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둘이니까 무거운 짐은 나와 나눠요"
더 잘하고
또 고마워하면
오늘도 우리는 함께 걸어간다
시댁 이야기
결혼 전에 남편이 제게
“시댁이 가난하고 형제들이 많이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라고 반문했어요.
부부가 둘이 잘사는 게 중요하지 왜 그런 걸 신경 쓰냐고 했지요.
그이가 그때 왜 그걸 물었는지
결혼식 치르고 전남 영광의 시댁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1980년이면 시골이라 해도 대부분 난방을 연탄보일러로 바꾸고,
우물도 수도로 끌어 올려 물을 받아 썼던 시절인데, 시댁은 아니었어요.
아궁이에 불 때서 밥 짓고,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쓰더라고요.
도시에서 자란 제게는 낯선 풍경이었죠.
식구도 시할머니, 시부모님, 그리고 누님과 동생 다섯, 대가족이었어요.
남편이 생각할 때 아버지 어머니는 무학이고, 형제들은 초졸, 중졸, 고졸이니까
이 여자가 우리 집안 무시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잠재돼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행여라도 시댁 분들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힘들어지죠.
전 그 부분을 절대 안 건드리지요.
어디선가 남편이 우리 가족을 잘 이끌어준 게 마누라 덕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알아주니 그 또한 고마웠어요.^^
세월이 참 빠르죠.
저희가 결혼할 당시 막내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제가 신혼여행 갔다가 시댁을 가서 막내에 대해 처음 얘기를 들었고 처음 봤어요.
마을 어귀에서 얼굴 새까만 꼬마가 달려오더니
“엄니 큰 성 와요~”
하면서 집으로 다시 달려가는 거예요
“저 아이는 누구냐” 했더니
초등학교 5학년 막내동생이라고.
이 막내를 대학에 보내면서 남편과 제가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아찔하기도 한데, 보람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