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자전거를 샀다.은색자전거.뒷자리에 얻어탔다.
무거워서 둘이 어떻게 탈까 싶었는데 - 남편은 말라깽이에 힘도없고, 땡땡(프랑스만화의 캐릭터)처럼 다리도 가늘다
- 무사히 탔다.기뻤다.남편을 만난지 7년인데, 자전거를 같이 타기는 처음이다.
남편도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라서 핸들이 흔들흔들 위태롭다.
나는 뒤에서 무섭고 겁이나서,그만 내릴래,제발 내려줘,하고 계속 웅얼거렸다.
좁은길은 더 무섭다.나는 가벼운 첨단 공포증이 있어서, 담이나 화단이 갑자기 - 남편의 등에 가려보이지 않으니까,
정말 갑자기- 나타나면 무서워서 오금이 저린다.
"좀 천천히 가"
"핸들도 좀 꽉 잡고."
"제발 차도로 가지 마."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아아 나는 남편의 운전을 믿지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주제에 그날은 밤이 늦었는데 또 자전거가 타고 싶어졌다.
잠시 망설이다가 남편에게 부탁해보았다.
낮에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목욕을 하고 나오면서 발을 닦는 매트- 반으로 접어도 방석 대신으로 쓰기에는 너무 크고
털이 긴 그것은 어둠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 를 들고 나가 뒷자리에 깔았다.
두번째인데 그래도 무서웠다.
하지만 여름밤은 풀 내음과 벌레 소리가 가득하고,
인적이 드문 주택가를 정처없이 달리지나 신이났다.
정말 행복했다.
"싸움을 해서 좋은것은 화해를 할수있다는거지"
제임스딘이 출현한 영화 [자이언트]의 대사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화해는 싸움의 과정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절망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킵 레프트란 단어는 자동차 교습소에서 배웠다.
어떠한 경우라도 왼쪽으로 붙어서 차분하게 속도를 내지 말고 가라.
차분하게 왼쪽으로 붙어서, 안심하고.
화해란 이 가르침과 비슷하다.
싸움의 원인이 된 어긋남에다 싸우면서 주고받은 말, 본 얼굴과 보이고 만 얼굴, 던진 가시,
꽂힌 가시,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왼쪽으로 붙어서 속도를 너무 내지 말고 차분하게 흐름을 타는것.
화해란 요컨대 이 세상에 해결따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떠나가지 않는것, 자신의 인생에서 그 사람을 쫒아내지 않는것,
코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 것.
킵 레프트는 정말 처절하다.
그리고 때로는 터무니 없을만큼 어리석다.해결된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편하니까.
예를들면,
남편은 만사를 극도로 귀찮아하는 사람이라서 회사에서 돌아와 거실에서 양복을 벗으면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기 싫어한다.
갈아입을 옷도 가져다주지 않으면 입지 않고, 콘택트 렌즈를 빼러 화장실에 가는것도 성가셔서,
렌즈케이스와 세정액과 안경을 갖다 줘야한다.
누워있는 남편의 머리에서 5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리모컨도 집어 달라고 하는 정도이니 결국은 말다툼이 벌어진다.
모기에 물리면 물린곳을 들어올리고 "약" 이라고 말하고, 무슨약이든 발라줄때까지 몇번이고 채근을 한다.
목욕을 하는것도 귀찮아서 슬쩍 물만 끼얹고 나온다.
남편의 명예를 위해서 덧붙이는데, 그래도 아침에는 샤워를 하고 출근한다.
남자는 여자와 같이 살고싶으면 둘중에 한가지를 택하는 길밖에 없다고한다.
청결에 유념하든지, 당신이 아무리 불결하든 그런것은 전혀 상관하지 안는다고 할 만큼 여자를 사로잡든지.
어느쪽이 손쉬울지는 일목요연하다.
우리는 부부는 더블 침대를 사용하기때문에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목욕하가 전에는 침대에 들어오지 마."
끝내 그런 말을 뱉는다.그러면 남편은 거실에서 잔다.
나는 잠시 모르는 척하지만, 그러다 불안해진다.
미안하기도 하고, 또 왠지 유난히 외롭기도 해서 여름이면 타월 이불을 겨울이면 이불과 배개 두개를 들고 거실로 나간다.
우선은 자고있는 남편의 머리밑에 베개를 끼워놓고, 그 옆에 내 베개를 놓고 나란히 눕는다.
신기하게도 그려면 편히 잠든다.남편에게 딱 달라붙어서.
아침에 등에 딱 달라붙어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한다
"어,왜 여기서 자는거야?"
목욕도 하지 않는 사람과는 잘 수 없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거북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그 후에 같이 마시는 아침의 차는 평온하다.
슬프고 바보스러운 평온함.
킵 레프트.
요컨대 그런것이다.
앞에서 말한 자전거처럼 결혼 생활의 사소하고 달뜨고 은밀한 행복은 그 평온함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것을 우리는 슬슬 감지하고있다.
싸움과 킵 레프트의 끝없는 반복속에서,
끝없는 나날속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中]
이 에세이집은 [냉정과 열정사이]로 우리에게 익숙한 에쿠니 가오리가 결혼 2년..(신혼이라면 신혼일수있는)
후의 일상들을 짧은 단상들을 통해 에세이로 엮은 책이다.
결혼 1년차인 나와 그리고 에세이집 속의 에쿠니 가오리의 남편상이 지금의 내 남편과 몹시도 흡사하여,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국경을 초월해서 남자들은 이리도 대체로 비슷한걸까.
토요일날 예전 스터디 후배들과 [아무도 모른다]라는 가슴저미는 영화한편을 보고왔다.
남편은 이런류의 너무 안되보이는 영화(남편말에 따르면 )나, 특히 싫어하는건 tv의 병원24시나,
아름다운 비행같은 류는 절대 절대 싫어한다.
그래서 이런류의 영화는 프로는 대체로 혼자보던지 친구나 후배들과 본다.
영화는 몹시나 슬펐고, 마음이 저렸으며,
난 왠지 모르게 비도 오고.
그 영화의 느낌들을 오랫동안 간직하고싶었다.
내리는 비소리에 책을 읽고있으니 더더욱 센치해진다.
그런데 갑자기 그이가 그 엄청난 비가오는데 DVD를 빌리러 가잔다.
그것도 [쿵푸허슬]..
그래 ..나도 때로는 그런 영화도 기분좋을때는 봐줄수있다..
그치만 정말 정말 그날의 기분은 보고싶지 않았다.
그 여운마저 죄다 사라져 버리게 할까봐.
그치만 못보게 할수는 없다.
그이는 아는둥 모르는둥 DVD빌리러 가는데 극구 끌고간다.
게다가 비 많이 오니 우산 따로 써야한단다.
그리고서는 앞장서 간다--;
그 뒷모습을 보는데 왠지 또 슬퍼진다.
우산을 두개로 쓰다니..
왜 따라오라고 했는지...왜 같이 가지고 했냐고 뭐라고 중얼중얼 거렸더니만,
쿵푸허슬없으면 다른거 빌려야하는데 같이 골라야하지않겠냐구--;.
여튼지간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섯개나 있는 것중에 5개는 대여되고 한개는 있더군.
아무리 보려해도 봐지질 않는다.
그이는 왜 같이 안보냐면서 안좋은 내색.
아랑곳하지않고, 밀린 빨래거리 돌리고 빨래널러 왔다갔다 하고,
빨래건조대가 잘 펴지지가 않아서 도와달라했더니 영 귀찮은 내색.
그래..나도 영화볼때 뭐시키면 정말 귀찮치...그치만 나만 일하는데 너무 하잖아--;
게다가 왜이리 그닥 좋지도 않는 DVD 플레이어는 이런영화에서 그리 빛을 발하는지..
아아아...정말 신경쓰여 죽겠네.아래집에서 뭐라한다고 볼륨줄이라고 수어차례...
나중엔 옆에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을려고 누른담에 다시한번 좀 줄여줘~
했더니만, 버럭 화를 냄서 " 예전엔 이정도 소리로 잘도 듣더니만..." 하더니
리모콘으로 dvd를 확 꺼버린다.
순간..미안해지면서..그리고 화도 나면서.
옆으로 획 돌아누은 그사람 뒷모습을 보니
나도 에쿠니 가오리처럼 몹시도 외로워진다.
내가 잘못한 건 없는거 같은데..
그냥 괜시리 미안해져버려서,,
아니 그래야만 할것같아서..
"영화봐....미안" 해버린다.(실은 미안하지 않치만...)
바로 보기 머쓱했는지 1시간내내 tv보더니만,
이제 좀 자려고 맘먹은 시간 부터 dvd를 튼다.
도대체 무슨 심보냐고!!!
차라리 깨어있을때 그소리를 들을껄.
온갖 날라다니는 소리며 칼 넣는소리..기타등등 소리 모든게 다 소리와 함께 머리속에 펼쳐진다.
그치만 나는 쥐죽은듯 자는척한다.
그이가 또 화내는게 싫다.
어쩜 나는 끊임없이 킵 레프트 하는지도.
그치만 어쩔때는 그 상황들이 몹시도 슬프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킵 레프트
리틀 세실리아 조회수 : 2,620
작성일 : 2005-04-11 16:53:36
IP : 210.118.xxx.2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첨밀밀
'05.4.11 5:01 PM (81.71.xxx.198)20년 넘게 서로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 만나서
사랑 하나로 부부의 연이란걸 맺었으니..
그래도 싸랑하는 내 남자니까...
예뻐해주고, 보듬어주고, 쓰다듬어 줘야지....
사족...
이글과는 안어울리지만...
'킵 레프트'
우리집 네비게이터가 늘 하는 소리라서 정겹네요..2. 엔젤로즈
'05.4.11 5:50 PM (218.159.xxx.136)참, 공감이 됩니다.
이번달로 결혼 2년이되는 시점에서 ...
여러가지 문제로 많이 힘드네요. 이것이 고비인지, 아닌지도..3. 강
'05.4.12 12:39 AM (222.121.xxx.165)그냥 왠지 슬픕니다.
4. 무지개물고기
'05.4.13 2:29 PM (222.237.xxx.117)ㅎㅎ 읽고 있자니 맘이 쨘~~하네요.
가끔 울 남편 자고 있는 모습 보고있자니
언젠가 울 아빠와 걷다가
아빠의 뒷보습을 보는거랑 비슷하더군요.
리틀세실리아님 글 올라오면 지나치지않고 보는데
그때마다 느끼는거지만
따뜻한 분이실 것 같구요,
정감이 가요.
그리고 함 뵙고 싶은거 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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