 번
소리내어 읽어보게 됩니다.

러시아 비판적 리얼리즘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바실리
페로트의 그림중에서 제 눈길을 가장 오랫동안 잡아끈
화가는 단연 이 작품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인데요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초상으로 우리를 한 인간이자 작가와 만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러시아 미술사의 오전중 after는 여기까지로 족한데요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한 마디 더 이야기하고 싶군요.
이 책의 저자는 원래 독문학으로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더군요,어느 날 러시아 여행중에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던 중 소위 스탕달 신드롬으로 알려진
그런 경험을 하고 인생의 길을 바꾸어서 러시아 미술을
공부하게 되었다고요.
그녀의 공부가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온 셈인데
그런 인생의 전환을 극적으로 경험하다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그런 전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 바로 러시아
미술사인데요 전에 읽었던 러시아 미술에 관한 글보다
깊이가 더 해져서 책읽는 시간의 기쁨을 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