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적어놓고 보니 이런 제목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던 일이 떠오르네요.
미술사를 다룬 책의 제목인데 이 책은 보람이가
학교에서 필수과목으로 들어야 하는 기독교와 문화시간의
리포트때문에 빌려온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장학금을 계속 받으려면 평균 3,5는 넘어야 하는데
학점이 가장 자신없는 과목이라고 걱정을 많이 하더니
처음 내준 리포트도 기독교의 정신이 반영된 그림 다섯점을
골라 내용을 쓰고 감상평을 쓰라는 그 아이로서는 조금
생소하고 버거운 주제가 숙제로 나왔습니다.
걱정하면서 도움을 청하길래 이런 저런 그림을 골라서
알려주고 제 나름으로 책도 골라주고 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인데 드디어 제출날이 코앞에
닥치니 어제 밤 전화를 했더군요.
엄마,초안은 다 잡았는데 들어와서 일단 읽어보고
고칠 곳을 알려달라고요.
수태고지,동방박사의 경배,베로니카의 손수건
이젠하임 제단화,그리고 부활을 골라서 나름대로
쓴 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수정을 가하고
마무리 작업을 하면 다시 한 번 읽어보겠다고 했지요.
어제 너무 피곤하고 몸이 아파서 엄마가 일찍 자야 할 것 같다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아이가 따라 들어오더니
제 방에 있던 책을 팔랑거리면서 들추어 봅니다.
엄마,이 사람 보티첼리 맞아?
아까 동방박사의 경배에서 본 그 사람이네
그래서 막 웃었습니다.
야,숙제가 힘이 세긴 세구나
그런데 이것은 성서가 아니라 신화를 다룬 책이라 숙제랑은
상관없지만 나중에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이 숙제를 계기로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어
언젠가 너랑 미술관에 다닐 수 있으면 좋겠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능성이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래도 기독교학교에 들어간 덕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접점이 생긴 것인가
갑자기 날개가 솟는 기분으로 잠든 날이었습니다.
원래는 미술사 강의를 들으러 가야 하는 날인데
강사의 사정으로 휴강이 된 날
오랫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첼로곡을 들으면서
그림을 봅니다.

자료가 풍성해서 다 못 보고 그만두었던 미켈란젤로입니다.

삼손과 두 명의 팔레스타인사람을 형상화한 작품이네요.
어디에 소장되어 있나 보니 피렌체의 국립 박물관에 있군요.
어제 영어책을 읽는 시간에 온 4학년짜리 아이가 생각납니다.
어린 아이가 그렇게 책을 잘 읽는 일도 놀랍고
그것을 영어로 서머리 하는 능력도 놀라와서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아이라고 처음에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배운 영어라고 하더군요.
입이 딱 벌어지기도 하고 이 아이에게 제가 만나는 동안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책을 한 권 읽으면 그것에 대한 배경지식이 될 만한 책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읽도록 도우려고 하는 중인데
마침 미켈란젤로에 관한 영어책을 한 권 읽고나서
제가 갖고 있는 도판집을 주었더니 어,이 성당 가 본 곳이라고
합니다.피렌체에 가보았니?
그렇다고 자세히는 못 보았어도 여기도 저기도 가 본 곳이라고
좋아합니다.
그러자 그 아이 앞에 있던 6학년아이가 저도 가보았다고
베네치아 가는 길에 들렀다고 합니다.
그래? 이야기가 번져서 한참을 그 곳 이야기를 했지요.
선생님은 아직 못 가보았지만 가면 무엇을 보고 싶은가에 대해서요.
옆에는 미국에서 일년 영어연수를 하고 온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국제화라고 하더니,이 작은 교실에서도 벌써 이런
변화가 느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종교란 존재의 변이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런 정의에 아주 잘 들어맞는 인물중의 한 명이지요.
성 마태입니다.
마태복음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세리를 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예수의 부름에 응한 그를 생각합니다.
존재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경험을 통해서
그는 어떤 느낌으로 살았을까 하고요.


단테의 신곡을 제대로 읽었다는 미켈란젤로
그가 신곡의 세계를 형상화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네요.
그랬더라면 새로운 눈으로 신곡에 접근할 수 있었을텐데
그가 신화의 세계를 조금 더 다양하게 담았더라면
이런 가정이 다 부질없는 것이긴 한데
그런 가정을 하고 싶을 만큼 그의 조각이 그림이
제겐 강렬하게 다가오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