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더군요.
게바라가 여행중에 틈만 나면 앉아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거나 일기를 쓰는 장면입니다.
이번 여행중에 저는 카메라를 챙겨가지 못해서 (생각은 했는데 막상 짐을 챙기는 날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 도구라 그런 모양이지요?)다른
사람들이 찍는 일에 열중하는 시간에 주로 주변을 따로
떨어져서 혼자 돌아다니거나 ( 그 시간이 좋았습니다.)
아니면 앉아서 기록하는 일을 했습니다.
덕분에 집에 와서 시간이 흐른 다음에도 참조하면서 글을
더 자세히 쓸 수 있는 보조자료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기록의 힘이라...
아마 그런 경험때문에 게바라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오는지도
모르겠네요.
파묵칼레에 간 날 가기 전에 들러본 곳이 히에라폴리스였습니다.
히에라 폴리스란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날은 온천욕을 하는 시간때문에 그랬는지
간단하게 보고 다음 날 아침 콘야로 가기 전에 다시
들렀습니다.
저녁무렵에 본 곳과 아침에 보는 같은 장소가 느낌이 상당히 달라서 신기했습니다.
새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서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서 한참을 걸어다녔습니다.
마주보는 곳에서 빛나는 태양과 정적이 깔린 곳의 고요함
이런 시간에 조금 더 여유있게 바닥에 깔개를 깔고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름모를 나무들이 늘씬하게 뻣어올라간 사이 사이에
바닥에는 땅에 바로 기대어 자라는 풀들이 무더기로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염소 똥인지 양의 똥인지 짐승의 똥무더기가 군데 군데 있고 멀리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는 사람들의 탄성도 들리는 시간
아,이런 것이 다 어우러져 자연이 더 아름다운 법이로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돌아서 나오는 길에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인솔가이드로 간
양미숙씨가 옆에 와서 말을 겁니다.
심선생님은 함께 온 여행에서도 혼자서 잘 즐기시네요!
그래서 책사는 것에 의기투합한 사람들 사이의 (제가 사고 싶은 책을 그 사람도 늘 구입하는 바람에)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콘야로 가는 길, 바다처럼 큰 호수가를 지나갑니다.
오늘은 희생제라는 이슬람의 명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길가에는 양을 잡는 사람들도 있고 유난히 양이 많이 보이기도 하는 날이었습니다.
버스 한 쪽으로는 그런 풍경이 다른 한 쪽으로는 물이 이어집니다.
버스가 벤츠라서 그런가요?
기분이 그래서일까요?
다른 때라면 엄두도 못 낼 버스속의 책읽기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종종 밖을 내다보다 가끔씩 피곤하면 잠을 자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서 글을 읽기도 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요.
콘야라는 지명을 처음 대한 것은 영화에서였습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다시 보는 데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자신이 가이드와 함께 한 여행이야기를 하면서
가이드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다가 콘야에 이르러 콘야라는 한 마디를 하더라는 그런 대사였는데 그 때는 막연히
도대체 콘야가 어디지? 그렇게 궁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터키에 관한 책을 읽다가 콘야라는 지명이 나오길래
호기심있게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곤 여행 일정을 살피는데 바로 그 지역에도 간다는 일정이 나와 있더군요.앗,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영화속에서 만난 바로 그 이름의 도시에 간다는 것이 즐거워서 기대하는 마음도 부푼 상태로 도착을 했는데 그 곳에서 만난 메블라나 사당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한바퀴 휘둘러보고 나오는 것으로 그쳤다는 것이지요.
![](http://www.turkeypeople.com/images/konya2.gif)
이 사진이 메블라나 사당의 바깥쪽을 찍은 것입니다.
메블라나의 아버지대부터 이 곳에 와서 사람들을 가르쳤고
그 일이 아들에까지 이어졌는데 그는 시인으로 사상가로
존경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의 사상이 살아 생전에는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었고 종단을 형성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죽고 나서 그의 생각을 이어받은 사람들 사이에 종단이 생겨서 수피즘이란 이슬람의 종파가 생겼다고 하고,지금도 12월에는 수피즘 축제가 콘야에서 열린다고 하더군요.
사당안에 들어가니 그를 기리는 유물이 많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시였습니다.
마음에 들어서 영어 원문을 적어놓고 그 앞에서 일부러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come,come again,whoever
whatever you may be
come;
heathen,fire worgh iper,(이 부분을 잘 못 적은 것이 아닌데도
사진에도 없고 해독이 되지 않는군요)
sinful of idolatry come.
come even if you broke
your penitence a hundred times,
ours is not the portal of
despair and misery,come
그래도 전체적인 해석에는 별 차질이 없네요.
그의 아들대에 와서 조직된 종단에서는 수행을 위해
계속 돌면서 춤을 추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수피춤의 원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살아 생전에 한 말중에서 절대선과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더군요.
그 말이 참 인상적이어서 적어 두었는데 오늘 노트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음미해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http://www.turkeypeople.com/images/konya3.gif)
일정에는 알라예딘 모스크를 본다고 되어 있었지만
어디 가나 표지판의 글 먼저 읽어보는 습관으로 들여다 본 글에는 그 곳이 알라예딘 모스크가 아니라 셀주크 투르크 시대의 술탄 셀림이 아버지 술레이만에게 헌정한 모스크라고 되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구경한 다음
잠깐 주어진 자유시간에 맞은 편에 있는 묘지에 갔습니다.
일행과 함께 가서 그녀는 사진을 찍고 저는 묘비명을 구경했지요. 묘비들이 아주 검소하고 밝은 느낌이고 마치 이 곳이 묘지가 아니고 공원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라면 어떤 묘비명을 쓸 것인가 공연히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 시간이었지요.
희생제 날이라 그런지 가족단위로 묘지에 온 사람들도 눈에 띄네요.
사람의 일생은 짧으나 가족을 통해 이어지는 끈이 되고
기억속에서 남아서 살아가는 것.그 기억속에서 어떤 존재로 남아있는가가 결국 부활의 개념이 아닌가 혼자 그런 생각을 한 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