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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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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밍크 코트

| 조회수 : 3,478 | 추천수 : 159
작성일 : 2009-10-26 01:01:28
결혼할 때 남편에게 내가 예단으로 해 갈 것들의 목록을 적어오라고 했었다. 남편이나 나나 양쪽 부모님의 도움에 의지하지 말고 우리의 능력으로 준비하자는 마음이었기에 모든 결혼 준비가 간소했다. 그래도 예단만은 신경을 쓰고 싶어서 남편이 결정하지 말고 시어머니와 손윗 시누이들에게 자세히 물어서 적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무 것도 필요없고 몸만 오면 된다던 남편이 며칠 후 쭈삣거리면서 예단의 목록들을 꺼내놓는데 시어머니의 항목에 밍크 코트가 들어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았더니 어머니는 그럴 마음이 없으신데 손위의 누나들이 며느리에게도 못 받으시면 내 돈 주고 사게 되지는 않는다며 적극 권해서 들어간 항목이라고 진땀을 빼면서 설명을 했다. 예단은 꼭 시어른들의 마음에 들게 다 해드리고 싶다던 처음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일년 내내 한번도 영하로 내려가지도 않고 눈도 안오는 곳에 살면서 밍크 코트가 왜 필요하다고 이런 데에 돈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상했다.  

안그래도 모아놓은 결혼자금이 택도 없이 부족한 상황인데 생각지도 않은 지출이 늘어나니 걱정이 앞섰다. 나의 마음을 읽은 남편이 시댁에는 말하지 말라면서 자기 돈으로 신혼 가구를 마련하고 내가 가구 비용으로 쓰려던 돈을 어머니를 위해 쓰면 안되겠냐고 했다. 그래도 기왕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을 해드리기로 작정했으니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을 하면서 그 방면으로 일하던 친구의 도움으로 좋은 품질의 밍크 코트를 좋은 가격에 사서 드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록 나의 예단이었던 어머니의 밍크 코트는 한번도 바깥 구경을 못해본 채 어머니의 옷장에서만 지내고 있는 것이 나는 늘 마음에 걸렸다. 내 딴에는 큰 돈을 주고 사드린 것인데 한번도 입으실 기회가 없이 지나가는 게 사뭇 서운하기도 했고, 그럴 바에는 자주 입으실 옷 몇 벌을 해드리는 것이 나을 뻔 했다는 얘기도 남편에게 하곤 했다. 선물이라는 것이 주고 나면 상대가 그것으로 무엇을 하건 어떻게 쓰건 왈가왈부할 것이 아닌데, 아마도 없는 형편에 마련한 밍크 코트라는 호화 (?)예단에 대한 나의 상한 마음이 쉽게 없어지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2003년도에 결혼 10년 만에 남편 사업 때문에 온 가족이 한국으로 다 나가서 4년을 그곳에 살면서 사업부진으로 어려운 시간을 겪게 되었고, 나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즐기면서 일하는 삶에서 벗어나 나라도 벌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워진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정신없이 일을 찾아야만 되었다.  한국의 물정은 알지도 못하고 아무리 사업이 기울어진다고 해도 우리가 미국에서 여유롭게 살던 수준이 최소한 유지가 될 것이라는 잘못된 계산만 가지고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집을 얻었다. 가서 보니 서울에서도 부유층들이 모여사는 동네라서 물가는 사정없이 비쌌고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게 만드는 지역이었다. 10 년을 미국을 떠나 있다가 돌아오니 아무리 일을 찾으려고 해도 만만치가 않았는데, 미국에서 공부를 한 게 있다는 이유로 살기가 넉넉한 친구들의 소개로 동네에서 어린 아이들의 영어를 가르치면서 우선 수입을 만들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두고 나갔다 오는 것이 아예 법으로 금지가 되어있으니 어디를 가도 고만고만한 아이들 넷을 모두 데리고 나가야 했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그런 법이 없기도 할 뿐더러이 집 저 집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니는 일에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 두 돌박이 막내는 어린이집에, 9살, 7살, 5살의 아이들은 집에 두고 일을 하러 가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집집마다 다니다 보면 부촌이다 보니 동네 과일가게에서는 잘 보기도 어렵고 있다 해도 당시 나의 형편으로는 선뜻 집어 들게 되지도 않는 고급 과일들을 선생님이라고 내오곤 했다. 내온 성의를 생각해서 한 조각씩 집어들다 보면 우리 아이들도 이걸 갖다 주면 얼마나 잘 먹을까 하는 생각에 가끔은 주책없이 눈물이 핑 돌곤 했다. 미국에 있을 때에는 모든 음식이 싸니 과일은 넘쳐서 썩어 내가는 것이 더 많았던 살림이었는데, 한순간에 무너져서 이제는 과일 한 조각도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서 사먹여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는 생각에 자괴감까지 들기도 했다. 내가 먹느니 차라리 싸가지고 가서 우리 아이들을 먹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던 것을 학부모들은 짐작도 못했을 것이었다. 아이 넷에 외국 생활 하다가 들어온 교포 가정이니 누구 하나 우리 가정이 겪고 있던 경제적 위기는 상상도 못했다.

엄마가 남의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리품을 팔다 들어오면 하루종일 눈이 빠지게 엄마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TV 앞에서 잠이 든 셋째가 눈에 들어오고, 한글은 한 자도 모르면서 한국 학교에 다니느라 힘이 들고 지친 큰 아이와 둘째가 쏜살같이 달려와 품에 안겼다. 한 봉지에 만 원이라는 사과같은 흔하고 비교적 싼 과일 한봉지만 들고 들어가도 아이들의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걸리곤 했다. 엄마는 고급 과일만 먹고 다니면서 막상 내 아이들은 사과 한조각도 큰 맘을 먹어야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남편이 한없이 미워지기도 했다.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남편의 사업과 식비로 쓰면 다 없어지는 나의 과외 클래스 수입으로 여섯 식구가 처음 두 해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지금도 그때 생각은 하기도 싫을 정도이다. 두 해가 지나고 우연한 기회에 미국, 영국, 그리고 캐나다에 있던 남편 사업과 관련된 친구들과 연이 닿아서 그 사람들이 전라도 모 시에 투자를 해서 제조회사를 설립하는 데에 도움을 줄 기회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지방 자치 단체들 사이에서 해외투자유치가 유행병처럼 번질 때였기에 나에게도 그 도시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내가 그 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긴 가뭄에 비가 내려 다소 해갈이 되듯이 남편의 사업은 계속 불안정했지만 그래도 내가 고정 수입이 생기게 되니 그래도 숨통이 트이는 것같았다.

한국에 와서 줄곧 힘든 생활을 하느라고 걱정 끼쳐드릴 것이 염려가 되어 연락도 자주 못드렸던 시어머니를 취직 후 첫 출장에서 만나뵈었다. 두 해 전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철없이 떠난 며느리와 막내 아들 내외를 떠나보내면서 우리가 탄 차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시던 시어머니가 만나니 눈물이 앞섰다.
"얼굴이 왜 그러니? 왜 그렇게 많이 상했니? 보통 힘이 들었던 게 아닌가 보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어머니가 물으시자 지난 세월이 다 올라와서 목이 메었다. 이런 저런 얘기로 그간의 얘기들을 나누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방에 들어가셔서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나오신다. 아이들 주실 장난감인가 싶어 열어보니 내가 해드린 밍크 코트가 들어있었다.
"얘, 너한테 받은 이 코트 한 번 입어보고 못 입었다. 내가 앞으로도 날씨가 따스한 곳에 사니 입을 일이 없을 거다. 그러니까 네가 서울로 가져가서 회사 다니면서 입어라. 명색이 회사의 임원이라면서 옷을 잘 입어야 남들이 여자라고 함부로 보지 않을 거다. 아니면 가지고 있다가 정 살림 급할 때 팔아서 생활비로라도 쓰거라. 아범이 그렇게 고전을 하니 네가 얼마나 힘들겠니..."
세월이 지나면서 생겨난 어머니와의 크고 작은 갈등들, 예단으로 인해 상해있던 마음, 그리고 나의 한없이 좁기만 한 마음이 드러내보여지는 것같아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어차피 어머니를 드린 것이니 서울 아주버님 댁에 가실 때 입으시면 된다고 한사코 거절을 했지만 일정을 마치고 서울행 비행기를 타려는 나의 짐에는 어머니의 밍크 코트가 함께 들어있었다.

어머니가 주신 밍크 코트를 나는 감히 팔아서 살림에 보탤 용기도 없고 선뜻 입고 다닐 마음도 안생겨서 나역시도 어머니처럼 옷장에만 걸어놓은 채 두었다. 주머니는 늘 텅 비어있는데 옷만 밍크 코트를 입으려니 겸연쩍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해부턴가 내 마음이 울적해질 때면 한번씩 꺼내서 입어보곤 한다. 이제는 다소 구식이 되어버린 디자인이라 처음 살 때만큼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당신의 아들보다 더 사랑해주시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털 한 올 한 올마다 깃들여있는 것같아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남편은 리폼을 해보면 어떠냐고 하지만 나는 이 모습 이대로 고치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하면서 어머니 사랑을 잊고 며느리의 마음이 솟아오를 때마다 어머니의 코트를 입어볼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영원히 내리 사랑이라고 한다. 자식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위로 돌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얼마쯤 더 보태어 자신의 자식들에게 내려 보내는 일방통행의 사랑인 것이다. 어머니와 나의 고부 간의 인연도 올해로 열 일곱 해가 되어간다. 시댁이라는 선입관과 며느리라는 고정관념도 세월이 가고 갖은 고난의 물결이 합쳐지면서 꼭같은 여자라는 고리로 연결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도 나도 네 아이를 기르면서 험한 세월과 맞서 싸우면서 아이들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는 꼭같은 마음의 무게를 가지고 살아가는 여자들이기에 한번도 말해보지 못한 사랑의 말을 어머니께 꼭 드리고 싶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며느리가 일어섰습니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kleome
    '09.10.26 8:15 AM

    저도 올해 며느리를 보았는데
    좋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밍크코트 이야기 감동받고 마음에 담습니다

  • 2. 동경미
    '09.10.26 10:36 AM

    Kleome 님은 이미 좋은 시어머니실 거에요.
    아이들을 기르면서 우선 나부터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보여주지 않으면 교육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해요.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만큼 어려운 고부관계들도 많이 보지만 그래도 잘 지나가야 아이들에게도 좋은 롤모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기르는 부모는 무엇 하나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없게 늘 조심하는 것이 내 아이를 위한 좋은 유산이 되지요.

  • 3. 예쁜꽃님
    '09.10.29 9:31 PM

    저도 좋은 시어머니가 되고싶네요
    허나 며늘님이 날 좋아 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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