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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여행 후기

不자유 조회수 : 2,041
작성일 : 2010-10-26 11:33:11
100 여 일을 ...
일요일, 여름 휴가 포함해도 단 하루의 쉬는 날도 없이 달려온 끝에...
드디어 열흘간의 자유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어찌 제가 견디었는지, 저 스스로도 놀랍기만 합니다.
하루 12시간 강의, 장거리 이동의 강행군까지 감행하던 시즌...
작년까지 한번도 부모님 수술실 앞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었건만
시어머니 뇌 수술 시간에도...
120명 모인 강의실에서,
전기 중단으로 에어컨도 마이크도 없이 3시간 연강을 했고...
이른 새벽 시어머니 임종 징후가 느껴진다는 문자를 받고도
교실에 모인 수험생들 앞에서 내색 없이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연강을 해야 하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시어머니 임종을 하고, 초상을 치르고,
5일간 초상을 치르는 동안 펑크난 9개의 수업 보강을 잡고 채워가면서
강의실에 서면 절로 신바람이 나던 저는 온데 간데 없고
서서히 고갈되어 가는 저 자신을 감당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2개월 후면 나이 마흔...
어린 시절부터 참 다른 친구들에 비해 고되다면 고된 일상을 견뎌왔지만
정말 올 여름만큼, 벅차고,  아프고, 서러운 시간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끝에 온 달콤한 1주일간의 휴식...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시간인데...생각만큼 즐거운 일이 아니더군요.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두뇌...
(연세대 시험을 치른 애제자 하나가...
선생님 지난 번에 토론한 죽음..그거 주제로 나왔어요~ 하고 전화를 해도
우리가 언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니? 할 정도로
뇌가 텅텅 비어버린 듯한 공황 상태)

무더위, 태풍 아랑곳 않고 돌아다니면서, 초상을 치르느라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몸은
40을 앞둔 나이와 맞물려 너무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아이들 셋을 자연분만하면서, 소리 한번 안 지른 제가
참을 수 없는 아픔 때문에 신음을 하며 잠들게 될 줄은
저 자신도 몰랐습니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14년 제 결혼 생활의 절반이었던 시어머님
모녀 지간보다 더한 애증의 관계로 끝없이 소통하던 그 분이
무의식 상태로 12개월간 장기 입원하는 동안
병원비 염려 핑계로 살뜰히 다가가 말 걸어 드리지 못한 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드린 것...
장례를 치르고, 유산을 정리하고 제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느낀
정말 그들이 남편과, 고인과 피를 나눈 사람들인가 하는 환멸감...
그들과 분리되고 싶어서 뜻대로들 하시라 하고 소식을 끊고 살아온 몇 개월
그 모든 기억과 감정들이 뒤엉켜
내가 그간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그분 돌아가시기 전에는
형제들 화합하는 모습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막내가 지지 않아도 되는 짐 자처해 지는 남편 뒤에서
묵묵히 손잡고 걸어왔던 10여 년...
그 시간들이 참 허무하고 괴로웠습니다.

결국, 작년에 아버지를 잃고, 올해 어머니를 잃어 고아가 된 불쌍한 남편에게
내 인생이 이렇게 고단해진 것은 모두 당신과 결혼한 탓이다.
예쁘고 고운 나이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죽어라 벌어 병원비, 생활비 감당하면서...두 어른 병수발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억울하다...
울면서 못되게 내뱉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어찌 해 주면 좋겠느냐는 남편의 물음에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전면 부정이다.
나는 모든 것을 당신을 만나기 이전, 그 원점으로 되돌려 놓고
나이 마흔...더 늦기 전에
나만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마구마구 퍼붓고 말았습니다.
스물 여섯, 그 나이에...결혼하면 직장 그만 두고
하고 싶은 공부하고 글 쓰게 해주겠다 하지 않았냐고...
울고, 소리 치고, 화를 내고...모두 퍼부어댔습니다.
나이 차이 많이 난다 하지만, 불같은 성격의 남편...
제가 퍼붓는 폭언을 묵묵히 듣고 나서
말없이 손을 잡고 나가서 등산화 한 켤레를 사주었습니다.

당신에게는 생각할 시간과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
돌아오고 싶어질 때까지 마음대로 다니다 오라고...
그 길로 기차 역까지 배웅해 주었습니다.

............................
자유...
일과 가정에서 벗어나 , 나 혼자 마음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
그 꿈 같은 자유의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막막했습니다.
자유 시간에 부자유한 나 자신이 참 당황스럽더군요.
무작정 진영행 기차를 타고, 봉하에 들렀습니다.
해진 후의 봉하마을, 길에는 오가는 사람이 잘 눈에 띄지 않았고...
어둠 속 그분 계신 곳도 어둡고 쌀쌀해
차마 가까이 가기 마음 아파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막걸리 한잔 하고 진영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한숨 자고 일어난 탓일까...
봉하의 아침은 조금 더 희망차게 보였습니다.
얼마간 서 있었을까...
지나가는 이에게 진영 근처에 봉하 마을 이외에 볼 만한 것이 있느냐 물으니
철새 도래지라는 주남 저수지를 알려주더군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남 저수지로 갔습니다.
가을이라 그런가, 철새들을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저수지 주변 억새밭 길을 걸으면서...
새들이 앉았다 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쓸쓸한 정경이 나이 40을 앞둔 제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쯤 되니 다시 온몸의 통증이 심해지더군요.
다시 누군가에게, 이 근처에 쉴 만한 휴양지가 있느냐 물으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온천이 있다 하더군요.
무작정 찾아간 온천 마을...북면 온천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모처럼 편안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온천욕을 즐기기도 하고...
허기 지면 나와서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잔 걸치기도 하고...
남편이 사준 등산화를 신고 뒷산을 오르기도 하고...
다시 온천욕을 하고 낮잠을 자다가
감 나무가 있는 시골 집들을 두리번 두리번 구경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심신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온천에서 쉰 지 사흘째..
문득 보고 싶어지는 막둥이...
막둥이가 좋아하는 호박 볶음을 하겠다고
크고 큰 호박을 돈 천원에 사고
고추 천원어치를 달라 하니...
시골의 할머니, 텃밭에서 따온 것이라며
봉지 한 가득 고추를 담고 또 담습니다.

단 돈 2천어치 시장을 봐서
고속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늦은 밤 그 길 끝 기차역에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일간의 자유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가족의 중심인 주부, 자식을 둔 맞벌이 주부의 삶
그 끝도 없는 의무들은 때로는 나를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프게 만들지만
그 여행의 끝에서 다시 일상을 껴안을 만한 기운을 북돋워주는 힘 역시
가족...그 가족에게서 비롯된다는 것...
나이 마흔에 얻은 교훈 치고는 참 단순한 진리 같습니다.

......................

열흘 간의 휴가를 마치고
다시 오늘부터 출근을 합니다.
1월 중순까지...다시 시즌...
또 어마어마한 일상들이 나를 뒤흔들겠지만
몇 개월쯤은 거뜬히 날 만큼 충전되어 있으니
힘 있게...나가봐야겠지요...

지난번 근황을 올린 글에...
건강 조심하라는 언니들 댓글이 많았는데
정말...정말...아플 때마다 그 댓글들이 생각 났었습니다.
많이 앓았고...잘 쉬었고...잘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 나갑니다.
쉬는 동안 쓸만한 글 한 줄 남기지 못한 불량 회원이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그 건강에 대한 염려들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은 탓에...정말 무너질 뻔 했습니다.
앞으로는 82 선배님들 말씀 잘 들어야겠어요.)
우선, 건강하고 힘 있게 제 일상을 복구한 뒤
명랑한 이웃의 모습으로 다시 자게로 돌아오겠습니다.
저또한 82의 누군가에게 쓸만한 조언을 할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심신이 되어 곧 돌아올게요.^^

그 동안 모두들...건강하고 풍요로운 가을날 되시길 빕니다.
IP : 122.128.xxx.72
2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에고..
    '10.10.26 11:36 AM (211.196.xxx.200)

    다음에 또 답답해지시면, 서울로 오세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묵묵히 옆에서 같이 지내겠습니다.

  • 2. 이제..
    '10.10.26 11:37 AM (112.170.xxx.83)

    행복하시면 되지요.
    건강하시고 내내 행복하세요~

  • 3. 음..
    '10.10.26 11:40 AM (122.32.xxx.10)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묵묵히 옆에서 같이 지내시겠다는 에고..님 옆에서
    저도 함께 할께요. 혼자 하는 여행도 좋지만, 사람이 그리우면 알려주세요...

  • 4. 잠시
    '10.10.26 11:44 AM (118.46.xxx.98)

    옆에 계신다면 아무말 없이 꼭 안아
    들이고 싶네요...

  • 5. -.-
    '10.10.26 11:50 AM (211.37.xxx.189)

    많이 힘드셨나봐요..
    어두운 날 있으면 밝은 날도 있겠죠. 힘내세요!

  • 6. ...
    '10.10.26 11:52 AM (125.176.xxx.2)

    정말 수고많으셨겠네요.
    앞으로 늘 건강하고 행복하실꺼에요.^^
    화이팅!!!

  • 7. 님..
    '10.10.26 12:25 PM (59.12.xxx.154)

    저의 삶과 비슷하여 읽으면서 결국 눈물 쏟았습니다. 예쁜 세 따님과 훌륭한 인품의 남편 곁에 계시잖아요. 힘내서 살다보면 웃으며 지금을 추억할 좋은날이 올거라고 믿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 8. ~~
    '10.10.26 12:48 PM (112.168.xxx.58)

    다시 힘 내시고 남아있는 날들을 위해 열심히 지금 처럼 열심히 살아요.

  • 9.
    '10.10.26 1:12 PM (118.41.xxx.204)

    님 혹시나 하고 상담 문의드려요
    심신이 피곤하실텐데 저는 또 저의 고민으로 님께
    지푸라기 잡네요 chae369@hanmail.net

  • 10. ^*^..
    '10.10.26 1:57 PM (218.148.xxx.93)

    이맘때 쯤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사람..부자유님..!!그간 많은일 겪으신거 이렇게 토해내 주시니,앞으로는 편안하게 또 일상으로 돌아갈수 있을겁니다...그동안 애 많이 쓰셨고,수고하셨어요..자게에서의 앞으로 활약 기대할께요.^*^

  • 11. phua
    '10.10.26 2:30 PM (218.52.xxx.110)

    수험생 엄마들의 푸념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 부자유님이 더욱 바빠지는 때가 왔구나... 했는데,
    여행을 다녀 오셨네요?
    이렇게라도 마음 한 자락을 풀어 놓으시는 글에
    공감의 댓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얼굴 한 번 봐야 할텐데...

  • 12. ..
    '10.10.26 2:54 PM (211.182.xxx.129)

    작년 부자유님께 도움 청했었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많은 분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시겠지요/
    힘내시고, 건강도 돌보시기 바래요.

  • 13. 좋은사람!
    '10.10.26 3:31 PM (183.101.xxx.19)

    에고...그 가슴앓이를 이겨낸다고 얼마나 힘드셨을까요..저도 눈물이 나네요...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몇번은 크게 앓고 지나가야 하는 시련 같기도 해요...
    바닥끝까지 무너질것 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 그래도 앓고 나면
    제가 서야할곳에 내자식들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나게 되더라구요.
    힘내세요~~

  • 14. 토닥토닥
    '10.10.26 3:41 PM (183.100.xxx.68)

    힘내세요.
    복잡할 때는 무심해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훗날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하시길 좋은 일 생기시길.. 빌어드려요. ^^

    새벽의 봉하... 저도 가고싶어지네요...
    그분이 안개 속으로 걸어오실 것 같아요....

  • 15. 톡톡
    '10.10.26 4:01 PM (222.107.xxx.161)

    작게 두드리는 울림이 제 심장에 와 닿을땐 정말 큰 고통이 오기도 하지요.

    새벽 봉하 저두 가보고 싶네요.

  • 16. 반가워요
    '10.10.26 4:54 PM (222.98.xxx.45)

    아,부자유님글이 그리웠어요..
    많은 일상의부침이있었군요.
    글 중 시모님 가신뒤 가족들의 뿔뿔이 흩어짐...저 잘 압니다.
    사람은 큰일앞에 본성이나온다고
    저도 남편이 무너질대로무너지니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멀어지더군요.
    가족관계에 희생의자리는 결코 보답을 받지못하더군요.
    마지막까지 혜택만받으려는 사람들뿐이죠.

    현명한 부자유님이니 길을 잘 찾아가실거라믿어요.
    늘 건강조심하시구요.

  • 17. 그래도
    '10.10.26 7:33 PM (125.132.xxx.208)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오고나면 내삶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져서 견딜만해지더군요.
    님의 힘들고 황폐해졌던 심신이 어떠셨을런지가 느껴집니다.

    다른무엇보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혈연이라고 느낄려고 애쓰던 사람들에게서 받는 상처만큼 힘들고 아프게 다가오는 상처도 없더군요.
    항상 느끼는거지만 온전히 내가족들 위주로 생각하면서 다른가족들에 대한 생각은 좀 접어두시고 생활하고 사시길 바래요.

    앞으로도 꽤나 많은 시간이 힘들고 괴로우시겠지만 돌아가신 분들이 돌봐주실꺼라고 생각하심 맘이 많이 편해지실껍니다.
    그분들 가시는 그길에서 님에게 많이 고마워하셨을꺼예요....

    왜 사십고개가 그리 넘기가 힘든고개인건지 모르겠더군요.
    그리 힘들게 넘기신 그고개가 님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언덕길이셨을꺼예요.

    님의 충전과 다시금 올라올 글들을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힘내세요.

  • 18. ..
    '10.10.26 9:48 PM (114.205.xxx.109)

    내아이가 대학갈 나이가 아닌데도

    철만 되면 올라오는 질문들에

    정성껏 답해주시는 님에게서

    내 아이가 아닐지라도

    진심으로 감사했었습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조금만 이기적이게 사세요.

    건강 챙기시고, 참 멋진 분이세요....

  • 19. ,,,
    '10.10.27 1:24 AM (116.32.xxx.136)

    글 읽고 펑펑 울었습니다
    같이 휴식을 가진 듯한 글 감사합니다

    건강 챙기세요... 감사합니다

  • 20. 不자유
    '10.10.27 6:19 PM (122.128.xxx.72)

    118.41.214.xxx 님
    남겨주신 메일 주소로 메일 보냈습니다.
    댓글 확인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메일 보내주시면, 아는대로 답신 드릴게요.

    다른 댓글님들...따뜻한 위로 감사드립니다.

  • 21. *
    '10.10.29 8:23 AM (125.140.xxx.146)

    아이맡기고 강의나가던때가 생각나네요.
    직장이라서 아침이라서 눈물흘리면 안되는데...
    시댁도움은 거의 없고 생색만, 친정 이모들 여기저기 맡기다보니
    아이손잡고 뛰던 생각은 나는데 어디에 맡겼는지 생각안날때....
    수퍼우먼될래? 도중하차할래? 란 말이 귀에 맴돌고 하던때
    40줄 그때가 가장 힘든것같습니다.
    자신이 하던일과 현실을 모두 이루려고 하는 최고점이지요.
    부디 건강하셔야합니다.
    그것이 오래버틸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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