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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무서버라~!
엿같은 가카에 시국 걱정만 아니라면 소소한 저녁 메뉴나 고민하며 나름 살만한 인생 같았었는데...
방학이 시작되고
나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커버린 덩치 좋은 중딩이 둘씩이나 집에서 뒹굴고 있으니
주간지 리뷰쓰기는 고사하고 뉴스데스크 시청도 주중 행사가 되버리고
분명이 매일 일개미처럼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사 나르건만 냉장고는 늘 부실하고
(그놈의 우유는 꼭 밥 차리기 싫어 아침에 팬케익 부칠려구 하면 똑 떨어지냔 말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냥 습관처럼 청소기 손잡이부터 잡고 돌려도 황사철도 아닌 집안이 꼬질하기 이를데 없고
분명히 이틀 걸러 빨래를 돌리건만 가끔 화장실에서 딸 아이가 비명을 지릅니다
"엄마, 수건이 하나도 없잖아~!"
헐, 우리집 타올이 다 가출이라도 한걸까요?
저녁상 치우고 잠깐 쉰다고 누우면 늘 새벽 1시쯤 남편이 깨웁니다.
"아줌마, 그 앞치마는 잠옷도 아닌데 좀 벗고 자지 그러셔. 앞치마 벗는 김에 심심하면 거울도 한번 보면 좋구"
끙~, 세면대 거울 속에 팬더 아줌마가 서 있습니다. 모냐, 실연당한 삼순이도 아니고.
무려 19시간을 풀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다니...이러고도 피부를 논하며 새 화장품을 지른단 말이냐.
화장 지우고 머리를 아침에 감는게 좋을까 지금 감는 게 좋을까 나름 막 머리를 굴리고 시간 계산을 하며
앞치마 두러 부엌에 나와보면 엄마 잠깐 잠든 그새 배고파진 우리집 식신 3마리(명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욧)
가 저질러 놓은 만행에 앞치마를 벗기는 커녕 고무장갑까지 다시 끼게 됩니다.
아침 출근 준비하러 화장대에 앉으니
화장대 위에 밤에 바르고 자면 수분을 보충해주고 화장을 잘 먹게 해준다는 수분팩이 저를 꼬나 봅니다.
음, 요 근래 들어 화장 못 지우고 잠든 게 몇번이더라.
여름이라고 맘먹고 바른 패티큐어, 고쳐 바를 시간은 없지 자르기는 아깝지
어영부영 길게 자란 발톱이 조금 있으면 호랑이 배도 딸 판입니다.
문득 친정 엄마 생각이 납니다.
딸 셋도 모자라 남편까지 방학을 하는 통에 여름, 겨울이면 늘 시름에 잠기곤 하셨던...ㅋㅋㅋ
저희 엄마 사위 조건 중 하나가 '방학 안하는 직업일 것'이었건만
큰 사위는 아침에 마누라보다 늦게 출근하고 직장도 코 앞이고 게다가 땡퇴근 집돌이
둘째 사위는 지대로 방학 열라 긴 교수 얻으셨습니다. (전 가끔 제 동생 연락 안되면 제부에게 전화합니다)
전 고작 아이 둘 가지고 해메다니...
그렇습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고. 직장에서 굴리는 머리 집에서도 굴려야 합니다.
전 A4용지에 한 가득 적어넣고 아이 둘을 불렀습니다.
'딸과 아들, 지금부터 엄마 말 잘 들어라"
우리 딸,아들 저를 멀뚱히 봅니다.
"엄마가 너네 방학하니깐 너어무 힘들다. 엄마도 이젠 늙은 듯 하다"
조금 눈치 봅니다.
"아무래도 이제 두 가지 일은 무리인 듯 싶다"
두 아이 대략 난감 모드
"그래서 엄마가 결심했다. 둘 중 하나만 잘 하기로"
녀석들 얼굴엔 또 시작이다라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당근, 집에서 너희들을 잘 돌보는 것이 우선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집에서 너희들과 전적으로 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치 깐 우리 아이들 이구동성으로 외칩니다.
"엄마 안돼여~"
전 압니다. 짜식들, 엄마 일 좋아하시지 않냐는 둥, 엄마 능력이 아깝다는 둥, 일하는 엄마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는 둥 별별 아첨을 다 하지만 내심 집에서 엄마가 시시콜콜 버티고 서서
잔소리 할 걸 생각하니 오금이 저린겝니다.
물론 아이들 입에서 저희가 엄마를 어떻게 도우면 될까요 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그닥 오래 시간이 걸리진 않습니다.
전 얼른 A4용지를 내밀었습니다.
- 아침 상 치우기 500원
- 수진이 화장실 청소 500원
- 하루종일 물컵 씻어놓기 500원
- 거실 스팀 청소기 2회 500원
- 저녁 설겆이 1000원
등등등
"그래.너희들 뜻이 정 그렇다면 방학도 했고 너희도 거드는 의미에서 일을 분담해서 하도록 하자.
그래도 일은 일인데 자식이라고 공짜로 부려먹을 순 없고 종목별로 비용을 책정해 봤다"
우리 두 녀석들 눈에 회심의 미소가 흐르지만
"물론 방학에는 따로 용돈 읍따"
로 응수해 줍니다.
이때부터 두 아이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죠. 서로 어떤 일을 할거냐를 가지고 실갱이를 합니다.
심지어 아침잠 줄여가며 먼저 일어난 놈이 모든 일을 자기가 한다고 동그라미를 쳐놓습니다.
돈이 걸린 문제니까요. 둘 중 누군가 선수를 뺏겨 하루를 공친 날이면 없던 항목까지도 막 생겨납니다.
"엄마, 내일은 내가 세탁기를 돌리면 어떨까요? 500에 해드릴께요. 빨래도 다 개어놓으면 대신 300원만
더 주시면 돼요" 라고 말이죠.
일주일후면 작은 놈이 먼저 공부하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두주후면 큰 아이도 기숙사로 돌아갑니다.
두 아이 모두 동시에 집에 없어본 적은 처음이라 부부가 다 걱정이 큽니다.
많이 허전할까요 아니면 야호 해방이다 하고 외치며 미용실로 달려갈까요?
아이들 생각에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맨날 싸우게 될까요 아니면 신혼 기분 내며 애정이 돈독해질까요.
나라 꼴은 점점 목불인견이고 이젠 화내기도 아까워서 투표일만 기다리지만
저러다 또 애먼 생죽음이라도 날까 싶어 뉴스에서 쌍용차 현장만 나오면 똑바로 보기가 겁이 납니다.
사교육 열풍이 뜨겁다는 동네에서도 학교 시험 감독 가보면 한반에 서너명이 이름 석자 덜렁 쓰고
바로 엎어집니다. 그 아이들 이제 고작 중2인데 말입니다.
출세하고 성공하라고 보낸 유학이 아니고 너 하고 싶은 거, 잘하는 거 기죽지 말고 찾아서 마음껏
펼쳐보라고 보낸 유학이지만 조기 유학 보내는 게 자랑일 순 없습니다. 너무 비겁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나도 다니기 싫은 학교, 아이들한테 강요하기 싫었습니다.
전교 1등을 하는 아이도 가고 공부를 남보다 못하는 아이도 갑니다.
잘하라고 채근하게 되고 방학이면 학원 전단지 열심히 모으고 이리저리 귀를 쫑긋거리며
공정택을 혐오하는 스스로에게 너무 지칩니다. 그 짜증이 아이들에게 가기도 하니까요.
며칠 안 남았습니다.
남편에게는 키워놓고 나니 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농을 하지만
올 여름은 오락가락 하는 날씨만큼이나 참 어수선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 친정 아버지 병구환에, 몇가지 집안 중대사에 회사일까지...
잠시 짬내 게시판에 들려보는 것도 요즘 같으면 저한테 참 호강입니다.
1. 프리댄서
'09.7.30 3:53 PM (218.235.xxx.134)하하. 애들 넘 귀여워요.
그런 애들이 옆에서 복작이다가 또 멀리 가버리면 한동안 얼마나 허전하실까.^^
그런데 에고, 친정 아버님께서 편찮으신 모양이군요. 빨리 쾌차하셔야 할 텐데.
그리고 저라도 가서 담비부인님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허리도 밟아드리고 싶네요.
(저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께서 종종 당신 허리 밟으라고 하셨었거든요.
그땐 그 일이 귀찮아서 건성건성 했었는데 지금은 좀 후회가 돼요.
잘 밟아(?) 드릴 걸... 하고.^^)
에궁, 힘내시고 다시 한 번 아버님의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하라도 덜 삽질해주시면 얼마나 좋아?)
근데 이건 딴말이지만 참 쾌활하시고 씩씩하신 분 같아요.^^
흐...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좋다는 뜻이에요.^^;;)2. 펜
'09.7.30 3:55 PM (121.139.xxx.220)글 재밌게 잘 쓰시네요. ㅎㅎ
초반에 읽다가는, 아니... 싸모뉨..
그렇게 아드님 키우시다 나중에 결혼해서 며느리 고생합니다..
따님 그렇게 키우시면 원글님만 고생이세요.. 라고 잠시 오지라퍼 되려다가,
후반부 내려오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요. ㅎㅎㅎ;;
전 울 남편도 방학이라는 것 좀 해봤음 좋겠습니다.
실컷 부려(?) 먹고 놀아 달라 하게요. ㅋㅋㅋㅋㅋ;;;
그래도 일하시면서 뒷바라지에 신경 써주고 하시는게 대단하시네요.
전 아직 취학 전인 자식도 부려(?) 먹습니다. ㅋㅋㅋㅋㅋ-_-;;;;
이유는, 이제 너도 조금은 알 정도로는 컸으니 니건 니가 해.. 지만..
실은, 귀차니즘의 대가 엄마를 둬서랍니다. ㅎㅎ;;;;;3. ^^
'09.7.30 8:31 PM (203.229.xxx.234)어쩐지 요즘 글이 안보이시더라니.
^^
저도 같은 심정 이어요.
방학이 무서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