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시골이었던 저는 그날 아침 학교 오지 말라기에
농번기 방학인줄 알았어요.
울집은 산하나 넘으면 바로 5.18묘역이에요.
그때는 그냥 평범한 시골마을이었겠지요... 거기도...
마냥 좋았지요. 요즘처럼 빡세게 공부시키는 분위기도 아니였으나
아이들에게 학교는 늘 가기싫은곳이었는지...
그러나 며칠째 아버지가 들어오시지 못했지요
이유도 몰랐고...
전 아버지가 들어오시지 못하는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답니다.
당시 울아부지는 광주로 출퇴근하시며 생계를 꾸리시는 가장이셨습니다.
물론 집에서 엄마가 농사도 지었지만...
엄마 얼굴의 그늘이 왜 그리 짙었는지 그땐 몰랐어요
2-3일을 기다리시던 엄마가
막내를 업고 산을 넘어 광주로 가시고
그날밤 엄마도 오시지 못했답니다.
할머니가 왜 부엌에서 밥하다 말고 우시는지
전 정말 몰랐어요

먼 훗날 비로소 이해하게 된 그시절...
아버지는 퇴근길이 막혀 시내 고모집에서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계셨고
엄마는 산넘어 광주 변두리를 지나
고모집까지 갔었답니다. 아빠 찾으러...
그때 광주는 계엄군은 변두리에서 시내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시내는 시민군이 계엄군을 밀어내고 잠시 해방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때...
아버지는 엄마를 보자마자 기가 막혔답니다.
당신이 혹시 죽으면
여편네라도 살아서 6남매를 키워야할텐데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산을 넘어 그 먼길을 걸어왔으니
게다가 등에는 갓난아이를 업고
다시 그 먼길을 되돌아오도록
두분 아무말도 안했답니다.
여편네가 미워서
세상이 미워서
시내에선
교련복의 고등학생, 일반시민들 모두를
양동시장 엄마들이 주먹밥을 만들고 물을 떠다가
먹였답니다.
네것 내것없이 모두를 거두어먹이고
얻어먹으면서도
얼굴엔 웃음이 싱글벙글
그 모습이 찍힌 사진
혹시 보셨나요?
어젠 남편과 촛불문화제에 참석했습니다.
마지못해 일어나는듯한 남편을
차라리 데리고 가지 말걸....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고 삐져서
아침도 안먹고 어디론가 나가버렸어요.
왕년에 구호깨나 외치고
돌팔매깨나 던졌다고 말하드만
이제 생각하니 전부다 구라였나보네요 ----------- 속어, 비속어 운운 사양할랍니다.
어젯밤 높은 담장안에서
잘 주무셨을 그 鼠생원님
몇해전 어느 잡지에 인터뷰했더군요.
한옥에 관심많은 저...
번듯한 가회동한옥이 예뻐 기사 스크랩하긴 했지만
거기 사는 사람 보기 싫어 포스트잇으로 얼굴 가려놓았었지요
내용중에 아래 사진과 같은 말이 있더군요.

한글배울때 삽질하러 갔었는지
"ㄱ"과 "ㅇ"의 조합이 비슷해서 헷갈렸는지
분명히 강요와 공유의 뜻을 반대로 알고 있는게 확실합니다.
그렇지않고서야 자신의 철학에 반하는
어제오늘의 우리나라 상황이 어떻게 설명이 되겠"읍"니까...
그 주먹밥만큼 달고 맛나진 않겠지요.
간밤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변할게 없는 아침을 맞이하다가
언뜻 생각나 주먹밥을 만들고는
차마 제 입에 넣지는 못했습니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계신분이라면
오늘아침은 누구나 같은 마음일겁니다.
대통령 ... 거짓말쟁이
내 남편도 거짓말쟁이... OTL
(제가 저 사진찍다 말고 잡지사진에다 뭔짓을 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