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겐 너무나 소중한, 형님과의 마지막 사진입니다. (왼쪽이 우리 형님, 가운데가 저, 오른쪽이 제부)
저는 정말 세상을 어설프게 알고부터 한순간도 치열하지 않게 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다 그러군요. 너같이 치열하게 살았던 `결실이나 결과`가 그 모양이라면 그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라는 걸
역설적으로 대변해 준다더라고...
그렇지만 저는 '내 뼈가 가루가 되서라도 나는 마침내 예전보다 더 크게 일어서지 않으면 안되고, 그리고 끝끝내 그렇게 성공하리라' 다짐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끈질긴 싸움의 전투의 `전장`에 늘 저는 서 있었습니다.
그 성공과 `재기`를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오늘 제 곁을 떠나려 합니다.
제 삶의 궤적이나 역사와 티끌만큼도 떼어 놓을 수 없는 우리 아니, 내 `형님`
세 시간을 울었습니다.
눈이 퉁퉁 부어서 글이 잘 써지지 않지만 자꾸자꾸 고쳐씁니다.
왜냐면 오늘 이 마음을 반드시 마음 속에 기록한 채 형님 가신 뒷길 따라서 나중에 만날적에 꼭 이 편지 주고 싶어서입니다.
우리 나중에 `저승`에서 만나도 아주 의좋은 형제가 될 겁니다.
밤마다 달빛을 등지고 서로의 `추수`를 옮겨주려는 그 형제처럼 말입니다.
불쌍한 우리 형님...
너무 딱한 우리 형님..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서 더는 회상할 수조차 없는
내 하나뿐인 우리 사랑하는 형님...
하나 뿐인 이 동생이 형님 죽는 모습도 지켜보지 못하고, 그 죽음에 이르는 과정조차 챙겨드리지 못한채 보내는 마음이 너무너무
슬프고 아쉬워서 이 마음 이렇게 전한답니다.
너무 눈물이 납니다.
형님은 저를 너무 사랑해 주셨습니다.
어릴적 버드나무가지 꺽어 피리만든다고 떼쓸 적 형님 팔뚝에
낫자국이 선명하게 찍힐만큼의 상처를 준 동생...
우리 형님 `사당동`에 계실적에 불현듯이 올라간 동생 `밥먹여`주느라 그 어려운 여건에서 눈치보며 고생했던 일들...
형수랑 1974년 12월에 소사에 사는 동생 자취방에 찿아와 손을 꼭잡아주며 격려해주던 일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학교 안간다고 떼쓰던 저를 무지막지하게 막 패주던 형님, 공부하기 싫으면 관두라고 화가 너무 났는지
내 책을 박박 찢어버리던 어릴적의 할아버지 같이 어른같던 내 형님.....
무슨 말로 형용하리까...그렇게 내 삶의 버팀목이었던 당신을 나는 놓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님!
하나뿐인 나의 형님! 부디 편히 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