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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이 부른 나가거든이 명성왕후 OST 네요.
박정현이 부를때 웬지 모를 감동이 밀려왔는데
명성황후 ost 란 말 듣고 싫어졌어요.
드라마나 뮤지컬에서 명성왕후 너무 미화하네요.
정말 그럴 가치가 있는 인물인가요??
누가 그러더군요. 만약 북한 김정일을 일본이 죽였다면 명성왕후처럼 김정일도 미화될거라고.
역사는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날조될수 있다더니 정말 그렇군요.
1. 역사왜곡
'11.7.27 9:32 AM (124.52.xxx.147)2. 음...
'11.7.27 9:52 AM (115.140.xxx.66)그런생각을 하시다니....좀 놀랍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역사는 강자의 뜻대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도 일본에 의해서 별볼일 없는 역사로 많이 왜곡되었죠
일본이 수십만권 우리역사책을 불태워 없앴습니다 왜일까요?
그 불타 없어진 역사서가 정말 우리의 역사가 아닐까요. 남겨놓은건 역사중 부정적인것이나
또 왜곡시켜놓은것 뿐이겠죠
명성황후는 일본의 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이 명성황후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어떤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왜곡시켰을까요
왜곡되어 남아 있는 명성황후의 평가만 보더라도....명성황후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대단히 훌륭한 분 이었을것 같아요3. 시아버지
'11.7.27 10:06 AM (183.106.xxx.138)그 시아버지는 임금의 아비라는 혈연으로 조선을 지맘대로 휘둘렀죠...(애비도 신하이거늘...)
왕조를 패망의 길로 만든 1순위입니다.4. ...
'11.7.27 10:07 AM (221.147.xxx.4)의로운 인물은 아니죠!
일본 낭인들에게 비참하게 최후를 맞은건 우리의 아픈 역사이지만
훌륭한 분은 아니에요.
나라를 위해서 뭘 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영광을 위해서 정치, 외교를 한 것은 부인 못합니다..5. ㅡㅡ
'11.7.27 10:22 AM (211.32.xxx.176)일제가 우리의 고대 역사서 20만권을 불태웠다는 주장은 문정창이라는 재야 사학자가 1960년대 펴낸 "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사"라는 책에서 처음 주장합니다.
문정창씨가 그 책에서 근거로 삼은건 조선 총독부의 관보예요.
총독부 관보에 일제가 금서목록으로 지정한 51종의 책이 나옵니다.
실제로 일제는 이 51종의 책을 수거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거둬들이는데 그게 20만권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제가 금한 51종의 책들은 전부 1900년대 이후에 쓰여진 책들이예요.
그중에는 서구인들이 쓴걸 번역한 책들도 있어요.
일제가 금한 51종의 책들중 상당수는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전국에 퍼져있는 책들을 모두 모아 없앤다는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문정창씨는 이걸 우리나라의 고대역사서 20만권이 일제에 의해 불태워졌다고 둔갑을 시켜버린거지요.
그리고 나중에 문정창씨 주장을 토대로 조선일보 서희건 기자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라는 거의 환타지 수준의 책을 써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6. ㅡㅡ
'11.7.27 10:28 AM (211.32.xxx.176)그리고 고려나 조선시대등 옜날에 쓰여진 역사서나 고문헌들은 당연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썼으니까 왜곡 자체는 할수 없어요.
일제는 "해석"을 다르게 했지요.7. 저도
'11.7.27 10:45 AM (210.112.xxx.153)민비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추앙받을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 정치한 거 보면;;;
그 오빠도 그렇고8. 덧붙여
'11.7.27 10:46 AM (210.112.xxx.153)이런 걸 볼 때마다 사람은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남기는 인상이 달라지는 듯..
9. ㅡㅡ
'11.7.27 10:52 AM (211.32.xxx.176)우리 역사학계에서 주류사학계를 "강단사학계"라고도 하는데 이건 재야 사학계에서 우리나라 주류사학계에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강단사학계는 역사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사학자를 말하고,
재야사학계는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연구를 하려는 모임입니다.
재야사학계는 우리나라 주류사학계가 친일사관에 영향을 받았다고 비판을 하고 있고
주류사학계(강단사학계)는 재야사학계가 역사를 연구할줄 모르는 아마추어들이라고 비판합니다.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가 우리역사를 보는데 있어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아무래도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의견 차이예요.
우리나라 고대사는 자료나 근거가 희박하다 보니 주류학계는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고,
재야학계는 우리의 고대사를 화려하고 영광스럽게 볼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게 "환단고기"예요.
그렇지만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주류역사학계도 민족주의에 경도 되었다는 평을 들어요.
실제로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이었던 안호상씨 같은 경우입니다.
역사학자 이병도 역시 안호상보다는 덜 과격했지만 그런 경우였구요.10. 흠...
'11.7.27 10:56 AM (108.86.xxx.50)부마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하자고 차지철 경호실장이 말 할 때,
박정희가 안된다고 하지않고 수긍하는 기색이었다잖아요
만약 부마사태가 광주항쟁처럼 수백명 죽이며 진압되었다면,
박정희를 지금처럼 추앙하는 세력이 많고 그 딸이 차기 대통령 후보까지 될 리는 없었을거라는.....11. ~
'11.7.27 1:02 PM (118.128.xxx.158)안호상씨는 과격한 주장을 했다기 보다는 공자가 한국인이라는 좀 황당한 주장을 한 분이죠.
국민교육헌장에 홍익인간을 집어 넣을려고 강력히 시도 했지만 "조상에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로 타협하였고, 박정희 정부의 "한국적 민족주의" 의 기초를 완성한 사람입니다.
안호상씨의 종교는 대종교(단군을 시조로 모시는)로서 단군신화를 실재역사로 생각했던 사람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이병도씨는 친일 경력이 있고 안호상씨보다는 온건하지만 해방이후 줄곧 역시 단군의 역사성을 긍정적으로 생각 했습니다.
다만 안호상씨와 다른점은 곰이 쑥과 마늘먹고 사람으로 변했다는 환타지 수준의 신화를 그대로 믿은게 아니라 고조선이 형성될때 족장 역활을 했던 상징적인 인물로서 단군이 실재성을 인정했던거 같아요.
그리고 고조선의 건국시기가 기원전2333년이라는것도 믿지 않았지요.
말년에도 언론에 단군의 실재성에 대한 자신의 이런생각을 강력하게 피력했습니다.12. ~
'11.7.27 1:11 PM (118.128.xxx.158)그리고 박정희는 자신이 일제때 일본장교였다는게 컴플렉스였는지 몰라도 집권하고 나서부터,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주의 정신의 배양과 함께 이순신장군에 대한 성역화 작업도 활발히 진행했지요.
이순신 장군이 민족의 수호신으로서의 반열로 등극한건 박정희의 작품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선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가 좀 부정적이군요.
명성황후에 대한 여러 자료를 더 읽어봐야 겠습니다.13. ㅇㅇㅇ
'11.7.27 2:39 PM (124.52.xxx.147)매전야록을 읽어보시면 명성왕후가 결코 조선에게도 이로운 왕비가 아니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