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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자아찾기, 그 한계... (덤으로 아저씨도)
재워놓고 나와보니 쿨쿨 잠만 자고 있는 신랑이 얄미워 잠이 안오네요.
그저께도 일찍 와서 같이 영화보기로 해놓고 12시 다되서 왔거든요. 칫~
하여튼 잠도 안오고 해서 베토벤바이러스 보다가 든 생각을 요기 한번 풀어놔봅니다.
정희연....
누가 주인공인지 헷갈리는 이 드라마에서 저의 가슴을 울린 주연같은 조연입니다.
심지어 오케스트라공연에서 솔로연주할때는 눈물이 줄줄 흐르더군요^^;;
그녀가 유독 나의 공감을 일궈내는 이유는 단 한가지, 같은 아줌마라는 거겠죠.
소위 명문대라는 곳을 나왔고 머리도 좋고 능력도 있다 생각했건만
어떤 이유에서건 전업주부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OO엄마'로 전락해버리더군요.
지금은 아이들 좀더 키워놓고 무엇이든 하리라 전의를 불태워봅니다만
한편으론 막상 그때가 되면 치열한 사회로 나갈 것이 두려워 그냥 집에 눌러앉지 않을까 의구심도 듭니다.
딱 십년후 내 모습이 드라마속의 그녀일 것만 같은 불안감..
그것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나를 울다가 웃다가 하도록 만드는 것이겠죠.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어떤 이유에선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혹은 모르고) 있다가 그것을 이루려 노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정희연'이라는 캐릭터를 보면 첼로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시어머니 병수발 십년, 남편 직장 짤릴까봐 몇년, 애들 대학입시 및 군대 뒷바라지 몇년...
거기에 보너스로 맨날 성질만 부리는 가부장적인 남편까지 있습니다.
왜 이 드라마의 작가가 이 캐릭터를 이렇게 온갖 어려움을 겪은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순간 오는 깨달음이란 바로...
"아, 저정도 되야 아줌마가 살림 안하고 집 뛰쳐나가도 욕 안먹겠구나..."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났던 드라마속 캐릭터가 바로 '거침없이 하이킥'의 신지였습니다.
솔직히 방영초반에 가장 욕 많이 먹었던 배우가 아닌가 하는데요.
물론 연기력에 대한 논쟁이 컸지만 제생각에 그녀가 욕을 먹었던 이유중 상당부분은
그녀의 캐릭터가 전통적인 어머니상에 정면으로 맞섰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해서 애를 낳았으면 그 아이를 책임지는 것이 마땅한데
자기 하고 싶은 음악공부한다며 남편과 아이 내팽개치고 러시아로 날랐기 때문이죠.
제가 드라마를 그다지 즐겨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캐릭터들이 몇가지 더 생각나는데
그 캐릭터들에 대한 반응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비슷한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 엄마란 모름지기 아이를 자기손으로 키워야한다
둘. 시댁의 반대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가슴아프게 이별했다면 오히려 동정받음
셋. 자신의 선택아래 아이를 방치했을시 칭찬은커녕 욕이라도 안먹으려면 일에서의 엄청난 성공이 필요
그렇다면 여자라면 모름지기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여자가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쫒아 산다는 것은 엄청난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란 결론!
을 내리고 나니 상당히 우울해지네요.
네, 사실 저 애들 조금만 더 키워놓고 대학원공부하고 싶었거든요. 그것도 전공이랑 완전 딴판인 분야요.
공부하고 난 다음의 진로도 불확실하고 직장 들어가도 돈 얼마 못받는 그런 분야..
그런데 남들 눈치 엄청 보는 저인지라 왠지 그냥 흐지부지될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ㅠㅠ
우울한 감정은 잠시 접고 이번엔 이 드라마의 아저씨 캐릭터 '박혁권'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캐릭터 역시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상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더군요.
특히 오케스트라 공연 끝나고 나오는 길에서 딸과의 대화
"아빠 왜 공연 안했어?" "회사 이사때문에~"
"근데 왜 이사 열심히 안했어?" "...... 공연때문에 걱정되서~"
이거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대사였죠.
태생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좋아하는듯 보이는 그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시향단원이 됩니다.
기존의 오케스트라 단원 중 시향단원으로 발탁되는건 작은 건우 외에는 유일한데요,
그렇다면 또다시 비슷한 질문, 왜 작가는 많은 사람 중 그에게만 시향 단원이 되는 영광을 허락했을까?
바로 한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면
적어도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여건 하에서만
자신의 꿈을 쫒는 것이 허락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뭐 아줌마랑 비슷하네요.
남자라면 당연히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당연한 이 사회에서
남자가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만을 쫓는다면 미쳤다고들 할 것이라는 것!!
뭐 멀리까지 안가고 제 신랑만 봐도 됩니다.
캠퍼스커플 시절 오디오를 미치도록 좋아하던 그가 제게 물었죠.
그쪽 관련해서 직업을 가지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말해줬습니다. "취미는 취미로 놔둬야지 일로 하면 오히려 재미도 없고 안좋대~~!"
그랬더니 자기 엄마도 똑같이 말하더라고 하면서 접더군요.
뭐 결국엔 관련일을 할 수 있는 모그룹 계열사로 가서 워커홀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메이저급 대기업 및 국책연구소 등에도 합격했었건만.... ㅠㅠ
뭐 그정도 희생이야 꿈과 경제적안정 두마리 토끼를 잡은 것에 비하면 작은거겠죠.
실제로 주위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고 있기도 하구요.
하여튼 성별을 불문하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꿈을 쫒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선 꿈을 포기해버린 우리들이 드라마속 그들의 꿈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는지도...
드라마보면서 뭐 생각이 그리 많냐구요? 사실 평소엔 저도 아무생각 없어요~ ㅎㅎ
p.s. 요즘 토벤이 너무 안나오지 않나요?
드라마 제목만봐도 우리 토벤이가 주인공같은데...
작가는~! 토벤이의~! 출연비중~! 높여달라~!!!
1. 생각할
'08.9.29 5:51 AM (128.253.xxx.111)거리를 던져주는, 참 좋은 글이네요.
글을 참 잘 쓰세요...2. ㅁㅋ
'08.9.29 6:43 AM (125.180.xxx.62)맞아요. 내가 사라져 가는 느낌...거울 속에는 푹퍼진 아줌마가 하나 앉아있네요...
여자들이 자기 존재감을 찾기위해...
그 대리만족을 얻을려고 자녀 교육에 더 목을 매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3. .
'08.9.29 7:16 AM (123.109.xxx.13)저희 신랑 성인 어른 대상 강의해요. 가끔 집에와 얘기 합니다. 너무 슬프다고...모두들 꿈을 접고 로봇처럼 산데요....의무와 책임만으로...숨 쉴 틈이 없다네요...돌아서 생각하면 그날로 끝이랍니다..그러니 일에 술에 생각없이 사는게 사실 젤 편하다네요..생각하고 여유를 가지면 현실은 너무 슬픈거죠... 정말 안타까워요...좀 덜 벌어도 좀 소박하게 살아도 오붓이 여유있게 좀 살고 싶어요 ㅠㅠㅠ
4. 주평안
'08.9.29 7:37 AM (222.239.xxx.216)더 슬픈건 우리 아이들도 우리세대보다 그다지 나을거 없는 삶을 살거 같은 느낌이에요.. 아니, 더 일찍 강요되는 공부로의 올인으로 대학만을 바라보며 십수년을 로보트처럼 살아가는 우리리 아이들... 그들도 대학졸업후면 우리세대보다 자유로을 수 있을까요.. 주변 대다수의 엄마들이 대학만을 바라보며 초1어린 아이까지 수많은 학원에 과외에 학습지를 시키며 경쟁시키고 있네요.. 저도 너무 슬퍼요.. 내 아이들도 꿈은 가슴한구석에 밀어넣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갈아야할거같은 예감에...
5. 주평안
'08.9.29 7:39 AM (222.239.xxx.216)수정 기능이 없네요.. 오타있어요.. 우리의 아이들, 삶을 살아갈거 같은...
6. ...
'08.9.29 7:55 AM (210.210.xxx.142)정말 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다시 공부하시려는 분야가 혹시 문학? 아님 기존의 전공이 문학이셨나요?
저는 글솜씨가 없어서 기승전결 맞춰서 잘쓰시는 분들과
말솜씨있는 분들이 제일 부러워요7. ...
'08.9.29 9:34 AM (116.39.xxx.70)아, 저정도 되야 아줌마가 살림 안하고 집 뛰쳐나가도 욕 안먹겠구나..."였습니다.
====================절대공감==========================================8. 경서
'08.9.29 9:56 AM (119.193.xxx.148)강마에. 강마에.. 요즘 심심찮게 들리던데 화젯거린가 봐요.
전 아직 못 봤지만 원글님 얘기엔 공감이 가는.
자아찾기...영화 '즐거운 인생'도 떠오릅니다.
어제 교보갔다가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롹커의 공연을 봤는데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지 못하는 자신이 조금 서글펐다는.
홍대쪽에서 쌍방향으로 호응해주는 관객들과 공연하면 그이들도 훨 신날텐데 그랬습니다.
문화가 별게^^ 아닌데 말이죠.
***
원글님 남편분은 그래도 행복하신 분이네요.
사촌형부는 아직도 오디오바꿈질로(엄청나게 돈먹는 하마) 오디오에 대한 미련을 달래고 있답니다.
언니는 원래 그리 삭막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 바꿈질에 지쳐서
악다구니^^;;; 마눌이 될수 밖에 없고.9. 원글
'08.9.29 11:01 AM (58.148.xxx.131)솔직히 너무 길어서 아무도 안읽으실줄 알았는데
글 잘쓴다는 칭찬까지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부모로서 해야할 도리가 많지만
아이가 가능하면 어릴때 자신이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것이
적어도 공부공부하면서 아이 잡는것보다는 더 해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거든요.
국민학교3학년부터 수학과외받았고,
영어는 3년간 100만원짜리 그룹과외받고,
과학이랑 국어과외도 몇번 해봤고 등등
온갖 사교육의 혜택을 다 받고 자라서 명문대 갔습니다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라 적당히 성적 맞춰서 갔던지라
결국 전공 상관없는 다른 공부가 이제 하고 싶으니 말예요^^
아, 그리고 그놈의 오디오질.. ㅋㅋ
저희 신랑이 관련일을 한다 해서 집에서 오디오질 안하는거 절대 아닙니다.
집에 놀러온 사람들 하나같이 신랑이 음악 전공했냐고 물어봅니다.
거실에 오디오랑 CD/LP장 말고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래도 일반동호인에 비해 좀 싸게 사고 바꿈질말고 개조도 곧잘 하고 해서
돈은 훨씬 적게 듭니다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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