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그 여인 이름은 잊었지만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 내 가슴에 있네"
*박 인환 시인의
"歲月이 가면" 중에서*
여인아!
벌써 20 년도 훨씬 더 지나버린
아득한 세월 건너 저 편에 있던 너의 모습이
요즘 들어 자꾸만 그리워진다.
후리후리한 커다란 키에
유난히 앳띠어 애틋한 모습에
너를 보는 순간 나를 잊어버렸다
.
너와 내가 일하던 곳이
불과 100 m 거리 남짓해
네가 보고 싶으면
수시로 찾아가 보고는 했었는데
그렇게 보낸 우리의 시간들이 얼마던가.
여인아!
나는 단지 네가 좋았을 뿐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결혼을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인가
네가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가자고 했을 때
별 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서울 역에서 기차를 타고 순천에 내려
순천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벌교에서 내렸지.
벌교에서 직행 버스를 타고 고흥에 내려
완행버스로 갈아타고 한참을 더 가서도
시골길을 걸어 너희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 캄캄한 밤이었다.
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여행하는 동안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는지
그러나 벌교에 내려 잠시 쉬는 동안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싸움이란 걸 벌였고
서울에 돌아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너는 직장을 그만두었지.
그리고는 집으로 찾아간 내 앞에
삼단 같던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으로
새촘하니 토라진 채 앉아 있었다.
여인아!
세상 물정을 모르고
오직 순수하기만 했던 내게
자기 부모를 무시했다며
차가운 얼굴로 우리 사이의 종말을 선언하던 네게
아무리 내 마음을 설명했지만
너는 요지부동이어서
다시 찾아갔을 때
네 모습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수소문을 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고흥 시골집에 갔는가 해서
달도 없이 어두운 밤
버스에서 내려 길을 잃고 산 속을 헤매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네 부모님의 집을 찾았지만
거기에도 너는 없었다
여인아!
그렇게 네가 가고
한동안 혹독하게 홍역을 앓았던 나는
네가 있던 그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 괴로워
자청해서 다른 곳으로 근무지를 옮겼으며
그리고서도 많은 날들을
가슴을 앓아야만 했다.
그 때도 네 이름이 순덕인지 덕순인지 몰라
자주 네게 핀잔을 듣고는 했던 나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네 이름을 몰라
혼자 곤혹스러워 하고는 하는데
그 후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어렴프시 네가 결혼을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쩌면 너도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
손주들 재롱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지만
너는 아직도 내 기억 저 편에
앳띠고 애틋한 그 때의 그 모습으로
무심한 세월의 편린들로 얼룩진 내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있구나!
산천이 두 번을 변하고도 반이나 더 변한
그 길고 긴 세월들을 잊고 살았는데
너는 세월의 흐름을 잊고 언제까지 내 가슴에
그 때 그 모습으로 살아 있으려나 보다.
지금은 희미하게 그 이름도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남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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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여인 이름은 잊었지만
해남사는 농부 조회수 : 964
작성일 : 2009-02-02 00:40:00
IP : 218.149.xxx.65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d
'09.2.2 12:44 AM (125.186.xxx.143)우리엄마가 좋아하는... 박인환시 박인희 노래..세월이 가면...
2. 은실비
'09.2.2 1:10 AM (122.57.xxx.119)박인희의 노래...세월이 가면
http://blog.daum.net/greedyjames/70236393. ...
'09.2.2 8:44 AM (115.136.xxx.205)시인 박인환이 혹시 가수 박인희씨 오빠인가요? 제 아는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 한적이 있어서 궁금했거든요.
4. 은실비
'09.2.2 8:50 AM (122.57.xxx.119)ㅎㅎㅎ 같은 박씨일 뿐입니다.
5. 남녘
'09.2.2 11:07 AM (123.254.xxx.11)해남사는 농부님
한번뵙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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