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장과 (장영주) 줄리안 로이드 웨버,그리고 런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오페라의 유령에서 나온 곡과 우먼 인 회이트 모음곡을 시디 한 장에 담은 음반을 듣고 있는
중인데요 가끔씩 듣고 있으면 갑자기 기분이 업되는 느낌이 되는 그런 연주이지요.
오페라의 유령같은 경우는 영화와 뮤지컬을 이미 본 것이라 더 연상이 많이 되서
음악에 몰입하는 폭이 더 큰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 낮에 읽었던 세기의 우정과 경쟁,마티스와 피카소가 생각이 나서
집에 와서 마티스의 그림을 찾아보면서 듣고 있는 음반이기도 하지요.
오페라의 유령을 본 사람들에겐 추억을 자극하기도 하고
새롭게 듣게 되는 음악이 될 것도 같아서 소개합니다.

1905년하면 미술사에서는 야수파의 등장을 알리는 해로 기억되지요.
물론 인상파와 마찬가지로 이 말이 찬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야수적인 이란 일종의 경멸적인 언사로 쓰인 것인데요
그 말이 그대로 한 유파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굳어진 것이고
야수파하면 여러 명의 화가들이 거명되지만 그래도 대표격으로는 마티스를 꼽는다고 해요.
입체파하면 피카소를 꼽듯이

이 그림이 선보였을 때의 대중들의 놀라움은 말할 것도 없이
미술하는 사람들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다고 하더군요.
당연하겠지요?
지금에야 우리에게 익숙한 ,그것보다 더 한 그림들도 많지만
사람의 얼굴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색이 칠해진 것을 본 사람들의 경악이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하여 형태는 피카소,색은 마티스라고 말해지는 시기가 도래한 셈이고
두 사람사이의 치열한 경쟁과 서로를 인정하는 시기가 오래 지속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쟁과 우정속에서 서로가 자극을 받아 어떤 한 사람이 그린 그림에서 상대가
영향을 받기도 하고 거기서 새로운 그림이 탄생하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는 피카소가 훨씬 유리한 고지에 있었던 모양인데
천재란 유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란 정의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바로
피카소가 아닌가 싶어요.

피카소가 밤에 주로 그림을 그렸다면 마티스는 낮에 그림을 그렸다고 하고
늘 혼자서 작품에 몰입을 했다고 하더군요.
반면 피카소는 프랑스가 자신의 고향이 아닌데도 일단 이 곳에 진출한 후에는
예술가 집단의 보스처럼 사람들을 주위에 끌어모아 일종의 싱크 탱크를 형성했다고요.

마티스 하면 그의 장식성이 풍부한 그림,색깔이 강렬한 그림이 먼저 떠오르지요.
바로 이 시기의 (1908년 이후)그림의 특징이 아닐까요?

마티스는 피카소처럼 드러내놓고 여성편력을 한 화가는 아니지만
당시에 러시아 출신의 여자 화가와 깊은 관계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고통을 참지 못한 여자가 결국 마티스의 부인에게 자신의 연애에 대해서 털어놓았고
마티스는 선택의 기로에서 가정과 부인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갈등이 남아서 이런 그림으로 그 때의 긴장관계가 표현된 모양입니다.
두 사람사이에 놓여 있는 장식성의 글자가 아니다란 non인데
단순히 장식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강한 뉘앙스를 풍기는 글자라서
자꾸 시선이 갑니다.
이런 문양을 통해서 마티스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이 시기에 마티스가 러시아 출신의 세르게이 시추킨이 의뢰한 춤과 음악을 완성했다는 기록을 읽었는데
마침 그림을 찾아보니 지금은 에르미타쥬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군요.

우선 오늘 읽은 시기까지의 마티스를 보았습니다.
책에서 나온 그림을 다시 찾아보기도 하고 그림에 관한 해설도 읽어보기도 하면서
음악과 더불어 보낸 시간
이런 after가 있어서 그림에 관한 책읽기는 항상 보상이 넉넉히 뒤따르는 책읽기가 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