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접느라 한창 바쁜 요즘,
어째 보면 내가 동안거에 들어간 중이랑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사에서 화두하나 붙들고 면벽한 중은 분명 아니지만,
겨울 내내 덕장에서 곶감만 꽉 붙들고 있으니
그런 착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곶감이 내가 가진 단 하나의 화두인 셈 이지요.
꼬깜꼬깜꼬깜꼬깜......꼬깜꼬깜......
지난 연말에는 송년모임에 참석하라는 문자가 참 많이도 왔습니다.
<칭구야~~얼굴 한번 보자~~> 이런 문자를 받으면
잠시 마음이 흐트러져 곶감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모임에 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습니다.
모처럼 친구랑 회포도 풀고 쐐주도 한 잔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내가 붙들고 있는 이 화두 하나를
잠시라도 놓을 수가 없는 게 곶감이 나에게는 일 년 농사인 탓입니다.
새해 첫날 엄천골짝 사람들이 해돋이 산행을 하자고 해서
아들을 데리고 같이 왕산에 올랐습니다.
나는 겨울 산행이 익숙하지 않아 얼어 죽을까봐 옷을 있는 대로
껴입었더니 한 여름과 한 겨울의 진수를 동시에 맛보게 되네요.
미련하게 내복을 입었더니 안에는 땀이 나는데
바깥은 시베리아 저리가라 입니다.
요즘 기능성 등산복 좋은 거 많다는데 아무리 없어도
이런 날 대비해서 하나 마련해야겠습니다.
왕산 정상에 올라서니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댑니다.
양말을 좀 두꺼운 걸 신었어야 했는데 등산화 믿고
집에서 신는 양말 아무거나 신었더니 발가락이 오그라듭니다.
볼때기도 땡땡 얼어붙어 해 뜨기를 기다리는 동안
말 그대로 개 떨듯이 떨었습니다.
“절터 아지매~~ 무슨 소원 빌었능교?”
“자식들 건강하고 손주들 벨 탈 없이 잘 크게 해 달라고 빌었제...”
“화촌댁 아지매는요?”
“내사 뭐 별거 있나... 그저 몸 안 아프고... 자식들만 잘 되면 되제...”
해는 매일 보는 바로 그 해지만
새해 첫날이라 생각하고 보는 해는 느낌이 다릅니다.
처음엔 산 너머 어둠속에서 황금빛 화살 하나 두울
팅~ 팅팅~하고 쏘아 올리며 무슨 신호라도 보내는 듯하더니,
이어서 팅팅팅팅하며 황금 빛 화살을 마구 쏘아 올리는데,
모두들 춥다고 오들오들 떨다가 황금 화살을 맞고
우와우와 하며 비명같은 탄성을 지릅니다.
해는 엄천강 바위에 앉아있던 두루미가 날 때처럼
한번 리듬을 타고는 두둥실 거침없이 올라옵니다.
일행들은 또 다시 소원을 비느라 바쁘고 나도 새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게 해 달라고.
왕산 높은 곳에서 해맞이를 하고 내려오면서
내가 사는 엄천골을 바라보니 새삼스레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내가 저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가...)
헝클어진 실처럼 보이는 구시락재 너머
우리 집이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살고 있는 엄천 골짜기는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이것은 내가 가까이서는 결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그림입니다