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때면 학생들로 붐빌 것이니 마음에 꼽고 있는 전시를
이왕이면 조금 미루었다가 개학하면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everymonth의 반쪽이님이 과천현대미술관의 니키 드 생팔
전시회가 곧 끝날 것 같으니 빨리 가자는 권유의 글을 올렸습니다.
순간 머리를 굴려서 금요일에 가야지 하고 정했지요.
오래 전 퐁피두 센터앞에서 본 작품이 누구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신기해서 바라보았던 것이 바로 그녀의 작품이란 것
그리고 제목이 스트라빈스키 분수란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전시회에 다녀온 캘리님의 글을 통해서 미리 맛보기를 하긴
했으나 과연 무엇을 보게 될 지는 미지수인 전시회에 가는
날
전날 늦게까지 북의 나라에서를 본 탓인지
지하철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충무로에서 갈아타야하는 것을 놓치고 다시 돌아오게 된 것
그리고 사당행,안산행을 보내고 오이도행을 타야하는
이상하게 타이밍을 놓친 시간때문에
약속시간인 한 시에 대어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현대미술관의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함께 공부하는 고등학생이 제게 빌려준 폴 오스터의
빨간공책이란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상하게 이름을 많이 들어보았지만 작품은 처음 대하는
그런 작가가 있지요.
제겐 폴 오스터가 바로 그런 작가중의 한 명이었는데요
출판사에서 재미있게도 글씨를 마치 공책에 쓴 글씨라는
의미를 살리려고 그랬는지 실제로 종이위에 줄을 긋고
글씨를 직접 쓴 재미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었고
내용도 금방 몰입이 되는 이야기라서 한참을 읽었습니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올라가는 길에 아,까맣게 잊고 있었던
엘리자베쓰 키스의 1920년대 우리 산하를 그린 전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그렇다면 이 전시도 볼 수 있겠네
반가운 마음으로 올라가는 길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반쪽이님을 생각하니
밖에서 사진 찍는 여유를 부리기 어렵네요.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조금 찍고서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알던 니키 드 생팔과는 사뭇 다른 아상블라쥬 그림들이
한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게 뭐지?
낯설고 폭력적인 정신의 상처가 크게 느껴지는 캔버스
앞에서 어리둥절한 느낌이었습니다.
바이오그라피를 읽어보고나서야 그렇군 하는 기분으로
다시 둘러보았지요.
아상블라쥬 ,사격회화,몬스터
나나시리즈,그리고 공공조각 그렇게 다섯가지 테마로 전시하고
있는 공간을 빨리 지나서 비디오 영상자료앞에 앉아있는
반쪽이님을 만나서 우선 자료화면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크게 도움이 되었지요.
니키 드 생팔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은 점에서요.
미술관 안을 찍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하고 머리를 써서
티브이 화면을 찍어보았습니다.


이 스케치는 스트라빈스키 분수를 위한 스케치 작업이라고
하네요.
위 글씨에 이고르란 표현이 보이는군요.

그녀의 두번째 남편이자 작업상의 파트너였던 장 팅겔리
두 사람이 함께 한 작업에서 서로 다른 분야를 고수하면서
스며들지 않고 작업을 계속 함께 했다는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티브이 화면에 비친 이 어린아이를 보면서 혼자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공공조각앞에서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이고
개개인에게 기억되는 이 조각은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저장될 것인가 하고요.
그녀는 스페인의 구엘 공원에서 가우디의 조각을 보고
자신도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을 기억했다가 친구가
오빠에게 이야기를 하니 토스카나 지방의 땅을 그냥 쓸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요.
그래서 20년에 걸쳐 조성했다는 타로 공원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자료화면으로만 보는 것인데도
시선을 떼기가 참 어렵더군요.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전력이 있었던 그녀
학교에 다닐 때에 여러 차례 학교와 마찰을 빚어서
퇴학을 당하거나 전학을 해야 했던 그녀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을 거치고
정신병동에 들어가서 치료차 미술을 선택하고는
그것을 통해 새로운 길을 만난 그녀
그녀 내면에 잠재한 고통이 십년 이상의 과정동안에
다양한 형태로 풀려나고 나서 그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타로 공원에서 집약된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란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타로 공원을 볼 때만 해도 너무 몰입해서 보느라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어서
건진 장면이 별로 없네요.


그래도 앞으로 토스카나 하면 이 공원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속에 가두고 있는 고통을 밖으로 표출하는
방식은 다 다르겠지요?

돌고래 쇼를 보고 있는 니키 드 생팔입니다.

그것이 이런 형태의 작업으로 진행되더군요.

작업실 공간입니다.
영상자료를 다 보고 나니 3시경
설명을 해주는 시간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다시 따라다니면서 듣다보니 막연하던 것이
조금 더 이해가 되어서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유럽의 아상블라쥬와 미국의 액션 페인팅의 차이에 대해서
그리고 60년대 유럽을 휩쓴 누보 레알리슴 운동에 관해서
정성들인 설명을 들으면서 그림을 보니
아하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녀의 나나작품이 갖는 의의,몬스터로 등장한 캐릭터에서
부정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를 추출할 수 있다는
것, 공공 조각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전시 대상으로 시선을 두니 같은 공간인데도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던지 이런 것이 바로
마법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든 시간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쓰전 그리고 현대 한국의 드로잉전까지
마저 보고
저녁 약속장소에 가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책을
뒤적이다 보니 니키 드 생팔의 자전적 이야기가
번역이 되어 출간되었네요.
마티스와 함께 한 일년이란 책을 읽고 싶어서
이미 구한 상태라 이 책은 다음으로 미루고
대강 내용만 훓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엘리자베쓰 키쓰의 책도 번역이 되어
나란히 놓여있습니다.
아니,이렇게 그 날 당일 본 전시의 주인공을 서점에서
나란히 보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닌데 싶어서
이상한 우연에 놀라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친구랑 만나는 날에는
아무래도 저도 모르게 조금 더 깊은 이야기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속을 어지럽히거나 아니면 마음속 깊이
자꾸 생각하게 되는 문제들을 꺼내놓고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헤어진 다음
마티스와 함께 한 일년을 읽으면서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
이미 저는 마티스의 삶을 따라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