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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핀걸 보면....

벚꽃 조회수 : 1,092
작성일 : 2009-04-10 16:58:22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저는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생각나요.
벌써 5년.
말기 암 진단 받으시고 수술도 못하시고, 방사선 치료랑 항암치료로 1년을 버티다 돌아가셨어요.

자상하시면서도 자기관리가 철저하셔서 남에게 폐되는것 싫어하셨던 깔끔하신 시아버님.
남편말이, 성향이 너무도 다른 시어머님이랑 안맞으셔서 평생 맘고생 하면서 사셨다고 하더라구요.

나이차이도 많이나서 아버님 돌아가실때도 환갑도 안되셨던 시어머님은,
편찮으신 아버님 모시고 올라와서도 당신 옷, 당신 신발 사달라는 말씀만 하시고,
입원실에 누워계신 아버님은 버려두고 사라지셨다 돌아오셔서는
"특실 구경다녀왔다. 아들 의사인데 특실에 있어야지. 체면이 있지
소파도 있고 목욕실도 있어서 간병하는 사람이 아주 편리하게 되어있더라." (아들 겨우 레지던트인데 말이에요.)
또 안보이신다 싶으면 옆 병실에 가셔서 "우리아들이 이 병원 의사에요." 를 얼마나 외치고 다니셨는지...
저녁때 잠깐 들린 아들에게 "옆방에 ***환자, 병원밥 못먹는단다. 안나오게 니가 말좀 해라"
이런 말씀이나 하시고...

아들에게 누가 될까 어린 간호사님들이 들어와도 가능하면 일어나서 맞으려 하실 정도로 단정하신 시아버님이
얼마나 속이 상하셨는지, 급기야는 어머님 오신지 하루만에 혈압이 올라서 비상사태가 되고...
제가 하던 일이 있어 할 수 없이 어머님을 모셨었지만, 하루만에 어머님을 내려보낼 수 밖에 없었어요.
결국 하던 일을 미루고 ( 일주일 안에 다 접고 ) 다음날로 아버님 옆에 붙박이가 되어서.
돌아가실때 까지 옆에서 병상을 지켰었거든요.
결혼하고 곧장 저희는 서울로 왔기에 사실 아버님이랑 많이 친해지지 못했었는데,
남편이 항상 "울 아버지는 나랑 취향이 똑같아서, 너를 너무 예뻐하실거야." 그랬었어요.
그 말 믿고 제가 덜컥 병원에 있겠다고 한건지도 모르겠지만, 1년동안 정말 너무 많은 얘길 나누고,
정도 너무 많이 들었었답니다.

매일 아침, 저녁, 뜨거운 물수건으로 손가락 발가락까지 온 몸을 다 닦아 드리고 향좋은 베이비로션 발라드리면,
깔끔하시던 아버님, 정말 너무 좋아하셨었어요.
또, 이삼일에 한번은 지하 미용실에 모시고 가서 머리 감겨드리고, 면도도 시켜드리고,
얼짱 할아버지니까 이뿌게 하고 계셔야 한다고 하면, 오냐 그래그래... 하시면서 좋아하셨었구요...
하지만, 나날이 여위어가시는 아버님의 작은 몸을 보며 속으로 얼마나 울음을 삼켰는지.......

여러번 항암제를 맞으셨는데, 항암 끝나고 집에서 며칠 쉬실때,
꽃 좋아하시고 드라이브 좋아하시는 아버님 모시고 이곳 저곳 가까운 곳들로 꽃구경을 다녔었는데,
제가 잘 가는 카페에 큰 벚나무가 있어서 모시고 갔더니,
그 나무 아래에서 제 숄을 덮고 앉으셔서, 너무 좋다..를 연발하시며 네시간을 보내셨었답니다.

내일.
아버님 생신이세요...
살아계셨으면, 이제 일흔 둘이 되시는데...

돌아가신 다음 해에, 아버님 살아계셨으면 생신날인데 어머님 혼자 허전하시겠다 싶어 전화드렸더니,
생신날인지도 모르고 계시더라구요. 그래서 그 뒤론 아버님 생신날은 어머님께 전화 안해요.
제가 어머님께 서운해서......

그래서 저 혼자서 아직도 아버님 그리워해서, 집 비밀번호도, 메일 비밀번호도, 로그인 비밀번호도 다 0411 해놓고 여태 살고 있답니다.
내일은 아버님이랑 성격도 외모도 똑 닮은 남편이랑같이, 아버님 좋아하시던 그 벚나무 아래 카페에 가서
그때 그 숄을 덮고 오래오래 앉아있다 와야할까봐요....


IP : 121.165.xxx.86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유...
    '09.4.10 5:06 PM (203.253.xxx.185)

    꽃처럼 고운 며느님이시네요.....

    부디 그 예쁜 마음, 하늘에서 아버님이 지켜보시며 행복해하시길....

  • 2. 예뻐요
    '09.4.10 5:12 PM (213.220.xxx.197)

    정말 예쁜 며느리네요..

    요즘 친딸들도 그렇게 못하는 사람 많을꺼여요...이런저런 사정이나 핑계로....

    님은 그 예쁜 마음으로 주위사람들 모두에게 행복을 나눠줄 분 같으네요..

    항상 행복하세요^^

  • 3. 연저리
    '09.4.10 5:15 PM (121.162.xxx.58)

    글읽다가 제마음까지 따뜻해지네여...
    시아버님이신데도 병수발 다 하시고...아직도 못잊어하시는 그마음..
    너무도 감동스럽습니다.
    똑닮은 남편분이 계셔서 두분 너무 행복하게 잘 사실거같아요 ^^

  • 4. 원글님
    '09.4.10 5:15 PM (121.162.xxx.159)

    글 읽다가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에 울었네요..울시아버님은 3년투병생활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지극하신 어머니께서 병수발하셨어요.그래도 어린맏며늘이라 얼마나 힘들고 맘이 아팠는지 무뚝뚝하셔서 시아버님 사랑한번 제대로 못받았지만 지금도 좀더 잘해드릴것 따뜻하게 한번 안아드릴것하고 후회한답니다.제사를 5년째 제가 모시는데 원글님 글읽고 힘들다 생각하지말고 이제부터라도 마음으로 정성껏모셔야지하고 다짐했어요...

  • 5. 하얀
    '09.4.10 5:16 PM (122.202.xxx.59)

    시아버님이 며느리복이 있으셨나봐요.
    병상에 계신 동안 큰 기쁨이 되셨을 거 같아요.
    "울 아버지는 나랑 취향이 똑같아서, 너를 너무 예뻐하실거야."
    -남편사랑이 듬뿍 느껴지네요.
    자상한 남편과 행복하세요.

  • 6. 흑흑
    '09.4.10 5:44 PM (218.239.xxx.89)

    복많이 받으세요^^
    딸이지만 편찮으셨던 아버지께 살갑게 대하지 못한
    후회스러움에 눈물이 나고
    아버지께 못한 효도 시아버지께라도 해야지 맘먹었지만
    그렇게 행하지못하는 무지땜에 또 얼마나 후회를 할지...
    그래 저래 눈물바람이네요..

  • 7. T_T
    '09.4.10 5:59 PM (121.138.xxx.181)

    글을 읽다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네요
    오랜 병원에 계셨는데도,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별로 잘 못해드리고
    가신게 계속 마음에 한이 남아 있습니다. 싹싹한 원글님을 글을 보니
    참 복받은 어르신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 8. 벚꽃
    '09.4.10 5:59 PM (121.165.xxx.86)

    글 쓰면서 저도 많이 울었답니다.ㅜ.ㅜ..
    고백하건데, 사실, 첨엔 완전히 순수한 마음만은 아니었어요,.
    제가 친정아버지를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 혹시 친정아버지 편찮으시다면
    많이 가 뵙고, 혹은 모시고 와서 내가 간병해드릴려면 시아버님께 미리 잘해야지...
    라는 계산도 50%는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시아버님이랑 같이 지내면서, 병원 정원에서 아버님 첫사랑얘기도 듣고,
    어릴때 배곯은 얘기며, 집안 소소한 일들 얘기, 시어머님이랑 젊으셨을때 얘기,,도 듣고,
    좋은 노래도 가르쳐드리고, 불러드리고 하나보니, 어느틈에 그런 계산은 싹 사라지긴 했어요.
    근데, 제가 착한 며느리는 아니에요.
    시어머님은, 좀 힘들어요...^^*

  • 9. ..
    '09.4.10 6:10 PM (220.93.xxx.175)

    에구,, 나 이 글 읽다가 눈물 났잖아요....
    고우십니다...

    남편분이랑도 그렇게,, 더 행복하게 사시구요!!!

  • 10. 아유
    '09.4.10 6:14 PM (203.253.xxx.185)

    첫 댓글 단 사람인데요....

    원글님 다시 댓글 단거 보니까 더 예쁜 분이시네요.
    당연하지요...내 부모에게 잘하려면 시부모에게도 잘해야지요....라고 교과서적으로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 실천이 쉬운건 아니잖아요 사실.
    님 너무 예쁘십니다. 옆에 계시다면 살짝 안아드리고 싶으실 정도예요.
    시어머님은.....뭐, 사람이 모든걸 다 가질 수는 없으니...ㅋㅋㅋ 그냥 맘을 편하게 잡수시고요. ^^
    시아버님과 그런 예쁜 추억을 가진 것 만으로도 충분히 복받으신 분입니다.

  • 11. ...
    '09.4.10 6:16 PM (114.205.xxx.212)

    윗님 말씀처럼..참 꽃보다 고운 분이시네요...

  • 12. 그래도
    '09.4.10 6:35 PM (121.169.xxx.32)

    님시아버님은 말년을 행복하게 보내셨네요.
    님덕분에..저도 5년전에 친정아버지 보내드리고
    그리운 마음이 봄되면 더하네요.
    5월4일에 가셨거든요.
    저도 님같은 딸이었을까 곰곰 생각해봅니다.
    아버님 닮은 남편이랑 행복하세요.

  • 13. 사람은
    '09.4.11 12:18 AM (59.186.xxx.147)

    마음이 예쁜 사람은 그런 사람끼리 살아야 하는데 ...

  • 14. 읽으며
    '09.4.11 12:43 AM (123.248.xxx.105)

    눈물이 살짝 흐르네요. 글도 참 곱게 쓰시고 마음도 아름다우시고...
    그렇게 좋은 시아버님이 일찍 가셨다니 제가 다 허전하네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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