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3월부터 정말 거의 거르지 않고
금요 나들이를 했었습니다.
즐거운 일이 많은 하루,그래서 일주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하루였지요.
그러고 보니 금요일은 그냥 하루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
오늘은 아이들도 졸업하고 집에 있는 날이고
이사 날이 얼마 남지 않기도 해서
하루 집에 있으면서 정리하고 버릴 것은 추려서
밖에 내놓는 작업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했다고는 말할 수 없고
중간에 쉬면서 일본 드라마 자상한 시간도 보고
영국 드라마 오만과 편견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지요.
학원 다녀와서 학교에 낼 숙제를 조금 하다가
그만 더 참지 못하고 놀러나간 승태
그리고 오전부터 서울로 후배를 만나러 가서 아직
소식이 없는 보람이
그래서 혼자 조용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여유가 조금 생겨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림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지난 번 집현전에서 구한 책중에 예술가에게 길을 묻다란
얇은 책이 한 권 있는데 그 책에서 다루는 동양화가들을
한 명씩 읽어가는 중이라서
오늘 기억하고 고른 화가는 오숙환님입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빛을 주제로 작업한 것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좋아서
이름을 저절로 기억하게 되었거든요.

마지막 국전에서 대상을 탄 것으로 경력에 적혀 있네요.
마침 이 작품의 제목이 휴식이라서 혼자서
피식 웃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집안 구석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하고 커피 한 잔 하면서
쉬고 있는 중이라서요.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실제로 보는 느낌은 어떨까
혼자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잊혀지지 않는 정의가 있어요.
종교란 to make our ordinary world anew라는
제겐 종교만이 아니라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바로
그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운 그림,혹은 음악,소설을 읽을 때
아니 꼭 새로운 것이 아니더라도
새롭게 그것과 만날 때
갑자기 생기가 도는 ,그래서 좀 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내가 되는 기분이 들어요.
그것은 단지 예술과의 접촉만이 아니겠지요.
아이들과 만날 때도 사람들과 만날 때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오늘 물건 정리하다가 구석에 박혀서 이제까지 못 보고 있었던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갔던 싱가포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언제 이런 시간이 있었을까 싶게 어리고 순진하게 생긴
승태의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자기 방에 있던 아이를 불러서 사진을 보라고 하니
언제 그런 곳에 갔었느냐는 듯이 새삼스럽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더군요.
흘러간 시간속에서 생겼던 많은 일들을 회상하는
하루가 되기도 했습니다.

책장위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그 아이의
아주 오래된 일기장들,먼지를 털면서 뒤적여보니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일기장에 제가 참 많은 글을 써주었더군요.
선생님의 코멘트도 많았고요.
이제는 왜 그런 다정한 일을 못하고 사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정신적인 성장에 걸맞는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 날이기도 한 금요일
일곱시 조금 지난 시간에 벌써 밖은 어둡고
방안 가득 흐르는 음악에
노곤한 하루의 피로가 조용히 풀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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