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1년, '잃어버린 10년'을 찾아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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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되돌리겠다던 MB정권
2월 25일은 이명박 정부가 취임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집권하던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규정하며 '5%의 저성장'을 기록한 좌파정권을 대신하여 고도성장을 이루겠다는 주장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행정부와 입법부 장악에 성공하였다.
MB정부가 취임 후 취한 정책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한미동맹의 절대적 강화, 토목사업을 통한 경기부양, 언론 간섭 등과 같은 개발독재 시대와 일면 유사한 과거회귀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역사를 전공하여 지나간 옛날을 살펴보는 데 익숙한 본인은 과연 이 정권이 10년만 돌렸는지, 10년을 되돌렸으면 어떤 의미에서 되돌렸고 더 되돌린 게 있다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집권세력의 복귀 - 1997년 이전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이 한국정치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대한민국 성립 이후 계승적으로 이어지던 정권이 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에 의해 야당 세력으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과 개발독재 세력이 바톤 넘기기 식으로 반복해오던 정권은, 처음으로 독재정부의 반대편에 서있던 김대중 정권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는 노무현 정권에 의해 계승되어왔다. 기존 개발세력의 상징인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은 정권의 정통적 계보를 지난 10년 전 보수정권과 연결시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되돌아온 '마이너스 성장' - 1997년
97년은 고도성장을 기반으로 구축되어있던 한국인의 자존심을 일거에 무너뜨린 해였다. 전국적인 금모으기와 주요 대기업의 붕괴까지 감수하며 감행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5%의 안정적인 성장세로 돌아왔던 한국은, 환율정책의 실패와 세계경제 경색으로 인해 다시 한번 시련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97년 당시 관료들로 이루어진 신경제팀은 당시와 다름없는 아마추어적 환율간섭으로 대규모 환율투기를 초래해 전세계 화폐 가운데서도 유독 심한 하락을 보여주었다.
'막 나가지 않는 검찰' - 1997년 이전
한때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집단적 항명'에 가까운 자세를 취해 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검찰세력들은, 지난 대선 직전 이명박 후보가 BBK와 연관되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검찰의 독립성 자체를 의심받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MBC 명예훼손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혐의 기소', '미네르바 구속', '용산 참사 수사' 등에서도 정부에 유리한 수사결과가 계속 나와 청와대가 검찰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사고 있다.
북한이 동의하지 않는 NLL - 1991년 이전
1991년 남북 기본 합의서는 UN군이 서해 지역의 해상경계선으로 선포한 북방한계선을 남북 양측이 모두 인정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북한에 대한 강경한 제제정책으로 인해서 북한이 NLL에 대한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말았다. BBC를 포함한 세계 각 언론이 긴급뉴스로 타전한 이 소식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극도에 달했음을 전세계에 알리는 결과를 낳았고, 이같은 분쟁위기는 현재 국내 주식시장과 환율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0년간 최대규모의 반정부시위 - 1987년
87년 6월항쟁은 반민주적인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전면적인 저항이었고, 그 결과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박종철 군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면서 촉발된 전국적 시위는, 6월 10일 영국성공회 성당에서 열린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통해 확산되어, 6월 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을 이끌어내며 '승리인 것 같지만 사실 완전한 승리는 아닌' 합의를 이끌어내게 된다.
그리고 21년이 2008년 6월 10일, 작년 초부터 미국 소고기 수입 문제로 불거지던 국민적 항의가 신정권의 다른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계속되오던 촛불시위가 최절정에 달하였다. 경찰 추산 10만, 집회측 추산 50만으로 민주화 이후 최대규모의 시위가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공영방송은 국가의 목소리에 충실하라 - 1980년
1980년은 언론계를 요동치게 만든 한 해였다. 전두한 정권이 언론 통폐합 조치를 발표하면서 신문사, 통신사, 방송사 등을 대거 통합시킨 해로, 이로 인해 중앙지, 지방지와 방송사 모두 그 수가 대폭 감소하게 되었다. 이 정책의 명분은 '건전한 언론의 육성과 발전'이었지만, 방송사 수가 줄어들고 정부의 입김이 강화되면서 언론이 정권에 좌우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는데, "KBS의 뉴스는 프로그램 시작을 알리는 '땡' 소리가 나면 첫 뉴스는 항상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한다"고 하여 유명해진 '땡전뉴스'도 이때 생긴 말이다.
신정권은 작년 하반기 연합뉴스와 한국방송공사의 사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뉴스가 정부친화적으로 바뀌었고(YTN의 돌발영상 폐지, KBS의 시사프로그램 개편), '미디어산업' 진흥을 표방한 미디어법 역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방송을 친정부성향 신문사들이 매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어 사실상의 새로운 언론간섭 조치임을 알 수 있다.
나라를 살리는 길은 토목공사 뿐 - 1970년대
60년대와 70년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이후 한국의 고속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고, 이명박과 현대건설은 정부의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 하에서 성장해왔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어 21세기가 되고 한국은 IT에 대한 인프라 부문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지만, 정작 신정권의 경제부흥책은 자신들이 몸담았던 개발독재 시절 경험을 기반으로 나온 듯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정권이 사활을 걸고 매달리고 있는 대운하 문제이다. 환경주의가 대세인 요즘같은 세계적 추세 속에서도 환경을 '개발자원'으로 보고 접근하는 지금 정권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운하를 '녹색뉴딜'이라 표현하고 있다.
친일파가 아니라 '건국의 아버지' - 1948년
대한민국은 건국되자마자 해방 후부터 계속된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고자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이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친일파 검거에 착수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이 기존에 친일파였던 건국 집권세력의 기반을 흔들자, 이승만 정권은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반민특위를 지지하는 소장파 의원을 검거하고, 경찰을 동원하여 특위를 습격하는 등의 방해공작을 펴 결국 반민특위는 해산되고 친일파 해결은 미완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는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 건국'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친일파 청산을 방해했던 이승만과 그 추종세력들을 '국부'로 승격시키려 하여 논란이 되었다.
소통으로 선택한 라디오 - 1930년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이 닥친 1929년, 루즈벨트 대통령은 실업으로 양산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규모 복지지원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가규모 토목사업을 골자로 하는 뉴딜정책을 새로운 돌파구로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이로 인한 대규모 국비 지출에 반대하는 의회를 설득하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꺼내든 것이 바로 '노변담화'였다. 라디오를 통해 정책에 대한 소개와 국민을 격려하는 메세지를 보내는데, 마치 모닥불 옆에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듯한 분위기를 주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경제재건을 모토로 내건 이명박 대통령 역시 이러한 시도를 하였는데, '창의적 모방'이 아닌 고리타분한 답습으로 그쳐 정권의 소통이 아닌 일방적 '통보'란 비난을 받고, 거기에 첫 약속과는 달리 여당에 대한 비판 등 정치적 내용이 가미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비난은 더욱 심해졌다. 참고로 새로운 뉴딜을 표방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전 국민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역사상 최초로 '유튜브'에만 올리며 세계 네티즌들에게 강력하고 효과적인 메세지를 전해주었다.
역사의 흐름을 거부하는 정권,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정권
지난 1년은 개인적으로 참 힘든 한해였다. 대의민주주의를 신뢰하는 만큼 보수정권이라도 국가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다음 선거를 기약하려 했지만, 시작부터 기존에 쌓아온 국가 틀 자체를 깨부수려 하는 시도들을 보면서 이 정권이 4년이나 남았음에 좌절하게 만들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망친 국가를 다시 세운다고 보시는 분도 있겠지만, 민주주의의 근간과 건전한 경제구조마저 뒤흔들면서 반공논리만 내세우며 개발독재도 정당화되는 정권은 나의 아버지 세대를 위한 것이지 내가 살아갈 세대를 위한 정권은 아니다. 오히려 나에겐 독이 될 뿐.)
과거의 영광을 전면에 내세운 정권이라면 역사 속 사건들을 창의적으로 참고하여 현실에 반영하면 되겠지만, 오히려 온갖 악습만 답습하고 있으며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대운하를 '녹색뉴딜'이라고 부르짖으니 그 독창적이기 짝이 없는 주장은 뿌리마저 짐작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치를 경제와 별개의 내용으로 생각하지만, 정치는 각종 이해관계의 충돌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역시 국가성장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4년은 고사하고 당장 올해만 생각해도 암담하다. 경제는 그렇다치고, 남북관계의 실질적 무력충돌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니.
[출처] http://simon1014.egloos.com/4215431 계피총각의 얼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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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 재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어느분의 블로그에 있는 얘깁니다.
균형잡힌 시각으로 그동안 정부의 전횡을 제대로 간파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아직은 건강한 정신을 가진 젊은이가 있는 것이 한결 마음 놓입니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온 MB 1년
회색인 조회수 : 334
작성일 : 2009-03-06 09:24:52
IP : 58.229.xxx.90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휴~~
'09.3.6 9:43 AM (61.247.xxx.133)한숨만 나옵니다 인권위도 축소하려구하구...b급국가로 전락하고싶어 안달이 난 정부...
언제 이 지옥같은4년이 지나가나...그때되믄 내나이가 몇살인디....에구구...2. 굳세어라
'09.3.6 10:01 AM (124.49.xxx.21)4년이 지난후 다시 그 잃어버린 십년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언론도 장악하고 재벌들에게 공기업, 은행 다 넘겨주고 국토는 다 파헤쳐놓고 북한과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4년후.. 그 이후도 희망을 이야기할수 있을까요.. 휴.. 그후도 박근혜가 대안이라.. 너무 암울해서요.. ㅜㅜ
3. 평안과 평화
'09.3.6 10:12 AM (211.109.xxx.18)암울, 비통, 절망, 썩소, 절연, 폐쇄된쥐구멍-- 저는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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