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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오래살고 볼 일입니다
세상사는게 싫고 모든게 짜증나서 주말에 집에 올 생각 말라고 했는데
그게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남편 얼굴을 보면 더 속이 뒤집어지고 힘들어질까봐 그랬답니다
제가 평소에는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남편에게 싫은소리 한마디 하지않고
그냥 씩 웃고 넘어갔어요
지렁이가 밟으면 꿈틀거린다는데 전 밟아도 가만히 있으니 바보인줄 알았겠지요
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발악하지 않으니 혼자 시들해지나봐요....
제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전혀 관심도 없지만
저 또한 남편을 버리고는 싶지만 버릴수는 없는 무거운 짐짝처럼 생각해왔어요
별 쓸모없이 집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그런 짐짝처럼요
집에 못 들어오게 하니 편하긴 한데
편지를 받으니 콧등이 시큰해지네요...
처음에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문자를 보내니
그 다음날 자기가 서운하게 한게 있냐고 어렵게 물어오더군요
그런거 없다 당신이 내게 어떡하든 신경이 쓰이지 않는데 서운할게 뭐 있냐고 했지요
마음쓸거 없다고 나 혼자 이런거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제가 먼저 이메일을 보냈어요
나 혼자서 마음이 가라앉아 그런거니 이해하라고...
당신이 잘못해서 이러는거 아니다, 지금 당신얼굴보는게 너무 부담스럽다고 썼어요
그랬더니 제게 답장을 보냈네요
평소에 제가 아프다고 말하면
집에서 뭐 하는게 있어서 아프냐고 화를 내고 (돈벌지 않는게 못마땅한거죠)
힘든 일을 말하려고 하면 아예 자기가 먼저 선수쳐서
자기는 지금 죽고만 싶다는 둥 머리가 터진다고 제 입을 막았던 사람이예요
자기가 잘못한게 있을때 역시 선수쳐서 저의 사소한 점을 들먹이며
눈을 부릅뜨고 저를 죽을죄 지은 사람으로 몰고 갔습니다
제 가슴이 타 들어간 걸 말하면 뭐합니까?
내 울음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울어봐야 돌아오는 메아리 울음에 나만 슬퍼지는 것을....
그러니 밟혀도 꿈틀대지 않고 아야소리도 하지 않고
바보가 되어 살아가니 멍청이처럼 보였겠지요
아침이 오면 눈뜨고 밤이 오면 자고
살아있으니 입에 음식넣고 귀 막고 벙어리로 몇년의 세월을 보낸거지요
마구 짓밟아도 아무 소리 없이 살다가
얼굴보는게 부담스럽다고 못들어오게 하니 신경이 쓰였나봅니다
더구나 자기에 대해 아무런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통화를 해도 머뭇머뭇 저를 어려워 합니다
이젠 제가 정말 멍청이가 되었는지
남편의 편지를 받고도 남편의 얼굴을 보는게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
지금 심정으로는 남편에게 큰 일이 생겼더라도 별 동요가 없을것 같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속빈 쭉정이처럼 고개 숙이지 않고 뻣뻣하더니
이제 알맹이가 아주 쬐끔 익으려고 하나 봅니다
남편이 보낸 편지입니다
신은 왜 인간으로 하여금 눈동자의 검은자위로만 세상을 보게 했을까요?
눈을 만들 때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동시에 만들어 놓고 말이죠.
그것은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어둠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의 밝음을 볼 수 없다는 의미인데요.
별은 밝은 대낮에도 하늘에 떠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없기 때문에 그 별을 바라볼 수 가없을 뿐이죠.
우리는 오직 어두운 밤에만 그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검고 어두운 눈동자를 통해서만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듯이,
밤 하늘 이라는 어둠이 있어야만 별을 바라볼 수 있듯이,
고통과 시련이라는 어둠이 있어야만 내 삶의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캄캄한 밤, 그것이 비록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밤 일지라도
그 밤이 있어야 별이 뜨는 것이겠죠...
우리는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당장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자신에 의해 일어나게 된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원인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부터 갖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좋은 일이 일어나면' 나에게도 이런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는 것인데요. 그것은 인간의 오만함이 아닐까 합니다.
나에게는 좋거나 행복한 일만 일어나고, 나쁘거나 불행한 일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인 것이죠.
인생은 좋은 일과 나쁜일,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라는 실에 의해 짜이는
한조각 옷감에 불과하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란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
인생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나에게도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위안하고 견디어 내아겠습니다.^^
올 한해도 한 장의 달력으로 남앗습니다.
달력 한 장으로 남은 병술년의 끝,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시간 위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입니다...
이왕이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모로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당신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항상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날씨가 영하로 내려간다니 감기조심하세요
1. ^^*
'06.12.16 6:57 AM (219.248.xxx.234)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 마디>를 인용하셨나 봐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라서요....
그래도 이런 글에 본인의 마음을 실어보내실 줄 안다는 것만 해도 남편분이 아직은 로맨스를 가지고 계신 분 같아요. 두 분 사이가 부드럽게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2. 남편이랑
'06.12.16 8:33 AM (125.178.xxx.222)대화를 해보세요
누군가의 글로 대신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솔직한 대화가 필요해요
돌려서 해결하면 가슴에 답답함은 해결이 안된답니다.
님이 딱히 남편과 문제가 없다고 해도 님의 요즘의 심경을 솔직히 이야기하세요.
상대방은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른답니다.
그냥 기분이 안좋은 것으로 알거예요.
아마도 남편에게 말해도 안통할 것이라 생각하는 님의 생각 때문일 수도 있지요
우리 남편도 비슷한 성격이거든요.3. 동심초
'06.12.16 9:11 AM (121.145.xxx.179)남자들 순간 순간 자신이 던진 말,행동에 별다른 죄의식없이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는 잊어 버립니다
여자들은 앙금이 계속 쌓이지요
아마 남편은 원글님이 왜 그런말을 하는지 잘 이해를 못하고 있을겁니다
남자들은 모든것을 콕 찝어 줘야 압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 처럼,분위기,눈치 이런것은 약에 쓸려고 해도 없습니다
원글님이 남편분께 섭섭했던것 전부를 다 털어 놓고 말하시는 시간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남편의 태도에 고쳐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솔찍히 이러저라한 태도는 정말 싫다고 말하시고요
부부는 살아 가면서 대화로 친구가 되는냐 침묵으로 원수가 되는냐 하는 관계인것 같습니다
쓰다듬고 눈마주치고 말하세요 가시 돋힌 말은 잠시 접어 두시고 인생이 길면서도 외로운길 아닌가요
내편이 있다는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데... 곁에 지원군을 자꾸 내치려고만 하시지 말고요
원글님의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화이팅 !4. 경험자
'06.12.16 10:39 AM (220.117.xxx.25)저도 저희 남편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안될 때가 많이 있었지요.
그럴때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류의 책을 보며 마음을 달랜답니다.
저희 남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란 동물의 보편적인 모습임을 알게되었고,
그것 만으로도 위로가 많이 되더라구요.
특히 제가 화나있을때 뭐 때문에 화가났냐? 화풀어라 하고 달래려 드는게 아니라,
(전 마음속으로 다독여주길 바라며 화를 낸건데,)
스스로 화가 풀릴때까지 기다리는 남편,
그게 나에대한 무관심이라 생각하고 정작 그 대응방법때문에 더 화가났었지요.
단순히 여자와 남자의 차이 때문에 발생되는 부부간의 오해가 참 많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