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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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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를 잘하는 아이 (Peer Pressure)

| 조회수 : 2,325 | 추천수 : 165
작성일 : 2010-02-18 10:12:27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평소에 알고 지내던 같은 반 남자 아이 엄마가 전화를 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혹시 우리 아이가 평소에 자기 아들 얘기를 안 하더냐고 물었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자 몹시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아이가 무슨 문제를 일으켰나 싶어 왜 그러냐고 묻자 실은 아들이 우리 아이를 짝사랑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고작 초등학교 3학년 짜리들이 무슨 '사랑'인가 싶기도 하고 안절부절하는 그 엄마가 안쓰럽기도 해서 실없는 웃음만 흘리는데, 혹시 자기 아들이 우리 아이에게 전화로 '고백'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거절하기도 뭐하고 그러라고 하기도 웬지 거북스러워 어물거렸더니 승낙으로 짐작했는지 좋아라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에 남편에게 얘기하니 벌써부터 딸 가진 아빠 노릇을 하느라고 언짢은 기색이다. 졸지에 10살 짜리 무뢰한으로부터 딸 하나 못지키는 덜 떨어진 엄마로 몰리게 되어 볼멘 소리가 나오는데 그 아이한테 전화가 왔다. 딸 아이를 바꿔 주었더니 어색한 얼굴로 제 방으로 들어가 한참 얘기를 하더니 비시시 웃으며 나온다. 남편이 애써 무관심을 가장하며 물었더니 시큰둥하게 그냥 웃기는 아이란다. 남편은 단번에 흐뭇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 반 아인데 날 좋아한대."
"그래서?"
"그러면서 나더러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잖아. 그래서 난 별로라고 했더니 자꾸만 똑같은 걸 물어보길래 계속 난 안좋다고 했어"
같은 부모라도 아빠와 엄마는 다른가 보다. 남편은 승전고를 울리는 기색이고 나는 난색이 되었다.
"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직접적으로 말한 거 아냐? 그냥 좋은 친구라고 하지 그랬어..."
남편과 아이가 꼭같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엄마가 yes는 yes고, no는 no 라고 분명히 해야한다고 했잖아. 난 걔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니까 no인 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어중간하게 대답을 하면 걔도 자꾸만 오해하고 혼자 좋아하는 마음만 커지잖아. 내가 아니라고 빨리 알려줘야 다른 친구를 새로 좋아하지."
열 살짜리 큰 아이의 느닷없는 '사랑고백소동'은 너무나 간단하고 단호한 딸아이의 거절로 매듭이 지어졌고, 정작 본인은 아무 불편한 마음 없이 지나갔는데도 나는 한동안 학교에서 그 엄마를 만나면 어색한 침묵이 오가는 웃지못할 관계가 되었다.

유교와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 세대의 한국사람들은 대체로 거절을 못하는 문화에서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yes라고 했지만 사실은 no이고, no라고 했어도 사실은 yes인 경우가 많다. 내 마음과 형편보다는 상대를 더 생각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라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가 좋아할 대답을 하고 마는 것이다. 마음에 없는 yes와 no를 거듭하다보면 우리는 종종 억울한 상황의 희생양이 되기 일쑤이고 내 마음 나도 몰라가 되기 마련이다.

유달리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들을 가진 엄마들은 날마다 계속되는 아이들과의 기싸움이 힘들 수도 있지만 반면에 그런 아이들일수록 no를 잘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 된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no가 힘겨운 부모와 의사표현이 분명한 아이들 간의 갈등이 설사 당장은 벅차더라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목소리는 존중해 주어야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no를 못하는 아이들은 부모가 아이의 yes와 no를 인정해주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난 경우이다. 아이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의 생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다보니 아이는 처음에는 의사를 표현하려고 애를 쓰다가도 나중에는 의사를 표현할 욕구조차 상실하거나 작은 일도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는 의존적 성향만 두드러지게 된다.

미국에서는 peer pressure 라고 표현하면서 아이들이 또래끼리의 압박에 눌려 휩쓸리게 되는 것을 우려한다. 또래 친구들의 외모는 물론이고 습관이나 생각, 가치관에 그대로 영향을 받고 자기의 고유한 생각이 또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심한 경우에는 삶을 포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십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모든 아이들이 다 자기 가정에서는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들이건만 집밖을 나선 후에 남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에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치가 하락한다고 느끼고 그로 인해 삶의 끈을 놓게 되는 것이다.


마약을 하는 것에도, 무분별한 성관계를 가지는 것에도, 흡연에도, 음주에도, 음주운전에도, 그리고 또 부모들이 미처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그 누가 뭐라고 비난하고 따돌림을 한다고 해도 No 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돌아설 줄 아는 용기있는 아이를 키워내는 것이야말로 전과목에 A를 받는 아이를 길러내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려운 일이 되어가는 세상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수많은 유혹들 속에서 엄마 아빠가 늘 따라다니며 지켜줄 수는 없지만 옳고 그른 것을 잘 구분할 수 있고 외부의 압력과 무관하게 자기만의 목소리를 지닐 수 있게 가르쳐줄 수 있다면 그래도 절반의 안심은 가능하지 않을까. 요즘 아이들의 조숙함에 새삼 놀라면서도 자기를 좋아한다는 이성(?)의 고백에 엉뚱한 책임감으로 억지로 동의하지 않고 싫다고 말할 수 있었던 그 옛날 10살 시절의 우리 딸의 용기가 새삼 대견하게 기억이 난다.

이제 다음 달이면 열일곱 살의 아가씨가 되는 큰 아이가 앞으로의 인생도 자기의 의사를 두려움없이 표현하고 온전히 그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아는 성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려면 우선 나자신부터도 Peer Pressure 에 굴하지 않는 본을 보여줘야 할 것이기에 엄마로서 나의 마음도 가볍지가 않다. 이래저래 엄마 노릇이란 갈수록 쉽지가 않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햇님한나
    '10.2.19 1:12 PM

    설잘보내셨나요?참..계신곳은 구정을 안보내겠죠~~이제 5살된 딸아이가 워낙 친구를 좋아하고 친구들에 휩쓸리는것같아 걱정이 많은데...글보고 생각또 생각하다 가네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 2. sugar
    '10.2.22 10:28 AM

    peer pressure는 중고생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 싶어요.
    예전에 읽었던 글 중에서 인상깊었던 실험 결과가 있었어요.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쪽은 바운더리를 주고 놀게 하고 한 그룹은 바운더리없이 그냥 자유롭게 놀게 했는데 바운더리를 주고 놀게 한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 다니며 노는 반면 바운더리가 없는 아이들은 불안해 하며 오히려 행동 반경이 제한되었다는 실험 결과를 토대로
    부모의 육아도 '완전한 자유 방임'보다는 '일정한 규율과 규칙'이 있어야 아이들이 안심하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때로는 아이들이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을 받을까봐 속마음과는 다르게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때 부모님의 규율과 규칙, 자신의 신앙을 근거로 거절하면 또래 집단으로부터 '겁쟁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이유도 없고 설령 붙더라도 그것에 대해 초연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가지게 돼며 아이들도 그 안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어 안심하게 된다고요.
    동경미님의 글을 읽으니 그 글이 생각이 나요.
    저는 요즈음 아이와 상대방이 마음 상하지 않게 잘 거절하는 법을 연습하고 있어요.

    공부하시느라 힘드시죠?
    글이 띄엄띄엄 올라오는 것을 보니 많이 바쁘신가봐요.
    머리도 팽팽 돌아가고 체력도 짱짱한 젊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아니 오히려 나이가 주는 연륜과 의연함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으로 주위의 젊은이들을 평정하였을 듯 싶은 동경미님 건승하십시요.
    나이가 들어 하는 도전은 비단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잘 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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