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하루는 큰 누나네를 갔는데
아주 오래된 재봉틀이 있었어요.
이게 언제적 물건이냐 했더니
인생의 기념물이라서 간직하고 있다는 거에요.
'제가 사드린 재봉틀이었어요.'
형님의 재봉틀
제가 특히 남편의 누님, 형님을 참 좋아해요.
시댁 식구들이 속정이 깊은데 이 형님이 더 그러세요.
남편도 누님을 좋아하고 많이 챙기죠.
어느 날 남편이 재봉틀 이야기를 늦게서야 알게 됐다며 고맙다 해요.
제가 시집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형님께 재봉틀을 사드린 적이 있는데 그걸 나중에 알게 된 거죠.
아마 결혼 날짜 잡고, 혼수 준비했을 즈음일 겁니다.
하루는 남편이 종암동에 계신 누나를 만나러 가자면서 저를 데려갔어요.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곳을 한참 지나니 오막살이가 나오더라고요.
누님이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스물여덟에 혼자 되셨다는데,
등에는 갓난아기를 업고 있고, 그 옆에는 세 살짜리 꼬마가 있어요.
나가서 일할 수 없으니 아이들 돌보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생계를 꾸려야 했는데,
주로 봉제 인형에 눈코입을 붙이거나 마늘 까는 일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사정이 너무 딱해요. 집에 와서도 걱정이 계속 되는 거예요.
그뒤로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결혼한 뒤 제가 형님께 말씀드렸어요.
“형님... 옛날부터 삯바느질해서 애들 키우고 그랬다고 하잖아요.
솜씨가 좋으시니까 한복바느질을 한번 배워보세요.”
그리고 제가 재봉틀을 사드렸어요.
저희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제 한 달 치 월급과 맞먹는 재봉틀 값이 부담은 됐습니다.
그래도 한 가족을 살리는데 그게 문제겠어요.
형님이 재주가 좋으셔서 어렵지 않게 한복일을 하실 수 있었어요.
형님은 그 재봉틀로 두 아이 모두 대학까지 보내고 시집 장가 보내셨어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인생의 기념품이라면서 재봉틀을 방에 모셔 두셨고요.
형님은 항상 제게 고맙다 하세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일은 제가 정말 잘한 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