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 박연준
이파리로 가득한 숲속에서
나무는 얼굴이 어디일까 생각한다
바람의 힘으로 사랑에서 떨어질 수 있다면
이파리들은
나무가 쥐고 있는 작은 칼
한 시절을 사랑하다 지는 연인
누군가 보자기가 되어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
떨어지기 위해 물방울이 시작하는 일
두세해 전 얼었던 마음이
비로소 녹고
어디선가 '남쪽'이라는 꽃이 필 것도 같은
여자인가하면 남자고
남자인가하면 여자인
가늠할 수 없는 이름을 가졌다면
작가로서 과히 기본 골격을 그린 거
시집한권을 다 읽고
무심코 넘긴 표지사진에 허걱한다면
시인으로서 과히 허를 찌른 거
김연수작가의 책을 첨 읽고
동명이인의 여친 1호에게 너의 이름은 어찌하여 그러한가 물었던 나인데.
송종규 시인이니, 박연준 시인이니,
이름마저 정치적으로 올바른 고아한 분들이
선입견에 쩔은 나를
요래조래 달래가며, 옳고 거친 길로만 이끄신다.
시인에게는 나도 질투하는 감정외에는 없건만(Feat. 김연수작가)
요새 애들 몰고 나가는 가을숲에서 느꼈던 내 마음을
나무는 왜 이파리를 떨구어 내는가..
요새 부쩍부쩍 나이들어 가는..
어린 맛이 전부였던 연인인가..
이제 부담스러운가..등등을
고대로, 그것두 나보다 빠르게,
한층 업그레이드된 물로 쓰신 시인의 시가
내 마음을 꿰고 있다듯이 적시더만..
것두 모자라다는 듯이
이 시를 버얼써 읽고,
푸른 꽃양배추를 기르며
하루쯤 다녀갔음 좋겠다고 편지하겠다며
멀리 남쪽으로 간다고..
실천에 들어가실 듯한 동료까지..
이 가을에
많이 늦은 나는
이번 생이 처음이라 그란다며..
다음 생을 기약한다.
이름부터 멋지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