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돌아가시고 혼자되신, 치매 초기인 엄마를 5년간 모셨어요
저는 자신없었는데 남편이 모시자고 적극적으로 나와서 일단 모셔보고 정 힘들면 그때 시설 보내드리자고 하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5년…
초기엔 모녀지간이지만 가깝고도 먼 사이, 애증의 사이가 맞다는 걸 확인시켜주듯 엄청 싸우고, 저는 공황발작으로 쓰러져 119에 실려가기도 하고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래도 데이케어에 나가시면서 밖에서 에너지도 쓰시고 사람들과 어울리니 집에서 심심해하시며 조시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셨는지 시간이 갈수록 아침에 옷 차려입고 준비하고 가셔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하루가 가는 데이케어를 빠짐없이 잘 나가셨죠
저는 그사이 요령이 생겨서 엄마와 거리두는 스킬도 늘어나고 싸움이 되기 전에 화제를 바꾸거나 다른 일을 하는 등 상황 대처 능력이 늘어나서 덜 싸우고 그럭저럭 잘 지내며 제 시간도 따로 빼서 저를 챙기는 기회도 갖고 했어요
그런데 최근들어 걷는 것도 힘들어지시고, 소변조절이 안되고 시간개념이 없어지고 기억력이 나빠지면서 새벽에 데이케어 가신다고 나가시려고 하시고, 나가셨다가 길을 잃어서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사위에겐 너무 잘해주시면서 딸인 저만 붙잡고 넋두리하다 화내시고 울고불고 원망하는 일이 늘어나니 제가 잠도 못자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져서 요양원에 보내드리기로 결정했어요
아직 초기라 멀쩡한데 무슨 요양원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어쩌다 보는 제삼자들이 볼 때의 이야기고 매일 같이 지내는 ‘만만한 딸‘의 입장은 많이 달랐어요
치매환자를 모셔본 분들만 아는 이야기가 많죠
그래서 저의 몸과 정신도 지켜야 더 오래 좋은 마음으로 끝까지 돌볼 수 있겠다 싶었고, 5년간 제가 주로 엄마를 돌봐드렸지만 그래도 한집에서 제가 여의치 않을 때 장모님 챙기고 제가 힘들까봐 한번씩 여행도 보내주고 그 기간은 회사다니며 장모님 챙기고 한 남편도 이젠 신경을 덜 쓰게 해줄 때가 되었다 싶어서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보내드렸어요
저랑 밤에 싸우거나 울고불고 저에게 퍼부으실 때에는 왜 나만 이래야 하나, 그래도 매일 아침 식사 드리고 잠자리 챙기고 병원이며 은행, 미용실, 목욕,.. 등 제가 다 해드림에도 치매라는 병 때문에 저를 안좋게 말씀하시면 저도 사람이라 상처를 받아요
머리로는 병 때문이라고 알지만 마음은 그렇게 안되는… 그래서 예전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수시로 해대던 그 딸은 어디 가고 만나면 싸울까 무서워 말을 아끼고 데면데면 최소한으로 대하며 저를 원망할 때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결정하려니 맘이 편치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서로를 위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때가 되었다 결정해서 보내드렸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평 좋은 구립이나 시립 요양원은 대기가 2-3년 되어서 엄두도 못내고 면회가 자유롭고 집에서 가까운 사설 요양원 급하게 찾아서 보내드렸는데 지금껏 매주 1-2회 면회를 가면 기적처럼 안 싸우고 한시간 두시간도 웃으며 이야기하고 엄마랑 사진도 찍고 간식 나눠먹고 와요ㅎㅎ
집에서 멍한 모습이나 조는 모습, 화내고 울부짖고 의심하고 바닥에 누워 어린아이처럼 떼쓰시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같은 층 분들과 우아하게 티타임 가지시며 수다꽃 피우시고, 그림 그리시고, 꽃꽂이 하시고, 화투 짝맞추기도 하시고, 무엇보다 털털하고 할머니들 잘 다루시는? 원장님과 어깨동무하고 끌어안고 농담 주고받고 쿠키 입에 넣어주며 기분 좋다고 엉덩이 춤도 추시고 그러는 모습에 5년 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봤어요 (누가보면 원장님이 딸이고 저는 직원같은 분위기예요 ;;)
물론 방금 한 즐거운 일이나 맛있는 간식 드신 것도 몇분 뒤에는 새까맣게 잊어버리시지만..
사실 요양원 가신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 거짓말을 해야하나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이셔서 다행이네 싶었다가 첫날밤에 우셨다길래 잘 버티시려나 걱정했는데 다음날부터는 같은 층 할머니들과 수다떠시고 특히 같은 방 할머니랑은 단짝이 되셔서 뭐든 같이 하시고 자식 흉도 보시고 그러신다고 하시네요
저 포함 그분 자녀들도 매주 찾아뵙는데 자식들이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같이 흉보신다고 ㅎㅎ
원장님이 매일 뭐하시는지 사진을 계속 보내주시는데 생기있고 즐거워 활짝 웃는 모습들이 많고 거기서 하는 활동을 어찌나 열심히 하시던지 집중력이 대단하시다고 작품 사진도 보내주시고.. 엄마는 거기가 깨끗하고 사람들 친절해서 너무 좋다고, 식사도 맛있어서 싹싹 다 비우시고, 낮엔 할게 많아서 시간가는줄 모른다고 저 만날 때마다 자랑처럼 얘기하세요
집에서는 각자 방에서 남남처럼 지냈는데 거기서는 이야기도 들어주고 안아주고 같이 춤추고 손뼉치며 자식 흉도 보고 인생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계시니 생기가 도시고 얼굴도 뽀얘지셨어요 ^^
저랑도 시간 두고 한번씩 뵈니 웃으며 반갑게 만나 수다떠는 것도 가능해 지고, 저에게 예쁘고 좋은 말만 해주시고… 엄마의 그런 낯선 모습에 아직도 얼떨떨 해요
요양원 보내드린 처음 며칠은 저도 남편도 집에서 우왕좌왕 안절부절 했어요
서로에게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토닥이며 감사말도 나누고 이제부터는 조금 편하게 지내자, 여행도 가자고 말하면서도 지난 5년간 방 틈으로, 집안에서 마주치던 엄마이자 장모님이 안 계시니 휑하고 이상해서… 데이케어에서 오셔서 “나 왔다”하시는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낯선 곳에서 힘들어하시는거 아닌가 걱정도 되고… 첫날밤은 저도 잠이 안와 꼬박 새웠어요
그런데 수시로 전화해서 엄마랑 통화하고 매주 찾아뵈니 엄마도 반갑게 만나고는 헤어질 때도 “또 와~”이러고는 바로 들어가셔서 다른분들과 어울리느라 정신이 없으세요 ㅎㅎ
저도 이제 신경을 덜 쓰니 잠도 편하게 자고 제가 사랑하는 새벽 시간에 제가 좋아하는 일도 맘놓고 하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라고 말하던 소녀시절의 저로 돌아가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마음에 부담이고 업보같이 여겨졌던 엄마를 제가 좋아하던 엄마로 다시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런 마음이 다시 살아난게 너무 감사해요
물론 이 모든 것이 다 아빠가 생전에 준비해 놓으셔서 가능한지라 아빠에게 감사하고 비록 돈받고 직업으로 하는 것이라도 저에게 무거웠던 짐을 덜어주는 직원분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동시에 저희 부부의 노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오늘도 베프 할머니와 간식 드시며 담소 나누시는 사진, 그림 그리시느라 초집중하시는 사진을 받고 잘 지내시네.. 하다가 어느새 가신지 한달이라는 빠른 세월에 놀라 한번 정리해 봤어요
아프신 분 모시는 모든 분들 고생이 많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