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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걸 다. ㅠㅠ) 성경 루카 복음 중 되찾은 아들의 비유대해 좀 알려주세요.
성경 귀절에서 자주 인용되는 마르코 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 가 잘 안 와닿아요.
둘째 아들은 제 몫의 재산을 가지고 가서 탕진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고 회개하고 후회했지요.
회개하며 아버지께 돌아와 본인이 죄인임을 고백하였고 아버지는 용서하시고 크게 기뻐하시며 잔치를
벌이지요.
이에 큰아들은 말하길 저는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고 단 한번도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았으나
친구들이랑 먹으라고 염소 한마리 안잡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주시는 군요. 라고 했지요.
그러자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었고 내것이 다 네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의 의미는 뭘까요?
1. 블루
'10.9.16 12:05 AM (122.40.xxx.2)저는 사실 기독교신자이지만 구약에는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데요..신학적 해석은 잘 모르지만 그저 제 생각에는..불신자거나 죄를 범한 기독교인도 회개를 하면..하나님은 더 환영을 하신다..그러니까 늦었다고 생각하지마라..그런 뜻이 아닐까요? 교회의 입장에서 그런 내용이 필요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2. 레미안
'10.9.16 12:05 AM (180.182.xxx.205)아버지는 여호와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첫째 아들은 거짓 그리스도교국을 말하구요. 그리스도 교국은 돌아온 동생을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여 하는데 욕심에 사로 잡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것입니다.
아버지가 한말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에 중점이 맞추어 져있습니다. 이이야기는 아버지와 둘째아들의 관계를 묘사하는데요, 잘못을 저질럿던 아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오면 얼마나 부모 마음이 다행스럽고 안심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배나 즐거워 하는것입니다.3. ..
'10.9.16 12:11 AM (61.79.xxx.38)큰 아들이 아버지 모시고 잘 했죠.
작은 아들은 집 나가서 돈 다 잃고 방탕하게 허송세월 하고 폐인됐잖아요.
그러나 부모 마음은 그렇잖아요?
그 손가락이 더 아픈걸..살아있다면 그 것 만으로도 좋잖아요.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새옷과 송아지를 잡고 대접하고 반기는 거잖아요.
이해하시죠.부모는 자식에겐 무한 사랑이고 또한 반성하고 돌아온 아들은 더욱 예쁜거잖아요.
형의 마음은 다를수 있죠.그러나 그 순간이니 형제라 잘 지내겠죠.4. 지난주
'10.9.16 12:14 AM (220.79.xxx.203)복음말씀이네요.
동생의 경우 잘못을 했지만 뉘우치고 아부지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거겠죠. 아버지도 묻지 않고 크게 환대해 주시구요. 예수님께서 안전한 아흔아홉마리 양보다 길 잃은 한마리 양을 찾아 나서신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죠.
반면 형은 이미 자신의 재산을 상속 받았고 아버지와 함께 했었는데, 아버지께서 동생을 환대하시는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죠. 자신이 가지고 누리고 있는것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할까요.
부족한 신앙으로, 탕자같은 나도 주님께 돌아가면 환대해주실거라는 희망을 갖게하는 비유인것 같아요.5. 마리아
'10.9.16 12:21 AM (121.168.xxx.57)그럼 큰아들 처럼 사는 것 보다는 작은아들처럼 살다 돌아 오는 게 더 환대 받을 일인가요?
또 70살 까지 방탕하게 살다가 71살에 회개해서 72살에 죽는 사람도
어려서부터 성경 말씀대로 평생 살다가 죽는 거랑 똑같은가요?6. 살면서
'10.9.16 12:27 AM (112.150.xxx.140)저도 늘 그 아들과 아버지가 그려진 이콘을 보면서... 그리고 경험하면서... 알겠된 것이..
진정한 용서(사랑)와 진정한 회개를 말함인 것 같아요..7. 깍뚜기
'10.9.16 12:28 AM (122.46.xxx.130)(딱히 종교생활을 하는 처지는 아니지만...)
윗분들 말씀대로, 아버지와 아들이 창조신과 피조물의 관계를 비유한다고 했을 때,
피조물은 창조주의 품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야 진정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탕자는 그 관계밖에서 헤매이다가 결국 자신의 돌아올 곳을 알고 집으로 들어오지요.
성서에서 예수가 집나간 한 마리 양을 걱정하고 찾아 헤매이는 것과 같이
험한 세상을 헤매이다가 비로소 참된 관계를 회복하게 되어서 애비 마음에 그리도 흐뭇하고
기뻤나봐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의 첫 대목이 떠오르는데요.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이교도(마니교)였고, 잘나가던 젊은 시절 제대로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어머니 모니카의 노력과 깨달음을 겪은 후 그리스도교로 회심을 한 돌아온 탕자였지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하기에 앞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다음처럼 말합니다.
"신이시여, 당신께서는 나를 당신에게로 향하도록(ad te) 만드셨나이다. 내 영혼은 당신 품에서(in te) 휴식을 취할 때까지 편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Fecisti nos ad Te et 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
밖에서 생고생하고 온 자식이 비로소 자신의 자리 (피조물인 인간이 깨달아야할 가장 본질적인 그 자리)로 돌아왔으니 애비는 무척이나 흐뭇했겠지요.
아무튼 '나는 누구인가'와 관련하여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그리스도교 믿음에서 가장 핵심 질문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주변을 보면 조금 비본질적인 이유로 교회와 성당을 오가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지만요 ^^;;;8. ...
'10.9.16 12:42 AM (112.161.xxx.129)탕자의 비유에서 핵심은 돌아온 아들이 아니라 환대하며 맞아준 아버지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9. 이 비유는
'10.9.16 1:19 AM (58.74.xxx.201)앞뒤문맥을 잘 보시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세리와 창녀들을 가까이하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당시의 종교인(바리새인들)에게 이 비유를 통해 깨닫기를 원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들,창기와 세리들과 옷깃스치는것도 싫어했는데 예수님은 죄인들과 같이 식탁교제를 하였습니다.
장남은 바리새인들을 의미합니다. 탕자를 맞아들이는(죄인들을 받아들이는)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는 아들이지요.
장남은 아버지의 명령에는 순종했으나 아버지의 마음은 모르는 자였습니다. 그는 "노하여" 동생에게 등을 돌리고 잔치석상에 가지 않으려고 하지요.
장남의 유혹중하나는 보상심리 라고 할수 있는데 자신의 수고와 순종을 아버지가 알아주지 못할때,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살찐 송아지가 건드려졌을대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장남이 정말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면, 아버지를 사랑하고 걱정했다면 동생을 찾아 떠날 정도의 수고를 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는 순종하는 아들이었지만 동생에 대한 사랑도 아버지에 대한 연민도 없는 차가운 사람이었지요.
장남의 정신적 상태가 바로 당시 종교인들의 상태였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탕자는 큰 아들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종교생활은 하지만) 큰 아들의 영적인 상태가 아닌지..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자가 되어야 할것입니다.10. 성경공부
'10.9.16 8:33 AM (222.112.xxx.48)시간되면 성서못자리 성경공부 시작해보세요
성경도 제대로 공부해야겠더라고요
이해안되는 부분도 종종 나오고
잘못하다보면 내 식으로 왜곡 해석하고 오류에 빠질 수 있어요
신부님들이 강의하신다니
검색해보세요
이번에 하려고했는데,,,시간이 안맞았네요
강의는 명동성당 옆 건물 가톨릭회관에서 하는걸로 알고있어요11. 개신교..
'10.9.16 1:21 PM (203.234.xxx.3)마르코복음은 아마 마가복음인 거 같고, 루카복음은 누가 복음인 거 같은데요...
개신교에서는 첫째아들은 흔들림없이 신앙생활과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대로 잘 해온 사람..
둘째아들은 탈선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입니다.
첫째아들보다 둘째아들이 더 좋냐, 착하냐 그건 아니고요.
하나님의 상(천국에서?)을 받는다고 치면 첫째아들이 둘째아들보다 훨씬 큰 상을 받죠.
하지만 탈선했다가 다시 뉘우치면서 돌아온다면, 그 기쁨은 부모로서 정말 크겠죠.
부모의 마음으로 생각해보시면 될 거에요.
첫째는 항상 의젓하고 공부잘하고 모범생이었고.
둘째는 사고뭉치여서 힘들게만 했는데..
둘째가 어느날 큰 사고 치더니 철이 들어서 부모님께 죄송하다 눈물흘리며 용서를 빌어요.
그때 그 기쁨은 어떨까요...?
그렇다고 해서 첫째아들은 제껴놓고 둘째아들이 더 이쁘냐, 그건 아니잖아요. 첫째아들은 항상 듬직하게 옆에 있어준 의지가 되는 사람이고...12. 다시 말해..
'10.9.16 1:30 PM (203.234.xxx.3)믿음 갖는 사람(저 포함)은 첫째아들과 같은 심정이 있을 겁니다.
나는 지금 신앙생활 잘 해왔는데 (십일조 따박 내고, 술도 안마시고, 오입도 안하고..)
개차반으로 지내던 놈이 어느날 갑자기 회개했다며 교회다니는데 그럼 이제 와서 나하고 저 놈이 같은 입장이라면 내 지난 금욕(?)의 생활이 억울해지는 거죠.
실컷 놀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면 되는 것을..
그런데.. 회개를 하면 용서는 받지만 상급이 다르다고 합니다. (천국의 얘기니까 물질적인 건 아니겠죠)
그리고 말로만 회개했다, 하나님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건 회개가 아닙니다.
자기가 회개했다, 죄를 자백했다고 하면 스스로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몸서리 치게 됩니다.
- 영화 밀양에서, 자기 아이를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러 갔더니 살인범이 해맑은 얼굴로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하죠? 이건.. 정말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살인범이 하나님께 용서받으려면 피해자인 아이 엄마에게 먼저 용서받아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저지른 죄 때문에 그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지 않고 말로는 회개했다, 교회 다닌다.. 이건 진정한 회개가 아니고, 하나님도 그건 알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