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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내 아들… 군에 보냈습니다 - 서프펌

| 조회수 : 2,090 | 추천수 : 30
작성일 : 2008-07-28 00:51:08
22년 전의 유월이었나…

임신 7개월의 나를 남겨두고 학생부부였던 남편이 논산훈련소로 들어갔던 그 기억. 첫더위가 시작되던 초여름… 혼자 남겨져 뱃속에서 곰슬거리던 아기…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눈물겨웠던 유월…

그리고 지난 유월… 나는 내 아들을 그… 논산으로 보냈다.

'엄마! 제가 칠백명의 대표로 입소자신고를 했어요.'

'엄마! 다른 아이들은 발이 아프다는데 전 군화가 너무 편해요.'

'엄마! 전 이곳이 정말 재미있어요.'

('아들아… 세계적인 뮤지컬배우가 꿈이던 너에게 그곳은 새로운 경험의 무대였겠구나. 조국을 가슴에 품는 배우가 되어주길 바란다. 아들아… 엄마가 걱정할까 봐 빈말을 하는 건 아닌지… 군화가 너무 편할 리야 있겠니. 네 깊은 마음 엄마가 다… 안단다. 아들아!…   간간이 집 생각에 눈물겹기도 하겠지.)  

그러나 아들에게 보내는 아침저녁의 일기 같은 인터넷 편지에는 '장하다~ 내 아들… 발도 건강하게 낳아준 부모에게 고맙지 않니? 그토록 재미있는 논산훈련소… 네 인생의 값진 추억이겠구나.' 이렇게 써서 보내곤 했다. 엄마를 걱정하는 아들을 적당히 속아주며 염려하는 모정이려니…

'엄마! 아빠가 편지를 보냈고 사진도 받았어요.'

'엄마! 친가에 편지를 보냈어요.'

'엄마! 아빠하고는 전화도 잘하시고 그러신다면서요?'

('아들아… 엄마는 너를 입대시키기 전에 늘 눈물이 나왔어,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우리 준이는… 군대에 가서도 엄마 따로, 아빠 따로, 편지를 보내야 하는구나. 정말 미안한 마음에 널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당연하지, 아빠랑 친한 친구로 지내는 거 알지? 우리는 가족이고 너를 사랑한다는 점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자란다. 너는 우리에게는 보물이거든… 본의 아니게 아들에게 소홀했던 아빠를 이해하고 가슴깊이 화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 이렇게 써서 보냈었다.

남편의 파산과 실종… 생사를 몰랐던 남편은 아들이 청년으로 자라난 별거 5년 뒤, 이혼법정에서 얼굴을 보게 됐었다.

사춘기 아이를 홀로 기르며 가장 큰 마음의 짐은 상처 없는 성정을 지닌 사람으로 커 주길 바랐던 것인데 아이 앞에서 나는 수없는 거짓말을 했던 엄마 아니었던가… "아빠가 외국에서 용돈을 보냈단다.", " 아빠가 보내주신 선물이야"… 엄마의 이벤트 안에서 잘 자라준 내 아들은

'아빠의 뒷모습이 너무 측은해 보여요.'

'아빠의 여자친구와 통화했어요, 내가 군에 있는 동안 우리 아빠를 잘 부탁 한다구요.'  

'이혼은 엄마 아빠의 문제인 거죠. 친구들에게 말해요. 우리 엄마 아빠는 친구처럼 지내고 아주 쿨~ 하게 서로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바라던 대로 가슴이 따뜻한 청년이 되어 고맙지만 내 삶의 모서리에 남아있는 아픈 기억들이 이 어미인들 없으랴… 그때가 가을이었지? 남편과 그의 여자친구가 함께 지낸다는 아파트의 주차장에서 남편의 자동차를 발견했던 것이… 차마 의연하게 돌아올 수 없었기에 망연히 들어섰던 커피숍에서… 창밖으로 보이던 가을 나무들은 얼마나 무심한 데생 같았던지. 엄마 못잖게 사랑이 결핍되었을 아들이 한없이 가여워 무슨 생각에 빵을 잔뜩 사가지고 들어왔나 몰라. 아들과 마주 보고 우역우역 빵을 먹으며 웃으면서 자꾸 울었었지…

어쨌든…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가장 큰 아픔인 내 아들은 지금 마음이 선한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나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고자 육군훈련소의 훈련병으로 폭염의 여름을 지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결손가정의 자녀… 그들을 바라보는 편견에서 내 아이를 보호하고자 발버둥치며 아이를 길렀다는 점.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으로도, 권리 이전에 의무를 다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도 별로 부끄럽게 살아온 기억은 없는 듯하다.

'엄마! 8월이면 자대배치 받게 돼요. 논산에서 자꾸 교관 하래요. 전 싫다고 했어요. 너무 멀어서 엄마가 면회오시기 힘드니까요.'

8월이면 아들이 빛나는 이등병 계급장을 달게 되는가. 검게 그을린 아들이 엄마~ 하면서 달려올 첫 면회 날을 눈물겹게 기다리면서도 가슴 한켠으로는 가슴에 어두운 마음 지울 수가 없다. 훈련소의 교관도 차출, 이 어지러운 대한민국에서 전경도 차출이니 어느 부모가 마음을 놓고 있으랴.

인터넷에서 전투경찰을 검색하고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고 서프에서 어느 분이 올리신 댓글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독사에 독을 올리듯이… 인권말살과 기합으로 맹목적 적개심을 불태워 거리에 내보내고 누구든 닥치는 대로 살인무기 방패로 개 패듯 내리찍을 수 있게 만드는 모순과 폐해 투성이의 전의경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 어느 분의 댓글.

'촛불집회로 6,7월 분위기는 험악하다 군기 잡는다는 명목으로 (중략…) 7월에는 매일 매를 맞은 것 같다.' - 양심선언 한 이길준 의경의 글 중에서.

구타나 가혹행위가 없어졌다는 대한민국의 병영생활. 어느 것이 실체인가? 육군훈련소 사이트를 보면 웰빙식단이라는 코너까지 만들어져 있던데 미국산 쇠고기를 먹일 것이 염려되어 쇠고깃국이 나오면 먹지말라… 이랬던 건 차라리 귀여운 유머였구나.

'준아… 이제 자대 배치받으면 얼굴 볼 수 있겠구나. 사나이는 폭풍우와 비바람 속에서도 살아남는 자가 되어야 하는 거란다. 어디에 배치되든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지휘관들의 지침에 모범적으로 따라가는 군인이 되어야 한단다.'

나… 이렇게 편지 쓰며 눈물 흘렸다. 아니… 피눈물 흐르더라.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정의롭지 못한 자가 되라고 가르치겠는가.

나는 지금 엄마는 촛불을… 아들은 방패를 들고 대치할지 모르는 상상을 진정 뼈저린 현실로 느끼며 오열하고 있다. 어느 부모가 군에 간 아들에게 상사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법의 처벌을 받으라고 가르치겠나. 그러나 혹여… 설마… 하던 비극이 내 가정의 일로 현실이 된다면 내 아들도 방패와 헬멧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정의의 촛불들과 마주 대치하는 상황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누구의 잘못인가. 무엇부터 잘못된 것일까.

미스사이공이며 지킬앤하이드… 뮤지컬 캣츠 중의 메모리… 를 즐겨 부르던 내 아들, 여자 못지않게 발레며 재즈를 밤새워 연습하고 관객의 눈동자를 바라볼 줄 아는 배우가 되겠다고 꿈을 키워온 내 아들… 그 아들이 나라를 지킨다고 사격을 배우고 화생방 훈련하며 애국의 마음을 키우고 있다. 이 아이의 젊고 푸른 영혼에 영원한 병을 줄지 모를 공권력의 잘못된 시스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나같이 이름없는 민초인 엄마. 그 마음에 어둠을 주는 근원지가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은 참으로 많이 달라져 있다. 우리 삶의 민주화는 이미 가정에서부터 개혁을 거치고 진보(?)된 21세기에 우리는 있지 아니한가. 예전 같으면 가부장적인 사고와 유교적 관습으로 부모의 말에 무조건적인 복종이 미덕이었으나 이 시대에 우리는 자유롭게 토론하고 소신을 말하는 자녀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통해 세대의 차이를 극복하고 가정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그러나 지금 우리는 메아리도 없는 아우성 속에 혼란의 시간들을 겪고 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자유의지를 가르쳐 주어놓고도 역사의 한장면 한장면 안에서 과연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부모인가.

나는 지금… 내 아들 앞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다. 다만, 내 아이가 전경으로 차출되어 엄마가 들고 있는 촛불과 대치하게 된다면 피 토하는 마음으로 성난 엄마가 되어 외칠 것이다.

'국민의 눈을 가리는 위정자들은 물러가라~~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무능한 정권~~ 이명박 퇴진~! 이명박 정권 타도~!'

나는 진보의 띠를 둘러맨 엄마가 아니다. 그러나 보수의 개념을 가진 그런 엄마도 아니다. 눈물겨운 내 아들… 깜장 콩 같이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에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해맑게 엄마에게 달려올 한 아이의 어미일 뿐이다. 나에게 극렬진보… 좌익 빨갱이라 부르며 돌을 던져도 좋다. 웃어도 눈물이 나는 이 아이러니 앞에 던지는 돌을 맞으며 내 아들이 편하게 살아갈 진정한 대한민국을 나는 꿈 꿀 것이기에…

'엄마! 머잖아 엄마를 만나는 날까지 보고 싶어도 잘 지내셔요.'

'지금 나는 물집 하나도 생기지 않은 발을 까딱까딱하며 편지 쓰고 있어요.'

눈을 감으면 만져질 것 같은 보고 싶은 내 아들. 새벽녘이면 절벅이는 군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몇 번인가 눈을 뜨곤 했는데… 아들아… 너에게 주어진 의무의 시간들… 빛나는 대한의 국군으로 잘 지내줄 것을 믿는다. 전역할 그날까지 조국을 가슴에 새기고 정금같이 단련되는 시간이 되거라.  

그러나 가슴 깊은 저편으로 엄마는 새로운 각오의 띠를 묶어 나가고 있단다. 내 비록 너를 대통령의 아들같이 명품 슬리퍼를 신겨서 기르지는 못했지만… 누구처럼 번듯하게 땅 평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어미지만 무능력한 정권의 피해자로 내 아들을 희생시키지는 않겠다고…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생명조차 경시하는 공권력의 치기 앞에서 가장 무섭고 엄한… 국민의 한 사람, 엄마의 한 사람으로 결코 위정자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출처: http://www.seoprise.com/board/view_nw.php?uid=148346&table=seoprise_11&level_...
餘心 (dh8972)

조선일보의 내공빨로 여기까지 날려 온 공돌이 입니다요. ^^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시니숲
    '08.7.28 2:33 AM

    정말 눈물이나요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었을까요
    불과 몇달사이에요...오늘 이길준의경의 기자회견이 더 가슴을 아프게합니다.

  • 2. 혀니랑
    '08.7.28 10:08 AM

    전율이 일 만큼의 모정이 눈물겹습니다. 건강한 엄마와 건강한 아들을 봅니다. 공권력에 의해
    치유될 수 없는 병이 들어도 그들은 모르쇠로 일관할 것이 자명한 지금 ,,두려움이 없다면
    사람이 아닙니다....................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 3. 은하수
    '08.7.28 7:00 PM

    건강하게 잘지내고 오길 기원합니다..저도 아들이 있거든요..건강하게..

  • 4. 오후
    '08.7.28 7:21 PM

    저는 아들이 군대 간 2년동안 그리움 사무친 글, 솜씨없지만 여러펀 썼던 기억납니다.

  • 5. 자연맘
    '08.7.28 11:15 PM

    아들을 군에 보낸 이 엄마도 눈물이 납니다.

  • 6. 녹차잎
    '08.7.29 2:49 AM

    슬프다. 마음이 따뜻한 이를보며 인생은 어디를 가고 있는가. 용서할 수 없는 인생. 가난한 삶, 짓누르는 고통. 아프지 말고 행복하세요. 눈물이 꾸역 나오려고 하지만 우리 웃으면서 살ㄹ아요.

  • 7. 오리맘
    '08.7.31 5:11 PM

    제아들은 신병훈련소에 있습니다. 오늘 첫편지가 왔습니다.
    군사우편이란 도장이 찍혔는데, 세상이 좋아졌는지 편지지와
    편지봉투가 참으로 이쁨니다.

  • 8. 푸른솔
    '08.8.2 9:15 AM

    부럽습니다 아들을 군에보내서^^ 전작은 딸이 군에길 바랬는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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