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라 그냥 몸이 깨는대로 일어나야지 하고
전화 예약 없이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열시
그런데도 집이 조용합니다.
아무도 일어난 사람이 없는 조용한 집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차분하게 보려고
일부러 깨우지 않고 있는 중이거든요.
고갱.
어렸을 때 달과 육펜스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고갱이란 말을 들었었지요.
어린 마음에 예술가는 현실의 직업세계의 안정과 가족과의 유대마저 버리는 한 예술가 지망생의
고뇌가 먼저 들어왔지만 그래도 가족은 어떻게 되나 그런 걱정도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네요.
커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한 편 보았고
한 인간의 내부에 있는 에너지와 혼란을 유심히 본 기억도 나는군요.
그래도 이상하게 잘 끌리지 않는 화가였습니다.
그저 미술사 책에서 보는 정도로 스쳐가는 화가였지 일부러 작품을 찾아서 보는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러다가 여행을 다녀온 후 우연히 찾아본 후기 인상파 그림들중에서
전혀 모르던 고갱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과연 내가 고갱의 그림을 알고 있나 할 정도로 그림이 많고
낯설고 매력적인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지요.
앗,시간을 내어 다시 천천히 보아야지 하고 마음만 먹다가
드디어 오늘 아침 그의 그림을 천천히 보고 있는 중입니다.
버려진 정원이란 제목인데요 잘 정돈된 정원도 좋지만
이렇게 버려진 정원에 더 많은 이야기가 묻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 페허에 끌린 후라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이 그림은 고갱의 자녀들을 그린 모양인데 이상하게 얼굴을 뭉개버린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것과 많이 달라서 다시 보게 되는 그림입니다.
위 두 그림의 제목이 같지만 색감이 많이 다르네요.
이번 여행에서 유심히 보고 다닌 것중의 하나가 땅색깔입니다.
같은 땅이라도 얼마나 다양한 색이던지 그저 그런 다양한 색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 번 이동하면 여러 시간 걸리는 버스여행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의 치마에서 보이는 블루가 아주 강렬하군요.
특히 누워 있는 여자의 블루가..
이 그림 참 인상적이네요.
전경의 색도 그렇고 자연속에서 아주 조그맣게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고요.
특히 우리가 보는 쪽에서 보면 오른쪽 사람의 고개숙인 모습에 눈길이 갑니다.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니 어느 순간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색감이 달라진 것이 느껴지네요.
색만이 아니라 선도 그렇고요.
이 그림과 앞 그림의 차이,아마 이 그림은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던 시절의 그림이 아닐까
혼자 속으로 추측을 해봅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걸어 놓은 음반이 다 끝나버렸습니다.
첼로 연주와 함께 그림을 보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는데
더 보고 있으면 한이 없을 것 같군요.
오늘 아침의 출발은 이것으로 족하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