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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를 삶으며...
강두선 |
조회수 : 1,216 |
추천수 : 15
작성일 : 2005-06-24 18:23:49
대략 한달에 한번 정도 우거지를 삶는다.
커다란 가마솥에 가득 담아 산처럼 쌓아놓고 우거지를 삶는다.
우거지 삶는 일은 거의 하루 종일 신경을 써서 해야 할 일이다.
먼저 커다란 자루에 담겨있는 우거지를 풀어 헤쳐 시들거나 상하거나 지저분한 것들을
털어내며 가마솥에 담는다.
보통 5-6개의 자루를 한번에 삶는데 풀어 헤쳐놓으면 그 부피가 엄청나다.
그 큰 가마솥에도 넘쳐서 수북히 산을 이루곤한다.
수북히 쌓인 우거지 사이로 물을 적당히 받아 불을 당긴다.
가바솥의 화력은 엄청나게 강하지만 우거지를 삶을때는 그냥 중간정도의 불꽃으로 천천히 삶는다.
30분 정도 지나면 물이 서서히 끓을려고 김이 올라온다.
이때쯤이면 뻣뻣했던 우거지의 순이 조금씩 죽어가며 높이 수북했던 모습도 조금씩 내려간다.
손에 내열장갑을 끼고 너무 많이 쌓여 잘 움직이지 않는 우거지를 낑낑 거리며 이리저리 누르고
흔들어 순이 좀 더 빨리 죽도록 한다.
20분쯤 지나면 너무 많아 닫기지 않아 비스듬히 걸쳐 닫아두었던 뚜껑이 순이 죽으며 조금씩 내려와
어느덧 제대로 닫힌다.
이때쯤 내 키만큼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휘휘 뒤적이노라면 바로 그 냄새가 나기시작한다.
조금은 퀘퀘하면서도 콤콤한, 시골에서 소 여물 삶을때의 바로 그 냄새...
처음엔 그 냄새가 웬지 싫었다.
그리 상쾌하지 않은, 농촌의 퇴비냄새와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요즘엔 그 냄새가 참 좋다.
그 냄새를 맡고있노라면 왠지 편안하고 어쩌면 행복한 느낌마저 든다.
이효석님의 수필 '낙옆을 태우며'에서 낙옆을 태우면서 인생의 작은 행복을
새삼 발견하는것 처럼 나는 우거지를 삶으며 그런 느낌을 받는다.
한참 끓기 시작하면 수북했던 우거지는 가마솥 안으로 잦아들고 푸르렀던 이파리는
누르스름하게 색이 바뀐다. 10여분정도 끓어 순이 완전히 죽고 색이 누렇게되면 불을 끈다.
30여분 정도 가마솥에 그대로 둔 후 우거지를 건진다.
축축 늘어진 우거지를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건저올려 찬 물이 담겨진 커다란 물통에 옮겨 담는다.
물통에 가득 담긴 뜨거운 우거지를 빨리 식히기 위해 찬 물을 조금씩 흐르도록 놔두고 그동안 가마솥을 닦는다.
끓였던 물을 버리고 호스로 물을 뿌리며 솥을 닦는다.
솥 바닦에 조금 눌러붙어 탄 자욱과 솥 둘레 얼룩을 수세미로 박박 엎드려 닦는다.
다시 호스로 물을 뿌리면 하얀 스테인레스 솥 바닥이 뽀드득 제 모습을 드러내면 기분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든다.
찬물에 담가둔 우거지를 건져서 먹기 좋을 정도로 칼로 자른 후 소쿠리에 건져 물을 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번 사용할 만큼씩 봉지에 담아 냉동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우거지 삶는 일은 끝이 난다.
냉동창고에 수북히 쌓인 우거지를 보노라면 마치 부자가 된듯 한 느낌이 든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되는 보잘것 없는 우거지지만 수북한 우거지더미를 바라보며
저것들로 맛있게 끓일 해장국을 생각하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마음의 풍요는 생각하기에 달린듯...
---강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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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레지나
'05.6.24 9:53 PM정말 마음이 얼마나 넉넉하시겠어요. 잘 삶아진 우거지로 국 끓여 먹구파요~~
친정 엄마 서울 사실때는 가끔 갖다주셨는데 시골로 거처 옮기신 후에는 우거지 먹기도 힘드네요
제가 집에서 조금 삶는건 맛이 안나드라구요... 정말 너무 먹구싶어요~~2. 히야신스
'05.6.25 3:20 PM해장국 장사를하시나요? 가정에서 저리많은양의 우거지를 삶는건 흔치 않은일 같아서요.....
3. 강두선
'05.6.25 4:59 PM레지나님,
언제 드시러 오시면 듬뿍~ 담아 드리지요. ㅎㅎ
히야신스님,
아무렴 가정집에 저런 가마솥 걸고 우거지를 삶을까요 ^^
해장국 장사만 하는건 아니고,
저의 식당 메뉴에 해장국이 있기에 해장국 도(!) 장사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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