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06/30
<< 죽음이 가득한 그곳에서... >>
오후 6시 30분.
퇴근 차량들로 밀리기 시작하는 공덕동 고개를 넘을때였다.
한달에 한두번 밖에 존재를 못 느끼는 주머니 속의 호출기가 연달아
두번이나 부르르 떨렸다. 음성 메세지였다.
이상한 예감에 길가 공중전화 옆에 차를 세우곤 버튼을 눌렀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내의 목소리였는데, 어딘가 불안한듯 하다.
'자기 지금 어디있어요? 집에 오고있는 중이지??
전화 할수 있으면 전화좀 해줘요.'
곧바로 재발신 버튼을 누르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난데, 무슨일이야..?"
"자기 오늘 삼풍백화점 안갔지? 근데 삼풍백화점이 어딨는거야..?"
"내가 거길 왜 가냐. 그 근처에도 갈일 없어."
"휴우~ 다행이다. 난 또 혹시 퇴근길에 거기 지나 오나 해서.
그런데 거기 지금 난리 났데요. 폭삭~ 무너졌데...지금 TV에서 난리가 났어요."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내내 라디오 중계를 들으며 엄청난 대형 참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들어서니 아내와 아이들이 무서워 죽겠다며 모두 달려든다.
평소 집에 들어서면 아이들과 얼싸안고 뽀뽀 하는걸 그냥 멀뚱히 바라만
보던 아내 마저도 오늘은 무섭다며 그큰 덩치를 내 가슴에 안긴다.
아내는 TV에서 참사 현장 중계를 보느라 저녁도 못하고 있었단다.
옷을 벗으며 TV를 보니 정말 입이 안 다물어진다.
우째 이런일이...
"음... 저렇게 사람들이 다치고 난린데 지금 우리가 한가하게 저녁
제대로 차려 먹을수 있나...자기야~ 오늘 저녁 하지 마라.
오늘같은 날은 비상 사태니깐 오늘 저녁은 비상식량으로 대체하자."
그래서 오늘 저녁은 밥만 하고 반찬은 전에 사 두었던 비상식량으로
해결했다. 3분카레, 3분스테이크, 3분짜장으로...
TV에선 지금까지 몇시간째 계속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중계중이다.
6시 조금 전에 일어난 사고를 불과 수 십분만에 전국으로 생중계하는
그 기민성과 상업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중계방송이 놀라웠다.
방송에선 연신 현장근처의 구경꾼과 차량들로 인명구조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 하면서도 정작 가만보면 그 구경꾼과 차량들의 대부분이
각 신문, 방송사의 취재기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명의 구조나 수습 보다도 어떻게 더 극적인 장면이 없을까 하며 이리저리
카메라 엥글을 들이대는 모습에서 하이에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민첩하고 기만한 언론들 덕에 우리는 세계 어느 곳에서의 대형
사고도 불과 수십분 안에 눈으로 확인 할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불과 두달전 어느날 아침에 발생했던 백여명의 인명을 앗아간 엄청난
대구 가스 폭발 사고는 그날 저녁 9시 뉴스에서야 확인 했던가...
그것도 현장에서 다친 사람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본 기억이 없다.
대형 참사와 정치는 무슨 함수 관계가 있는 것일까...
어째서 이 사고를 바라 보는데 이틀전에 끝난 지방 선거가 떠오를까...
어떻게 사고가 나도 하나 같이 말도 안되는 사고만 나는것일까...
사실 정치와 사고가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사고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도둑이 제발
저려 하듯이 빌미를 주는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TV화면에서 적십자사의 자원 봉사 아주머니들이 구조대원들에게
야식으로 컵라면을 나누어 주는 모습이 보인다.
죽음이 가득한 그곳에서 산 사람은 살기위해 먹는다.
삶과 죽음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하찮은것에 아웅다웅 하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우스워 보인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매사에 감사하며 열심히 사는 그 자체가
바른 삶이 아닐까...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보며...
----강두선...
이런글 저런질문
즐거운 수다,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
죽음이 가득한 그곳에서...
강두선 |
조회수 : 1,271 |
추천수 : 22
작성일 : 2005-06-28 14: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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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강두선
'05.6.28 2:45 PM정확하게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과연 무었이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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