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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놈이 왜 좋아한다는 말도 못했냐고?

바보를그리며 조회수 : 389
작성일 : 2009-08-21 16:54:30
딴지 추모게시판에서 가져온 글 몇 편입니다.

그들에게는 늘 빚진 맘이었던 탓에
유난히 아프게 느껴지는 글들이네요....


........................



-비겁한 벙어리 지지자가 드리는 마지막 당부-


오늘같은 날,
당신의 업적에 대해, 당신이 이루신 것에 대해 장황하게 쓰지 않겠습니다.


그저, 당신에게 가장 크고 무거운 희망의 짐을 지우면서도
정작 당신을 지지하지 못했던 비겁한 나에 대해서만......쓰겠습니다.


그닥 잃을 만한 것도, 악착같이 지켜야할 무엇도 없으면서
한번도 당신을 지지한다, 입 밖으로 소리내어 본 적 없습니다.


그래도 그 양반 만한 인물이 이 땅에 어디 있느냐.
그 양반이 감내한 희생과, 눈물과, 고난으로 마땅히 덮어지고도 남거늘
그보다 못한 인물들의 태산만한 잘못을, 배신을, 불의를 그리들 쉽게 잊으면서
유독 당신의 티끌만한 흠은 신물나게 물어뜯고 할퀴는 굶주린 들개떼를 향해


어찌 이리 모진가, 어찌 이리도 평생을 부당한가.
흔해터진 인터넷 익명 댓글 하나, 남모르게라도 당신을 위해 달아본 적 없습니다.


인생의 거진 태반을 이 땅 서울에 살아오면서도...
혹여나 내 꼬리에 붙었을지 모를 지역의 굴레가 내 목에 칼처럼 씌워질까 두려워...
나는...비겁하게도 그랬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
97년 대선, 아무도 모르는 좁은 천막가리개 뒤에서 당신에게 표를 던진 거 하나로
나는 뻔뻔스럽게도 평생 당신에게 유세를 떨었습니다.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좀 더 잘하지. 더더 잘하지.


당신이 걸어가는 행보,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친구들과, 동료들과 함께 비판, 비난하던 순간에 그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DJ가 싫어서, DJ의 노선이 싫어서 돌을 던졌지만...
나는 왜 당신이 더 잘하지 못하는가, 왜 더 강하지 못한가...
화가 나서 돌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옳다.
당신을 믿는다.
한 톨의 힘도 보태지 않으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는 당신에게 늘 초인적인 능력을 바랬습니다.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당신의 말대로..
나는 평생을 악의 편에 서서,
당신에게 반대하는 무리들보다 더 날카로운 잣대로,
더 날카로운 칼날로 당신을 비판하고 냉소하고 재단하면서....
꿋꿋히 버텨주기를, 꺾이지 않기를, 그래서 세상을 바꿔주기를 소원했습니다.


마음 속의 하늘을 잃은 이 아침에...
당신에게 진 마음의 빚이 너무도 무겁고 버거워....


처.음.으.로. 내가 당신의 지지자였노라.
당신의 이름으로 그래도 내가 이 땅에서 꿈을 꾸고 누려왔노라.


단 한번이라도 말하고 싶어,
보는 이 적은 이 곳에 부끄러운 글을 적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늘 존경했고....고맙습니다.


다음 생에서는 부디, 좁디 좁은 이 땅, 마음이 더 좁은 이 땅을 택하지 마십시오


혹여라도 불행히 다시 이 땅에 오시거든....
그 때는 부디...서럽지 않게, 한스럽지 않게...
힘있는 자들의 고향에 태어나십시오.

이런 삶은.....한번이면 되셨습니다.


...................



-DJ, 노무현을 혼내지 말아주세요-


DJ...86세면 한국 남성 평균 수명은 넘겼고 우리네 사람살이
이 정도 사셨으니 호상이라고도 하지요....만은.

하도 어렸을 때부터 당신 이름을 들었고, 당신을 알았고,
당신에게 표를 드렸고, 지금껏 하도 많이 당신 이름을
불렀었기에, 당신이 이렇게 가신 것이 좀...뭐랄까...어안이
벙벙합니다.

그 아픈 다리를 끌고서도 그냥 호흡처럼 우리 곁에 계시는
줄만 알았는데, DJ...좀 어안이 벙벙합니다...만은.


그렇제라, 이제 쉬실 때 되셨제라.
우리한테 무슨 자격이 있을랍디여.

당신 그 아픈 다리 보고, 쩔뚝쩔뚝 한다고 비웃던 말들이
가장 아팠었는데, 이제 뚜벅뚜벅 다시 청년의 다리로 걷고
계신가요?

DJ..노무현을 만나거들랑 당장 혼내지는 말아주세요.

우리가 다음 다음에...나중 나중에...조그마한 일이라도
국민의 힘으로 뭔가 이뤄냈을 때, 그때 가서 한말씀만
해주세요.

예끼 이사람아 자네 그리 가분 바람에 내가 황망하게
따라와서 저 오진 구경을 살아서 못하게 됐네 예끼 이
사람아.....

오진 구경 보여드려야 할텐데......

..............


-참말로 고생이 많으셨소..-


외눈박이들 천지인 세상에서
두 눈 가진 넘들 모조리 잡아죽이던 참혹한 이 땅에서
두 눈 가진 채 태어나
외눈박이들이 보지 못하던 세상에 대해 말하기가 얼마나 힘드셨소?

그래도 용케 한 눈 가리지 않고 끝까지 꼿꼿하게 버텨준 당신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것소..
저주받은 이땅에 당신마저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당신은 하늘이 우리민족에 내려준 귀한 선물이 아닌가 싶어라

전라도만 아니었더라도
아니 한국사람만 아니었더라도
더 큰 일을 이루웠을 사람..
원대한 이상과 비범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폐족의 굴레를 벗어던지는데 일생을 바쳐야 했던 사람..
당신을 생각하면 참 ......아직도 가슴이 짠허요.

그동안 고생많으셨다고 ..이제 후세들에게 모든 걸 맡겨두고 편안히 가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신이 목숨걸고 평생 이룩해온 가치가
쥐새끼 한 마리로 인해 송두리채 흔들리는 현실에서
그 말도 차마 입에서 안 떨어지요.

돈 몇 푼에 그 모든 걸 팔아버린 한심한 인간들에게
더 꾸중하고 나무래 주실 줄 알았더니
이렇게 홀연히
가실 줄은 정말 몰랐어라..

좋은 세상 보고 가시었으면 이렇게 마음 아프지 않을 것을..
돌아기시는 순간까지 나라걱정하시었을 생각하면 애통한 마음 가눌 길 없으나
어쩌것소..인명이 제천인 것을..

저승가시걸랑 노통이랑 못다한 말씀 많이 나누시고.
불쌍한 이 땅의 백성들을 굽어살펴 주세요..

- 어느 전라도 사람이...


..............



-떠나는 스승을 위한 애가-


0.
나는 고향이 전라도다. 게다가 하필 신안이다.
절반은 다시 목포 근처라고 부연을 해줘야 알고,
나머지 절반은 '그'의 고향으로 기억하는 그 신안.
1년에 한번은 재정자립도 전국 꼴찌 지자체 명단으로 뉴스에 회자되고,
"목포간다" 라는 말이 "뭍으로 나가다" 또는 "어딘가로 떠나다" 라는 일반동사로 통용되는 그곳.
내 고향 신안.


1.
'그'의 당선이 확정되던 날 밤 나는 고향 처 거점 도시 어느 고등학교의 예비고3 기숙사생이었다.
그날 밤 여드름 난 나를 포함한 십대후반 아해들은 (여느 때보다 더) 야간타율학습에 집중 못 한채
듬성듬성 워크맨으로 라디오를 듣고 있는 애들의 제스처를 흘끔거렸다.
급기야 사감이 개표상황을 전체 방송으로 보고하기에 이르렀고 자정 근처께 가서야 방송사의 확정방송과 함께 그 초조함은 가라앉았다.

다음 날, 사회과 통합과목의 중요성을 항상 역설하던 국사선생은 "진짜 수업"을 하겠다며
'그'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자 이제 우리가 됐응께, 똑같이 차별해불자잉?" 라고 유도심문을 한 후
긍정적 리액션을 보였던 애꿎은 앞줄 아해에게
"이제는 진짜 화해해야 된다"고 당한대로가 되갚아주면 그 고리는 안 끊긴다며
"알아서 잘 하시겄제" 라고 말을 맺던 키작고 까무잡잡한 신안출신 국사선생의 안구는 습기가 차오르는 듯 했다.


2.
대학에 와서는 경상도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신입생 오티 때 처음 만난 대구 친구는 내 고향을 듣더니 바로 '그'의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아무 감정 없는데 부모님은 엄청 싫어하신다 했다.
"내는 아무 감정 엄따" 라고 반복해서 얘기하던 그 친구의 순박한 수사법에는
내 고향과 '그'의 특수한 함수관계가 고려된 것임에 틀림없었으리라.

대구, 진주, 마산. 나는 그 친구들이 좋았다.
그리고 그 친구들도 나를 좋아해주길 바랐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내가 경상도 사투리의 강력한 중독성에 빠져들 때 쯤,
'그'가 북녘땅을 밟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친구중 한명과 첫번째 언쟁을 벌였다. '그'에 대하여.


3.
'그'의 집권2년차, 그러니까 내 대학 신입생 시절..
운동권 선배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미 많이 차가워져있었다.
그리고 안양의 어느 철거촌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그'를 맹비난하는 구호를 외쳤다.

시간은 나를 '그'가 '선생님'이 아닌 곳에서 빠르게 적응시켰다.
나는 '그'에 대해 더 냉정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내 고향 때문에라도.

사회를 스스로의 시각으로 바라보기에 부족했던 나는 매 사안에 무던히도 방어적이었다.
'그'가 옳다고 생각될 때 더 없이 신중하게 말을 아꼈고, '그'가 그르다고 판단될 때 필요 이상으로 큰 제스처를 취했다.

일종의 자기방어였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찍어만든 '그'의 후임자가 '그'의 연적들이 주장한 특검을 받아들일 때도
나는 다시 한번 내 친구들 앞에서 '그'로부터 자유로운 전라도인의 역할을 잘 연기해냈다.

4.
시간이 더 흘러 나는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었다.
굳이 정치공학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정치적 share를 나눠먹어야 하는,
말하자면 '그'의 후신들에게는 다시는 표를 주지 않을 그런 정치적 전향이다.

'그'와 후임자가 신자유주의를 가속화시켰다고 나는 눈에 불을 켰다.
그리고, 지금와서 그런 비판에 대해 반성문을 쓸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그'의 후임자가 떠났을 때 만큼이나 나는 '그'에게 참 미안하다.
'그'가 대중보다 딱 반발자국 앞서나가는 것이 정치라고 말할 때, 내가 '그'에게 주었던 것은 조소와 비난이었다.

'그'가 편안히 사는 것에 아예 관심도 없었으며 구차하게 자신의 육체적, 정치적 수명에 관심을 갖지 않고 대의를 추구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는 옷에 진흙을 묻힐 줄 아는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사람이었던 것은
어쩌면 나에겐 굳이 다시 주워섬길 필요가 없는 일종의 공리(公理)였나보다.


5.
파병 때, FTA때, 평택에서, 용산에서...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나를 엄습하는 몸에 익어가는 패배주의였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그'의 삶을 회고하건대, '그'는 자신이 살아낸 삶 자체만으로 큰 스승이었다.
그 가르침이 익숙한 패배감에 젖어드는 나에게 위로를 준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내가 비판하는 '그'만큼 살 수 있을까?'

'그'를 보내는 많은 방법이 있겠다.
'그'는 내가 겪지 못한 어두운 시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싸웠던 투사였고, 유쾌한 자유주의자였으며,
고통받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했던 박애주의자였고, 자신이 믿는 바를 충실하게 살아낸 큰 스승이었다.

'그'에게 애써 냉정하려했던 전라도 사람.
그럴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조금 더 수사하자면 '그'도 이런 나를 이해할 것이라 믿었던 나는
아무리 그가 위대한 사람이라하더라도 전라도의 '그'가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오늘 한명의 전라도 사람으로서 스승인 '그'를 보낸다.
떳떳하게 '그'에 대해 말하는 것, 그것이 '그'의 죽음이 대속하려하는 전라도라는 원죄에 직면하는 길이리라.

그리고, 오늘 하루는 알코올에 기대어 '그'를 위해 목을 놓아 섧게 운다.

6.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 아니겠냐만은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서럽고 슬프다.


...............


-광주놈이 왜 좋아한다는 말도 못했냐고?-


난 광주의 아들이고, 오월의 아들이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생활했다.

근데, 난 광주놈이기에 '김대중 좋아한다'는 표현도 못했다.

왜냐고?
전라도 놈이라고 왕따 당할까봐?
불이익이 두려워서?

절대 아니다.
단순한 내 불이익 때문이었다면,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김대중 만세'를 외쳤을 거다.

진짜 이유는
적들이 쳐 놓은 지역대결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전라도라서 지지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오히려 민주세력의 외연이 줄어들고,
의도하지 않았던 이적행위를 하게 될까봐......


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개만도 못한 놈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났던 10년을 난도질 하는 꼴을 보고 있으니...

어차피 떠나실 길이었다면
차라리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에 가셨더라면
훨씬 맘이 편했을것을...


========

당신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영광입니다.
마치 조선 후기 민중들이 정조시대를 추억하듯
우리 자식들에게 두고두고 이야기할 겁니다.

김대중-노무현 영광의 10년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냥 전설의 10년으로만 남고,
쥐새끼들의 세상으로 남아버릴까봐 잠을 못 이루겠습니다.

IP : 58.235.xxx.91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그저
    '09.8.21 6:46 PM (221.140.xxx.82)

    가슴만 아픕니다.
    그땅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를 지지한다고
    입밖으로 내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행여라도 빨강물이 들었다는 왕따가 두려웠을까요?
    다만, 마음놓고 한나라당을 비판할 순 있었습니다.
    고향이 충청도이었기에 가능했지요.

    제주위의 전라도 사람은 다들 참 조용합니다.
    목소리를, 울음을 안으로 삼키는 법을 진즉부터 알아버린 그들이 난 안스럽습니다.
    그리고 내주위의 그들은 한결같이 참 좋은 이들입니다.
    그들과 그리 오래 지내도 뒤통수를 맞은적도 남의 흉을 소근거리는것도 본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보수인척하는 이중인격들로부터 찔린적은 있습니다.

    글들을 읽어내다 다시 가슴이 막막하고 아립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 아니겠냐만은
    내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린 것 처럼 서럽고 슬프다'
    제 마음도 그렇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고 이땅의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게
    살펴 주십시오.

  • 2. 좋은 글
    '09.8.21 7:19 PM (118.216.xxx.19)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득하고 아련한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맘이 저려오네요

  • 3. 구구절절
    '09.8.21 7:24 PM (210.106.xxx.201)

    동감입니다.

  • 4. 에구..
    '09.8.21 9:07 PM (125.177.xxx.160)

    넘 넘 동감가고 참 슬프네요.
    이제는 정말 좋은곳에서 편히 쉬세요...

  • 5. ;;
    '09.8.21 9:29 PM (114.161.xxx.141)

    선생님 감사합니다.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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