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도 르네상스의 3거장 이후에 (이렇게 말하면 정확한 것은 아니군요
매너리즘의 선구자가 바로 미켈란젤로이니까요.미켈란잴로 후기의 그림이나 조각에서
보이는 특징을 잡아서 ) 고전적인 비례와 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신체를 늘리거나
변형시켜서 표현하는 방법이 주를 이룬 시기가 있었는데
후대의 미술사가들이 깍아내리는 의도로 매너리즘이란 말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요즘에 와서는 다시 새롭게 자리매김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오늘 서양 문화의 역사 시간에 이 시기의 그림들을 보았는데
도판이 흡족하지 않아서 집에 와서 낮에 다시 본 그림들
그리고 밤에 다시 찾아본 그림들을 도서관에 올린 글입니다.
요즘 서양 문화의 역사는 역사시간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고 오히려 미술사 시간에 가까운 내용이 많이
나와서 오랫만에 다시 미술사를 뒤적이면서
즐거운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화요일에 구한 미켈랄젤로 책이 도판도 다양하고
영어도 아주 쉽게 되어 있어서 마치 한글을 읽는 기분으로
읽어보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인데요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 나가기 전까지 계속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살았던 것 같네요.
오늘 수업시간에는 북유럽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을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책에서는 대강의 설명만 있어서
집에 와서 after를 하게 되네요.
첼리니에 관한 오래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인데 우리 학교에 부임한 젊은 여선생님이
있었습니다..막 대학을 졸업하고 시력이 나빠서
두꺼운 안경을 쓴 상당히 지적으로 생긴 사람이었는데
마침 친구의 언니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녀가 제게 책을 한 권 읽어보라고 빌려주었는데
그게 바로 첼리니 자서전이었지요.
잊을 수 없는 것은 내용에 반해서가 절대 아니고
너무 어려워서 무슨 이야기인줄 전혀 이해를 못했거든요.
꽤나 독서량이 많다고 자부하던 제 가슴에 큰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글들이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실감한
책읽기이기도 했습니다.
선택해서 책을 빌려준 선생님에게 모르겠다,어렵다
그렇게 고백하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어떻냐고 물어보실 때
재미있다는 새빨간 거짓말은 도저히 할 수 없어서
(그러면 그렇게 눈물나게 어려운 책을 또 읽으라고
줄 수 있을테니까요) 애매모호한 미소만 짓고 있었지요.
그러자 눈치를 채신 것일까요?
그 뒤에는 책을 받았던 기억은 없고 제겐
첼리니란 이름,그것도 불편한 이름만 오랫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미술사를 읽게 되면서 그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오늘도 그 이름을 보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라서
그 옛날에서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그대로이고
얼마나 달라졌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네요.
마침 매너리즘을 치니 첼리니의 흉상이 나오네요.
옛날의 곤혹스러움을 이제는 웃으면서 회상하면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위 흉상은 다른 조각가가 첼리니를 보여주는 것이고'
다음 사진은 첼리니의 실내 조각작품입니다.

페르세우스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소금통이라고 하는데 책에서 본 색감과 참 다르네요.

수선화로 피어났다는 나르시서스의 시선에
눈이 가는 작품이네요.
매너리즘 하면 대뜸 떠오르는 그림이 바로 목이 긴 성모이지요.
파르미지아니노입니다.


새로 보는 그의 그림입니다.



거 참 인상 더럽다하면서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았던
이 그림이 바로 파르미지아니노의 그림이었군요.
세월이 지나면 거의 모든 것이 흐릿해지고
아련한 인상만 남는 것이 처음에는 괴롭더니
이제는 마음을 바꾸어 먹으니 매번 볼 때마다
새로우니 고맙군 하고 자기 위안을 삼고 있는 중이지요.

그의 자화상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손이었습니다.
예술가의 자부심을 표현한 것인가
신체 비례에 비해서 워낙 큰 손에서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사도 바울의 개심을 표현한 장면이네요.
어린 시절에는 그런 열렬함이 좋아서
성경을 읽을 때 바울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르라면 오히려 베드로에게
더 끌리는 편이라고 할까요?
그러니 바울과 베드로는 그대로인데 그들을 바라보는
제가 변한 것이겠지요?

팔라스 아테나라는 제목인데요
여신이 올림포스산에서 내려와 속세의 여자가
된 느낌이 드는 그림이로군요.
오늘 새벽부터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하루가 다 지난 느낌이네요.
이젠 조금 자고 나가야 할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다 잠든 밤
오랫만에 이현의 농을 틀어놓고 엘 그레꼬의 그림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음반에는 장구 가락이 나오는데
이제는 못하게 된 장구이지만
그동안 배운 것이 몸에 녹아서 그런지
가락에 몸이 마음이 따라다니는 기분이 드네요.
오늘 밤 매너리즘 화가들을 다 찾아보다간
다른 일을 할 수 없을테니
매너리즘 최고의 화가라는 엘 그레꼬만 볼 작정입니다.


성녀 베로니카의 모습과 그녀의 손수건에 찍힌 예수의 모습이지요.



내년초,혹은 빠르면 올해 말에 로마에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여행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티켓 예약이 언제부처 가능한가를 알아보려고요.
지금은 스케줄이 나오지 않았고
여름 혹은 조금 더 빠르면 5월에나 다시 전화를 하라고 하네요.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렇게 일찍 서둘러 연락해본 것이
처음이어서 혼자 막 웃었습니다.
그리곤 도서관에서 한길사에서 나온 여행 책자
이탈리아를 뒤적이면서 어떤 곳을 어떻게 볼 것인가
대강 눈으로 보던 중에
제가 무식하게 혼자 상상하던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를 알고 놀랐습니다.
이상하게 로마에 가면 옛 거장들과만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나는 르네상스풍의 그림은 인상파 이후의 그림에 비해서
별로 땅기지 않는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아야 할 것 ,보고 싶은 것이 엄청 많군요.
지금부터 천천히 관련된 것들을 다시 읽어보고
새롭게 읽어보고 찾아보다보면
그것이 여행가기전의 아주 훌륭한 시간이 될 것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드네요.



오늘 우연히 이윤기님의 길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란
책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또 그리스 로마 신화냐 하는 생각에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같은 이야기의 재탕으로 책을 낼 사람은 아니란 생각에
속을 들춰 보았지요.
그랬더니 제가 바라는 바로 그런 책이란 것을 즉각
알겠더군요.
일종의 거꾸로 신화읽기라고 할까요?
그림,조각,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신화적인 상상력을
파들어가면서 설명하는 방식이라
기존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이야기와는
또 다른 맛이 있겠더군요.
빌려와서 집에서 조금 읽기 시작했는데
마침 터키에서 본 지하저수조부터 설명이 시작되어
잊고 지내던 기억에 다시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엘 그레꼬가 해석한 피에타입니다.

이 그림은 톨레도 풍경입니다.
아마 이 그림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도판에서 자주 소개되는 그런 그림이라서요.


후회하는 베드로입니다

라오콘, 바로 이 작품이 매너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엘 그레꼬가 파악한 사도 바울입니다.
그의 그림중에서 제겐 색이 먼저 들어오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보는 것으로 서양문화의 역사 after가
충분히 된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