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 문제가 우리 사회의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1998년이다. <조선일보>가 도발적으로 의제화한 '영어 공용화론'을 둘러싸고 복거일, 남영신, 이윤기, 정과리, 최원식, 박이문, 고종석 등 당대의 쟁쟁한 학자, 문인, 언론인 등이 공방을 벌였다. 논쟁은 민족주의 정서를 등에 업은 반대론과 절충적 입장의 시기상조론이 우세를 점하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영어 몰입교육, 국제중 설립이 핵심 교육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논의 자체가 정치화하는 양상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영어 담론은 크게 세가지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사회적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영어를 공용화해야 한다는 주장, 번역기계나 전문 통, 번역가를 양성해 영어의 세계화에 대처하자는 기술적 해법, 마지막으로 영어가 우리 사회에서 차이를 만들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진보진영의 탈식민주의 담론이다.
하지만 각각의 담론 모두 명확한 한계를 안고 있다. 공용화론이 한국의 단일언어적 전통과 '영어분단'이 가져올 사회적 갈등에 무관심하다면, 기술적 해법은 기계적 언어번역 기술의 한계와 영어에 능통한 소수집단이 갖게 될 권력에 대한 통제 문제를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반면 탈식민주의적 접근은 문제의식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실천적으로 무기력하다는 게 문제다. 송승철 한림대 교수는 계간 <비평> 가을호에 기고한 '(탈)식민주의적 통찰을 넘어서'라는 글을 통해 진보의 영어론을 "현실의 '유령'과 대면하고 이와 싸우려 하기보다, 지금의 영어광풍이 유령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회피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송 교수는 "이중언어의 구사가 세계적 대세가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되, 식민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사회적 유령을 회피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현실에 대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여전히 '시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영어 논란은 '논리'와 '실천적 소구력'보다는 정치권력의 '의지'와 '물리력'에 의해 조만간 승패가 판가름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 이세영 기자
출처: 한겨렌신문(2008년 10월 9일자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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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 둘러싼 담론들
리치코바 조회수 : 285
작성일 : 2008-10-09 13: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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