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노무현다운 방식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2009년 5월 23일 운명을 달리 했다. 우선 그에게 깊은 애도의 인사를 올린다.
부디 편안한 곳에서 영면하시기 바란다. 이 와중에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 주장하는 정신지체아도 아직 벌겋게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번들거리는 이마로 전국을 파헤치는 누구도 멀쩡한 대한민국에서 왜 그는 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택했는가. 곰곰 생각할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의 척추라고 할 수 있는 도덕성이 처참히 붕괴된
마당에 아무리 대단한 투사였더라도 무슨 힘으로 버틸 수 있었겠는가. 그의 자살은 심정적으로 공감이 간다.
낱낱이 들춰지는 개인과 가족의 비리혐의에 대해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극심한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야구중계도 아닌데 이러저러 뒷말을 흘리는 검찰 덕분에 그는 일반시민이라도 도저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망신을 겪었다. 앞으로 치러내야 할 일들 또한 막막했으리라. 곡기를 끊고 절망과 불면의 구렁에서
자신의 영욕을 돌아보았으리라. 그가 올라선 심판대에 내가 올라간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 역시 업무상
종속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접대를 받은 적 있다. 몇 년 간이나 누나네 집에 위장전입 했던 사실도 있다.
얼마간 현금을 받았던 일도 솔직히 고백한다. 이런 사실들이 하나하나 언론에 노출되고 아내와 아이들까지
불려 다닌다면 나 역시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찮은 소시민인 나도 이만한 비리는 있다. 그의 비리를
그냥 넘어가자는 말이 아니다. 규모가 다르다는 말도 어리석다. 전직 대통령이니만큼 대한민국의 얼굴 다루듯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개인의 명예에 대한 예우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자살을 택한다는 것은 국민을 외면하는 일이다. 그를
따르는 시민들, 별 거 아니게 함부로 취급받는 대한민국 서민들의 눈물은 어쩔 셈인가. 그는 부자에게 얻어
먹으며 배를 불리는 건 옳지 않다고 했던 사람이다. 그보다는 다소 모자라더라도 당당히 나눠먹자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지금도 동의한다. 넉넉해지도록 합심해서 노력하고 그 다음에
나누자는 건 환상도 아니고 속임수일 뿐이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내 곳간에 그득한 쌀가마를 쉽사리
내주겠는가. 그게 혼자만의 노력으로 얻은 것도 아니면서도 과연 누가 그리 정직한 결과를 내놓겠는가. 이명박
정부를 봐도 자명한 일이다. 그들은 나누겠다고 하지만 점점 한쪽으로 몰리기만 한다. 불황을 겪은 후에는
빈부격차가 더욱 커지는 현상은 세계적으로 증명된 일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함께 강을 건너자고? 그 강에
숨어있는 악어도 웃을 일이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옳지 않겠다. 허나 그는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분열과 극단의
대립으로 몰아놓고 갔다. 검찰은 자신들에게 덤터기가 씌워질까 밤샘 회의를 시작할 것이다. 청와대는 후폭풍에
지레 겁을 먹을 것이다. 여당은 향후 전개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고 야당은 펄펄 뛰며 분노를 앞세울 것이
다. 시민들만, 애끓는 시민들만 촛불을 들고 시내에 모일 것이다. 눈물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겠는가. 분노의
함성이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힘이 되겠는가. 그는 차가운 시신이 되었을 뿐이다. 자살이라도 하라고 노망
떨었던 노인네는 아직 숟가락 들 힘이 남아있을 텐데 이참에 뭐라고 한마디 더 하라고 채근하고 싶다. 과연
속이 시원하신가 말이다. 이 비극을, 이 세계적 망신을 어쩔 셈인가. 남아있는 그의 가족들은 또 어떻게 위로할
텐가. 더는 말 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을 한 번 바꿔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개인적 과실도
있고 필요 이상의 자기중심적 사고도 힐난의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그는 유일무이한 변혁의 상징이었다. 그런
그가 새벽녘 피투성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딱 한 번만, 이 정권의
끝마무리에서만 되풀이하면 된다. 그 이후로는 결단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이다. 그는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매듭을 잘라버렸다. 어차피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까닭이다. 풀 수 없는 매듭을 던지고 비열하게 웃던 자들
이여, 그대들의 자리는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가. 어느 순간엔가 그대들 앞에도 매듭과 벼랑이 동시에 놓일 거라
는 사실을 아직 모르겠는가.
다시 한 번 그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전한다. 남은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 올린다. 이 불행한 조국의 앞날에도
걱정을 보탠다. 그를 비리 대통령이라고 기록하지 말아야 한다. 자살로 모든 것을 덮어버린 비겁자라고 뒷욕하지
말아야 한다. 죽음 앞에 꺼내는 감상주의라고 비난하지 말라. 그만큼 비리가 없었던 대통령은 누구인가. 절대값
이 아닌 상대적 비교로 한 번 말해보자. 어차피 대한민국은 썩을 만큼 썩은 구정물 아니겠는가. 이런 나라에
그가 몸을 던졌고 결국 그 자신만 부서지고 말았다. 하늘도 붉은 얼굴로 기울어진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세상을 버렸다.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들을 낱낱이 새겨두겠다. 4년 뒤에 벌어질 일들을 그에게
전하겠다. 이미 알았을 테고, 빙그레 웃고 말 사람이지만 누구의 비리가 더 악질인지 저울에라도 올려 보겠다.
그래, 난 이 나라에 안성맞춤으로 어울리는 수준의 한국인이다. 이렇게 편협한 내가 부끄럽지 않다. 이마가
유난히 번들거리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자신 있게 반복하는 확신범에게 배웠을 뿐이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친구에게 내 조문도 부탁했다.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끝장 낸 현장으로 달려간 내 친구에게.
< 한겨레 블로그>
- 절대수평을 꿈꾸며 -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 가장 노무현다운 방식 ( 한겨레 블로그에서 퍼옴)
wpwp 조회수 : 1,026
작성일 : 2009-05-24 02:51:01
IP : 125.176.xxx.134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눈물
'09.5.24 3:33 AM (218.53.xxx.12)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포괄적안 뇌물죄
g색히들.떡검들 딴날당.그 죄값 어떻게 할건지2. 가만두지않겠어
'09.5.24 3:42 AM (203.142.xxx.22)"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딱 한 번만, 이 정권의
끝마무리에서만 되풀이하면 된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3. 다시는
'09.5.24 3:48 AM (219.255.xxx.172)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딱 한번만. 이정권의 끝마무리에서만 되풀이하면 된다.
그 이후로는 결단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이다-
이 구절이 참 마음에 들고 그렇게 되길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4. 음..
'09.5.24 8:58 AM (121.189.xxx.85)자결이란 극단적 방법을 미화시키려는 맘은 추호도 없지만...
그동안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집단들...
그 다운 방법으로 매듭을 지으려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이도 저도 안되면 죽는다...는 현실회피가 아니라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어서 마지막 결심을 택했으리라는 생각에 맘이 더욱 아파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