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짜장면은 어때?
- 나 짜장면 안 먹잖아.
- 어, 그래? 저번에는 먹었잖아.
- 나 그때 잡채밥 먹었거덩?
매번 이런 식이랍니다.-_- 그런데, 유난히 좋아하는 면요리가 하나 있어요. 회냉면. 그냥 비빔냉면은 안되고 반드시 회냉면이어야 해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구반포 함흥냉면이나, 뉴코아 지하 배나무집에서 늘 회냉면과 물냉면을 하나씩 시켜 나눠 먹던 추억 때문에 물냉면이 옵션으로 따라주면 금상 첨화죠.
옥류담의 함흥회냉면.
일산으로 이사오니 회냉면을 먹을만한 곳이 없어요. 회냉면을 좋아하지만 맛에 그닥 까탈스럽진 않거든요. 뜨거운 육수, 꼬들꼬들 씹히는 회무침, 새콤 달콤한 양념장이면 일단은 합격이에요. 여기서 육수에서 조미료 맛이 강하게 난다거나, 면발이 너무 불었거나 혹은 질기거나, 양념 다대기에서 역시 조미료 맛이 강하게 나면 슬프지만 그래도 회냉면이니까 봐주죠.
웬만큼 슬퍼도 봐줄텐데 회냉면 먹을 곳이 정말 없어요. 여의도에서는 노총빌딩 '횡성한우'나 '대도회관'에서 그럭저럭 회냉면 맛을 볼수 있었는데, 일산은 고기집에서도 회냉면은 안 팔더라구요. 칡냉면 집이 더러있는데, 시커면 칡냉면은 아예 싫어해서 그건 패스.
냉면에 곁들여 먹는 정갈한 김치들. 대표적인 평양음식인 백김치는
남북 교류시 옥류관이 자주 나오면서부터 냉면집 디폴트 반찬이 되었다죠.
찾다 찾다 청석골이라는 대형 고깃집에서 회냉면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여긴 뜨거운 육수를 안주고, 조미료 맛이 강한 찬 육수를 주더라구요. 두어번 참고 먹었지만, 뜨거운 육수로 매운기를 달래가며 먹는 그 맛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빈대떡이나 만두를 곁들여서 면이 주는 공복감을 해소하고, 매운 맛도 중화시켜줘요.
옥류담의 100% 녹두 빈대떡. 음, 그래도 제가 한 게 훨 맛있어요...^^;
지난 설날 전 토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입맛이 없어 점심도 거르고 애매한 시간에 설날 선물 사러 이마트를 찾았다. 우리 집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넘는 거리인데, 회사에서 나온 상품권이 신세계인지라 현금 굳힐 겸 선물 사러 이마트까지 갔죠. 이마트에 푸드코트가 있을테니 거기서 회냉면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같이 먹어주겠다는 남편과 함께 카트를 질질 끌고 갔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 이마트에는 푸드코트가 없다는 거예요!! 공사중이라 밖에 나가서 먹어야 한다네요. 당황해서 이마트 주변을 살피니 푸드코트는 고사하고 제대로 밥 먹을 데도 없어요. 그때가 오후 3시. 6시에 인사동 산삼 전문점에서 식사 약속이 있는 남편을 마냥 붙들고 있을 수도 없고, 어째요, 그냥 보내야죠. 인사도 할겸 산삼 먹으러 같이 가자고 하나, 남편의 인사동 어르신들은 함부로 뵙기는 좀 부담스러워요.
겉은 바삭하게 잘 구웠는데, 속이 별로 알차지 않아요.
다음엔 꿩만두를 먹어 보려구요.
하루 종일 굶은 채로 이마트의 협소한 공간을 무질서하고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무거운 선물을 4상자나 사서 나오니 5시가 가까워요. 삐걱거리는 카트를 낑낑대며 끌고 요기거리 할 곳을 찾았으나 마두역이 지나도록 혼자 들어가 먹을 만한 곳이 없네요.
결국 포장마차 떡볶이나 먹을 셈으로 제일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으로 들어가 떡볶이 1인분을 달라고 했더니, 두 사람 서있을 자리를 혼자 채우는 게 못마땅 했던지, 아줌마가.
- 그 카트 때문에 사람들 못 들어오는데...
이러시는 거예요. 알았다며 돌아나오는데, 눈물이 핑... 그 옆 한산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젊은 부부의 포장마차에 들어가 떡볶이를 시켰는데, 맛도 없고, 도저히 안먹혀 반도 채 못 먹고 터벅터벅 카트를 끌고 돌아왔어요. (산삼코스를 마다하고, 떡볶이가 웬말이래요. 흑)
부디 인심 좋은 사람이 음식도 맛있게 만들고, 돈도 잘 버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 후로 이마트는 저에게 버림 받았어요. 푸드코트도, 회냉면도 없는 못난 일산 이마트...
면을 직접 뽑는데 꽤 자부심이 있는 듯. 나오면서 "정말 맛있어요" 그랬더니
아주 뿌듯해 하시면서 "면을 직접 뽑거든요."하더라구요.^^
석달 넘도록 그렇게 회냉면을 찾아 헤매다가 지난 토요일 밤,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일산에 '옥류담'이라는 냉면전문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것도!! 호수공원 근처. 좀 멀긴 해도 우리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요!
당장 다음날 점심 옥류담을 찾았죠.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나, 산책 삼아 호수공원 한바퀴씩 돌던 거에 비하면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요. (호수공원 제2주차장 맞은편 대우 무슨 리브르 건물에 있어요.)
남편이 일산에 살면서 식도락을 즐기는 회사 선배 한테, 일산에 회냉면 파는 집 있냐고 물었는데, 단호하게 없다고 하더래요. 그말 듣고 급 좌절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선배 '옥류담' 건물 오피스텔에 살아요. 뭐냐고요~
가격은 그닥 착하지 않아요. 평양냉면전문집인데 함흥냉면도 같이 있는 게 특이 하죠.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의 차이는 함흥냉면은 지리상 바다가 가깝고 추운 곳이라 홍어나 명태 같은 회무침을 넣은, 입에 불이 나도록 매운 게 특징이고, 평양 냉면은 차가운 동치미 국물에 얼음 동동 띄운 물냉면이 주력이에요.
함흥냉면은 감자나 고구마 전분을 넣어 면발이 쫄깃하고, 평양냉면은 메일로 면발을 뽑기 때문에 잘 끊어지고 굵어요. 그런데, 옥류담, 면발이 제대로예요. 함흥 회냉면과 평양 물냉면이 면발만으로도 확연히 구분되거든요.
뜨거운 육수. 육수를 마셔보면 그 집이 제대로 된 냉면집인지, 무늬만 냉면집인지 알수 있어요. 넉잔도 넘게 마셨는데도, 텁텁함이 남지 않을 만큼 조미료 없이 제대로 우려낸 육수네요.
우와... 진짜 맛있었어요. 얼마나 찾아 헤맸던 회냉면이었던지...
그닥 자주 가게 될 것 같진 않아요. 남편이 바빠서 일산 가면 주로 혼자 먹게 되는데, 혼자서 사람 북적대는 냉면집에 앉아 기어이 회냉면을 먹을 만큼 먹는 것에 연연하는 타입도 아니고. 다만, 먹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가서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알아보니 일산은 냉면 전문점이 취약하더군요. 백석동인가 있는 모란각과 제가 소개해드린 옥류담 정도가 그나마 맛집으로 유명하더라구요. 입맛에 안 맞으실지 몰라도 고깃집에서 딸려 나오는 냉면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니까 냉면 좋아하시는 분 함 가세요~
장항동이나 마두역 근처 맛집 있음 추천 좀 해주세요~ 웨스턴돔이나 라페스타면 더 좋구요. ^^
그리고, 일산으로 이사오니 주말이나 퇴근 후에 맛집들이나 술집 보면 막 들어가고 싶어요. 여의도 살때는 직장도 여의도라 집 주변 음식점이 죄다 회식 장소여서 별루 안 땡겼거든요.
같이 이쁜 맛집 찾아 다니거나 술 한잔 기울일 동네 친구가 있음 좋겠어요. 주말에 같이 집에서 베이킹도 하구요. 아기가 없으니 이웃 주민 사귀기도 힘드네요. 일산 장항동이나 근처에 사시는 분들 우리 친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