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30년 +a
일찍 결혼해서 애들 다 사회나가 독립하고 50대 후반
20세기 돈없는 미국 유학생활 시절엔 판자촌같은 대학 기숙사에서 아이 낳고 키우면서 네식구 튼튼한 종이 박스 엎어놓고 밥상이라고 밥차려먹고(물론 나중엔 아는 집이 쓰던 식탁 주고 감) 침대도 다른 유학생들 쓰던거 10불 주고 사서 낑낑대며 잔디밭 가로질러 기숙사까지 직접 나르고 책상은 5불주고 다리가 건들건들한 거 가져오고 바지 사면 제가 다 손바느질로 줄여입고 그랬는데... (재활용의 끝판왕인 기숙사 가구들... 부서져서 못 쓸 때까지 유학생들 사이에서 돌고도는)
저나 남편이나 결혼하고 백화점 가본게 다섯 손가락에 꼽고 애들 대학때 까지도 100불은 큰돈이라고 벌벌 떨었는데 지금 부자가 된 건 아니지만 남편이 그동안 제가 뭘 사달라고 한 것도 없고 애들 키우느라 수고했다며 갑자기 백화점에서 막 사라고 ㅎㅎ
평소 명품이나 반지 같은거 관심도 없고 하지도 않고 목걸이도 어릴 때 남편이 사준거 평생 빼지도 않고 걸고 다녔는데 막상 가서 보니 그야말로 반짝반짝 이쁜 것들이 눈에 들어와 기냥 질렀어요
눈앞에 다이아몬드 광채가 자기들끼리 칼싸움하듯 파파박 쉴새없이 반짝반짝거리는데 정신이 혼미...
명품 매장도 처음 가봤는데 친절하게 안내하면서 매장 벽을 미는데 알고보니 문 ㅎㅎ
그 안에는 외국 잡지에 나오는듯 넘 이쁘고 멋지게 꾸며놓은 조용한 방이 있어서 그 안에서 이것저것 착용해보고 가볍게 잡담도 하면서 기분좋게 골랐어요 (난생 처음 놓인 상황인데 심심하면 놀러오는 사람처럼 넘 자연스러운 저를 보고 제가 놀람 ㅎㅎ)
나중에 음료랑 초콜렛이랑 몇가지 선물이라며 챙겨서 예쁜 가방에 따로 넣어주고...
그래서 반지, 목걸이 사고 그 옆 매장가서 가방 하나 사서 나오니 남편 하는 말이 '내 차 한대 값이네 ㅎㅎ 하.지.만. 당신은 차가 없으니까 이걸로 퉁!^^"이라고 하네요 (다리 튼튼하고 걷는 거 좋아하고 운전 극혐인 저는 뚜벅이 라이프!)
이런 소비는 평생 안하던 거라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겠지만 예전같으면 꿈도 못꿀 큰 돈을 하루만에 써버리니 현실같기도 비현실같기도...
그런데 오늘도 남편이 살거 있으면 더 사라고 하고, 할 줄 아는 표현이 '좋아'가 전부인 사람이 옆에 와서는 제가 낀 반지랑 목걸이보고 정말 예쁘고 별처럼 반짝거리는게 잘 어울린다고, 제가 좋아하니 자기도 좋다며 머리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말만 많아진줄 알았던 남편의 갱년기가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나 싶기도 하고 (아 둘 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고 로또맞은 것도 아니고 집순이집돌이라 회사 말고는 집에서만 노는 부부예요^^)
어쨌든 살다보니 하늘이 무너지는 일도 있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일도 있고 또 이런 일도 있네요
그런데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것 보다는 옆에 있는 짝꿍과 자잘하게 웃고 별 일 없이 하루하루 잔잔하게 지나가는게 제 정신건강엔 더 좋은 것 같아요
반지 목걸이는 없어도 살지만 짝꿍은 아니되오니 말이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