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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과 헤어진 마지막 날 / 양정철

저녁숲 조회수 : 551
작성일 : 2011-05-23 14:31:10

-노 대통령과 헤어진 마지막 날-



[시시비비 8년의 기록] 오늘은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지 2년째 되는 날입니다. 2년 전 새벽, 전 국민은 충격과 비통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그 분의 서거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벌써 2년이 흘렀습니다. 그 날에 대한 기억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 날이 아직도 이기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 트라우마는 깁니다. 그 분과의 마지막 만남, 그리고 그 날. 그 아픈 기억을 함께 나누며 그 분을 추모합니다.    



노 대통령과 헤어진 마지막 날



2010년5월22일(인터넷 한겨레)



“형, 저 경수입니다. 지금 바로 봉하로 오셔야겠습니다.”



봉하마을에서 모처럼 수원 집으로 올라와 자고 있던 그 날 아침, 후배의 전화 한 통으로 잠을 깼습니다. 봉하에서 노무현 대통령님 곁을 늘 지키고 있는 후배 김경수 비서관의 다급한 전화였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다음 말을 듣기도 전, 후배의 그 첫 마디에 퍼뜩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났습니다. 가뜩이나 잠자리가 뒤숭숭해 잠을 설쳤는데, 매사에 진중한 그 후배가 그렇게 이른 시간에 가볍게 전화를 할 일은 없었으니까요. 더구나 후배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위독하십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다시 드릴 테니 빨리 서둘러 출발해 주세요, 형”

‘위독!’.

저는 지금도 어떤 단어 하나가 다른 아무 수식어나 서술어를 동반하지 않은 채 혼자서도 그리 강한 충격과 전율로 하얀 백지의 상황을 순식간에 시커멓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서둘러 차를 몰아 길을 나섰지만, 오만가지 추측과 상상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사태일까? 그럴 리가 없는데. 며칠 전 만나 뵀을 때도 비교적 건강하셨는데…’

추측이 한계에 이르면 상상을 낳습니다.

‘혹시?’

경망스런 상상을 잠시라도 했던 제 모습을 누가 훔쳐보기라도 했을까봐 도리질을 쳤습니다. 아무 일 없길 기도해야 할 참모가 잠시라도 그런 상상을 했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걱정이 되고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와 같이 봉하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있다가 역시 집으로 올라와 주말을 보내고 있던 선배(윤태영 전 부속실장)에게 전화를 해 봤습니다. 더 알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쯤 됐을까요. 김경수 비서관이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봉화산에 올라가셨다가 떨어지셨습니다. 많이 다치셨고, 지금 위독하신 상태입니다.”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고 운전하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서였을까요. 차마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마지막 전갈을 받았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마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비극적 부고를 고속도로 어느 지점쯤에서 듣고, 어떤 길로 어떻게 해서 양산의 부산대병원까지 갔는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차를 멈추고 몇 번이고 흐느꼈던 기억만이 흐릿합니다.

저에게 2009년 5월23일은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빨리 도착하기 위해 몇 번이고 마음을 추스렸지만 복받쳐 오르는 슬픔과 눈물을 참기 어려웠던 건 불과 며칠 전 그 분과 나눴던 마지막 대화 때문이었습니다.

서거 나흘 전인 5월19일. 대통령은 저와 윤태영, 김경수, 그리고 다른 비서 몇 명과 함께 사저 안 서재에서 무겁고 침울한 마지막 티타임을 가졌습니다.

그 멤버들은 (봉하에 원래 상주하고 있던 김경수 비서관을 빼면)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천착하며 몰입했던 ‘진보주의 연구’를 보좌하기 위해 몇 달간 봉하에 내려가 있었던 비서들이었습니다.

이미 상황은 대통령이 더 이상의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게 치달았습니다. 그 날 회의는 회의라기보다 연구 모임을 해산하는 자리였습니다. 분위기는 무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소회를 말한 대통령이 “그 동안 고생 많았다”며 참모들을 담담하게 격려하는 순간 옆에 있던 여자 후배는 끝내 흐느끼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나를 버려야 한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린 게 얼마 전이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이미 몇 번을 함께 울며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그 모임의 해산이 어떤 의미인지, 또 그것이 대통령에게 얼마나 고통스런 결정인지 모두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서거 한 달 전쯤인가,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비서들에게 그 모임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너무도 절박하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회의를 마치고 나가려던 대통령이 다시 돌아서서 털어놓은 심경은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겁니다. “이 연구가 잘 됐으면 좋겠어. 이 연구가 잘 돼야 내가 자네들하고 계속 만나면서 그나마 이 작은 끈이라도 이어가지. 안 그러면 이 적막강산에 내가 쓸쓸해서 무슨 낙이 있겠는가.”

그렇게까지 말한 대통령이 그 ‘끈’을 놓겠다는 것은 당신에게 견디기 힘든 어려운 선택이었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 분이 유서에서 밝힌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는 말은 그토록 고통스럽고 절박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연구모임의 19일 해산 티타임이 그 분과의 이별일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 자리의 그 누구도. 어색한 침묵이 여러 번 이어졌습니다. 대통령이 저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앞으로 먹고 살 길이 있는가?”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 그게 고인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돼 버렸습니다.


그 일정을 끝으로 대통령은 더 이상 사람을 만나지 않고 당신 생애에서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며칠을 보내신 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서거 소식을 듣고 주마등처럼 스친 대통령과의 많은 추억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장면은 그 날의 그 대화였습니다. 비서들도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미 오래 전 중대한 결심을 하셨던 걸로 생각됩니다. 그런 분이, 자신이 떠나고 난 뒤 남은 참모들을 걱정하는 그 말은 고맙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합니다.

서거하신 후 우리끼리 얘기 나누다 보니 대통령은 다른 비서들에게도 같은 걱정을 했습니다. “무슨 계획이 있는가?” “생계대책이 있는가?”

김경수 비서관은 최근 어떤 자리에서 “대책이 없다고 끝까지 매달려서라도 대통령님을 붙잡았어야 했는데, 왜 그때 그렇게 매달리지 못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가 된다.”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에겐 가혹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겐 참 따뜻했던 사람. 권력자일 때나 아닐 때나 참 인간적이었던 사람. 그 무서운 결심을 하고서도 참모들 생계 일일이 걱정하며 마음을 떼지 못한 사람. 그 먼 길 떠나면서도 아들보다 젊은 사저 근무 의경에게 머리 깊숙이 숙여 인사하고, 허리 숙여 집 앞의 잡초 뽑은 뒤 산으로 올라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사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습니다. 특히 서거 후 새로운 인식, 진지한 재평가가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철학, 가치, 업적, 사상, 고뇌 모든 면에서 그가 많은 국민들에게 가장 보편적이지만 가장 특별한 의미로 다가가게 된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아니어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모습이 삭막한 이 땅의 사람들에게 오래 오래 아주 작은 온기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5월23일. ‘사람’이 떠난 날. 저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사람에 대해 어떤 도리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새삼 돌아보며 다시 봉하로 갑니다.





http://v.daum.net/link/12873249
IP : 58.235.xxx.222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저녁숲
    '11.5.23 2:31 PM (58.235.xxx.222)

    http://v.daum.net/link/12873249

  • 2. 잊을 수 없는
    '11.5.23 2:36 PM (59.12.xxx.222)

    이런 분을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슬프고 그립습니다.

  • 3. ㅠㅠ
    '11.5.23 2:42 PM (121.130.xxx.228)

    양정철 보좌관의 당시글도 전율로 다가옵니다..얼마나..얼마나..그분이 고통스럽게 가셨을지..
    도저히 다 헤아릴수가 없습니다..그분의 크기가 너무 커서..그냥 글만 읽어도 조용히..눈물만 흐를 뿐입니다..대한민국에 이와같은 분이 대통령으로 계셨던 그 위대했던 역사를,,우리가
    그만 지켜내지못하고 그 끈을 놓아버린 지금..그저 웁니다..그리고 제발 이 정권을 심판하기를 하늘이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ㅠㅠ

  • 4.
    '11.5.23 3:01 PM (14.43.xxx.6)

    정말
    정말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일 ㅠㅠㅠ

  • 5. 마지막하늘
    '11.5.23 3:13 PM (118.217.xxx.12)

    우리 힘을 모아서
    그 위대한 희망의 역사를 반드시 다시 살려 놓아야 합니다.
    악의 무리에 대한 심판이 그 첫 걸음이구요...

  • 6. ggg
    '11.5.23 3:27 PM (125.246.xxx.2)

    그리운 노무현 대통령님. 글을 읽으며 다시 눈물이 맺히네요.
    직장이라.......이런 모습은 좀 난처한데...
    가슴이 아픕니다.

  • 7. 복수
    '11.5.23 3:27 PM (110.68.xxx.244)

    휴...그날아침 기억이, 충격이 아직도 생생해요. 앞으로도 지워지지 않을거에요. 잊지 말아야지요!

  • 8. 흑흑
    '11.5.23 5:59 PM (59.10.xxx.69)

    오늘 하루종일 울고있어요.....
    정말 그리운 분이예요..

  • 9. 나 참
    '11.5.23 6:03 PM (112.166.xxx.155)

    이 글을 보면서 갑자기 어디서 황당한 이봉수란 사람을 내세워서 저 김경수를 주저 앉힌 유시민에
    대한 분노가 올라오네요.

  • 10. 대한민국당원
    '11.5.23 6:53 PM (58.226.xxx.213)

    맞어 맞어...
    mbc 토요일 밤8시 40분? 그날?이라는 제목으로 봉하 소식이 있다고 했어요. mbc 기자님에게 빵도 하나 얻어 먹은 하루였다고,ㅋㅋㅋㅋㅋ

  • 11. 잠깐
    '11.5.23 10:08 PM (58.234.xxx.91)

    오늘 눈물 없이 지나가나 했는데 ...

  • 12. 그래그래
    '11.5.23 11:34 PM (59.17.xxx.174)

    아~~ 아직도 가슴이 너무너무 아픕니다. 아직도 화가 많이 납니다.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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